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위기 아닌데 공매도 금지, 제도 수술해 순기능은 살려야

조선일보 2023. 11. 7.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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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현 금융위원장(왼쪽)이 공매도 전면 금지를 발표하면서 "기존 공매도 제도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불법 무차입 공매도를 실시간으로 차단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제도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히고 있다./뉴스1

정부가 내년 상반기까지 주식 공매도를 전면 금지시키자 6일 코스피·코스닥 주가가 5~7%씩 급등했다. 공매도란 주식을 빌려서 판 뒤 나중에 사서 갚는 투자 기법으로, 거의 모든 나라에 도입돼 있다. 부풀려진 주가 거품을 빼고 주가조작 세력의 작업을 막는 순기능이 있지만, 개인 투자자들은 외국인·기관들이 공매도를 활용해 주가를 끌어내리며 돈을 벌고 있다며 규제할 것을 주장해 왔다. ‘개미’로 불리는 개인 투자자들의 요구를 정부가 전격 수용한 것이다.

주가가 폭락하는 위기 국면에선 모든 나라가 공매도를 금지한다. 우리도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2011년 유럽 재정 위기, 2020년 코로나 경제 위기 때 한시적으로 공매도를 금지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위기가 아닌데도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정부는 한 달 전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불법적인 무차입 공매도를 저지른 사실이 적발된 것을 계기로 공매도를 일단 금지시킨 뒤 외국인·기관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설계된 제도적 허점을 바로잡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내년 4월 총선을 의식한 정치적 조치라는 해석이 많다.

올해 한국 증시가 침체를 겪는 속에서 공매도는 투자자들의 원성의 대상이 돼 왔다. 공매도 금지 첫날 주가가 급등하며 투자자들이 환호성을 올렸지만, 중·장기적으론 공매도 금지가 주가를 끌어올리는 효과는 없다는 게 다수의 연구 결과다. 공매도 금지는 주가조작 세력의 활동 무대를 넓혀주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최근 적발된 주가조작은 대부분 공매도 금지 종목에서 이뤄졌다. 공매도 전면 금지는 한국 주식시장이 선진국 그룹으로 편입되는 데도 악영향을 끼친다. 자본시장 선진화 측면에선 후퇴하는 조치다.

현 공매도 제도엔 문제가 많은 게 사실이다. 공매도 거래자가 주식을 진짜 빌렸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가 없다. 주식 강제 처분 기준이 되는 담보 비율, 상환 기간 면에서 외국인·기관과 개인 간 차별이 커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불린다. 무차입 불법 공매도에 대한 처벌도 솜방망이다. 이미 공매도를 금지시킨 만큼 내년 상반기까지 확실하게 제도를 수술해 자본시장이 더욱 공정하고 균형이 잡히도록 해야 한다. 공매도의 순기능은 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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