정지돈적인 고현학의 보고 [제56회 한국일보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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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문학 첨단의 감수성에 수여해 온 한국일보문학상이 56번째 주인공을 찾습니다.
'-적'이란 표현을 쓰는 순간 '정지돈 월드'를 작가 스스로 쓸쓸하게 구축했단 말인가 하고 오해하는 독자들이 있을까 싶어 부연하자면, 정지돈적인 고현학이란 여덟 편의 수록작이 서로를 옭아매고 저희들끼리 비춰주면서 지금 시대를 암시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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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한국문학 첨단의 감수성에 수여해 온 한국일보문학상이 56번째 주인공을 찾습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10편. 심사위원들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본심에 오른 작품을 2편씩 소개합니다(작가 이름 가나다순). 수상작은 본심을 거쳐 11월 하순 발표합니다.
정지돈의 소설집 '인생 연구'(창비, 2023)에 대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라면, 작품에 담긴 그 어떤 생각거리를 다루더라도 그것의 극단적인 사례로부터 얘기를 출발시키는 방식을 이해해야 한다.
이를테면 “소설”이 “현실에 기반”(103쪽)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현실을 잘 흉내 내고자 노력해서 작품을 만드는 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영화 속 배우들에게 일어나는 사건이 실제로 일어나야만 한다고 우기는 감독이 등장하는 이야기로(수록작 'B!D!F!W!'), 거짓과 허위, 사기가 난무하는 세상 속 어딘가에 숨겨진 진실은 우리에게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에 대한 궁리는 정직하게 사실만을 말하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남들 눈에는 ‘이상하게’만 여겨지는 이야기를 현실이라 믿고 꺼내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로('베티 블루').
이와 같이 ‘극단적 연구’를 통해 독자는 소설을 읽으면서 처음에 품었던 질문이 어쩌면 관성적인 형태로 구성되어 있어, 독자인 저 자신을 여태껏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묶어 두고 있었던 건 아닌지 다시 묻고 싶어진다. ‘현실’이 무엇인지, ‘진실’이 무엇인지 거듭 생각하지 않는다면 소설은 현실과 진실을 극단적인 사례로 반영하고자 하는 바로 그 힘으로 우리로 하여금 좀처럼 달라지지 못하는 지금 이곳의 삶으로 터덜터덜 발길을 돌리게 만드는 것이다. 극단적이라고는 했지만, 인생을 단조롭게만 보려는 일만큼 극단적인 사례는 없다. 이를 '인생 연구'는 여러 재현의 실험으로 보여준다.
그러니 이 소설집은 정지돈적인 고현학의 보고라고 말해도 될 것 같다. ‘-적’이란 표현을 쓰는 순간 ‘정지돈 월드’를 작가 스스로 쓸쓸하게 구축했단 말인가 하고 오해하는 독자들이 있을까 싶어 부연하자면, 정지돈적인 고현학이란 여덟 편의 수록작이 서로를 옭아매고 저희들끼리 비춰주면서 지금 시대를 암시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보다는 “예술이나 삶, 역사 따위는 의미를 잃었고 심지어 시간까지도 회전초처럼 이리저리 굴러다닐 뿐”(100쪽)이라고 여기며 시대를 관조하느라 “스스로를 되다 만 무엇”(19쪽)으로 삼는 이들에게 “아무에게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잔해 속의 진실”(178쪽)을 향해 가는 길을 제공해 준다는 의미에 가깝다.
'인생 연구'는 “삶을 흉내 낸 영화나 소설에서 있을 법한 일”(18쪽)이 여기에 있을 뿐이라고 중얼거리면서 그렇게 쓰이는 세상 자체의 실감을 통해, 정지돈의 키보드를 두드리는 한 손가락 끝이 그 어느 때보다도 삶을 향해 있음을 증명한다.
양경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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