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 “아이도 키우고 돈도 벌고 싶었어요”

송혜진 기자 2023. 11. 7.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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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원 60%가 워킹맘인 회사
100% 재택, 등하교 돌봄 지원도
정부의 저출생 대책 유감
경험자에게 좀 더 들어보자
답은 늘 현장 안에 있다. 저출생 문제의 해법도 이 스타트업 아기띠 회사의 사내 정책 안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진은 코니바이에린의 대표 아기띠 제품.

“계속 사업도 키우고 돈도 벌고 싶었어요. 그래서 저도 일하고, 직원들도 같이 일할 방법을 찾은 거예요. 일하면서 아이 키울 방법을 고민한 것뿐인 거죠.” 수화기 건너 들려오는 목소리가 명쾌했다.

서울대 사회복지학과·경영학과를 졸업한 1985년생 임이랑 대표가 2017년 창업한 회사 코니바이에린의 성장 스토리를 듣다 보면, 저출산 해법은 결국 아이를 낳고 키워본 사람이 내놓아야 하는구나 싶어진다.

코니바이에린은 전 세계 110여 국에 아기띠를 비롯한 육아·라이프 용품을 판매하는 우리나라 스타트업이다. 창업 첫해 매출은 3억원에 불과했지만, 5년이 지난 작년 연매출은 268억원. 5년 만에 89배가량 성장했다. 작년 매출 중 73%가 해외에서 나왔다. 올해는 국내와 해외에서 매출 300억원을 넘길 것으로 보고 있다.

사업의 싹을 틔운 건 초보 워킹맘의 고통이었다. 임 대표는 아기를 낳고 목 디스크 급성 파열을 겪었다. 온갖 종류의 아기띠를 써봤지만 우는 아기를 편하게 안기 쉽지 않았다. 목에 무리를 주지 않는 ‘코니 아기띠’를 직접 고안했다. 일본과 미국에서 특히 불티나게 팔렸다.

임 대표는 바쁘게 사업하는 중에도 돌이 갓 지난 아이를 가까이 보며 일하고 싶었다. 본인부터 모든 직원까지 100% 재택근무를 하기로 했다. 코로나가 확산되기 한참 전의 일이다. 본사 사무실도 따로 두지 않았다. 올해 5월 기준 이 회사 직원은 48명. 이 중 60%가 아기 키우는 워킹맘이다. 모두 재택근무를 한다. 서울 거주자는 18명뿐. 지방에서 일하는 직원이 27명이고, 일본·싱가포르를 비롯해 해외에서 일하는 직원이 셋이다. 임 대표는 “근무시간을 철저히 지키고 업무를 성실히 처리해주면 전 세계 어디에 있든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직원에게 관대해서가 아니라, 임 대표 스스로가 계속 육아와 일을 병행할 방법을 찾아 만든 제도다.

‘근무시간 배려제’도 도입했다. 아이 키우다 보면 친정 부모님, 시부모님, 이모님까지 동원해도 어린이집·초등학교 등하교 시간이나 학원 픽업 시간을 맞출 수 없을 때가 있다. 아이가 갑자기 아파 병원을 가야 할 때도 갑자기 도와줄 사람이 없어 발 구를 일이 생기곤 했다. 그렇다고 일을 그만둘 순 없다. 근무시간 중 최대 1시간을 언제든 빼서 돌봄에 쓰되, 빠진 시간은 이후 근무로 채우도록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학부형에겐 돌보미 앱 서비스 비용 지원도 해줬다. 임 대표 스스로가 방학에 아이를 옆에 두고 일하며 간혹 놀이 교사나 숙제 돌보미가 간절했던 경험이 있어서다.

임 대표는 “덕분에 저는 육아 경험이 많은 직원들 도움을 많이 받는다. 우리 상품은 직접 아이를 키우며 옷을 입혀보고 빨래를 빨고 건조기에 돌려본 여성의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지고, 그들의 불편함과 분노를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설루션이 나온다. 그게 매출과 영업이익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임 대표와 대화하면서 최근 정부가 출산휴가가 끝나면 별도 신청 없이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자동육아휴직제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했던 것이 생각났다. 아이를 셋 이상 낳은 집은 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를 이용하게 해주는 걸 검토한다는 얘기도 떠올랐다. 자동으로 휴직만 시켜주면 출산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한 걸까. 교통 지옥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아이를 더 낳을 거라고 믿는 걸까.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위원들이 워킹맘 의견을 전혀 듣지 않고 정책을 만들었을 거라고 보진 않는다. 그럼에도 출산 직후 휴직과 일회성 장려금에만 주로 초점이 맞춰진 지금의 정책은 문제의 원인을 반만 들여다본 게 아닐까. 정부가 이 아기띠 회사의 사내 정책만 따라잡아도 해법이 조금은 보일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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