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도설] 현대차 벤틀리 시승

강필희 기자 2023. 11. 7.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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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오롱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앞두고 황영조 선수에게 맞춤 마라톤화를 제작해 전달했다.

개발비만 1억여 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상품본부 일부 임원들이 롤스로이스나 벤틀리를 빌려 직접 몰아보는 것이다.

봉건사회에서 근대사회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최신 문물을 알아야 하고 그것을 따라해 보는 게 첫 걸음이라는 원리를 간파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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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오롱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앞두고 황영조 선수에게 맞춤 마라톤화를 제작해 전달했다. 개발비만 1억여 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막상 경기 당일 황영조가 신고 나온 건 일본의 아식스였다. 여러 불편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독일 아디다스 공장에 가 보면 직원들이 대부분 아식스를 신고 있어요.” 부산 신발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전직 임원에게서 들은 얘기다. 경쟁사 제품이 진짜 좋아서인지, 착화감을 알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의외의 모습에 놀랐던 모양이다.


“우리는 위대한 아이디어를 훔치는데 부끄러워 해본 적이 없다.” ‘좋은 예술가는 베끼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고 했던 피카소를 떠올리게 하는 이 발언은 스티브 잡스가 생전 미국 PBS 방송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직접 했던 말이다. 실제로 애플의 매킨토시 컴퓨터 일부는 복사기로 유명한 제록스에서 따왔고, 펜슬이나 스마트키보드도 동종업계 벤치마킹의 결과물이다. 단순하면서 고급스러운 애플 디자인은 독일 가전제품 브랜드인 브라운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잡스의 모방에는 원칙이 있었다. 이왕 베낄 거면 최고를 베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자동차가 최근 해외 럭셔리 자동차 시승 체험에 나섰다. 상품본부 일부 임원들이 롤스로이스나 벤틀리를 빌려 직접 몰아보는 것이다. 고급차 수요에 맞춰 신차 개발 방향과 기술 트렌드를 확인하는 차원이다. 지난해에는 전기차 1위인 테슬라를 담당 임원들이 최대 3개월까지 시승하도록 한 적도 있다. 일반 직원도 아닌 임원이 타사 제품을 사용하는 건 제조업계에서 금기사항이다. 하지만 고객이 원하는 차를 만들어야 한다는 정의선 회장의 철학은 뚜렷하다. 과거 현대차와 도요타가 서로 장단점을 파악하려고 상대 차를 분해해 봤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당시 서양 서적을 수입해 번역하는 일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봉건사회에서 근대사회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최신 문물을 알아야 하고 그것을 따라해 보는 게 첫 걸음이라는 원리를 간파했기 때문이다. 이런 전통 때문에 일본 학계에서는 여전히 그 분야 최고 전문가들이 번역에 나서곤 한다. 고도 성장기의 일본은 한때 ‘모방하는 원숭이’라는 비아냥을 들었지만 그런 시선을 가진 세계인은 지금 없다. 최고가 되려면 최고를 경험해 봐야 한다는 건 만고의 진리다. 현대차의 럭셔리 차량 공개 시승은 “우리도 최고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강필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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