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조용한 협박, 스트림플레이션

채제우 기자 2023. 11. 7.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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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HBO맥스, 파라마운트플러스 등 주요 글로벌 미디어기업들이 운영하는 OTT 앱이 스마트폰 화면에 떠있는 모습. /어도비 스톡

“인플레이션은 노상 강도처럼 폭력적이고, 무장강도처럼 무섭고, 저격수만큼 치명적이다.”

1980년대 초, 취임과 동시에 인플레이션과 맞서야 했던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남긴 말이다. 당시 세계는 1970년대 두 차례 ‘오일쇼크(석유 파동)’의 여파로 경기 침체에 빠졌고, 미국은 물가상승률이 두 자릿수까지 치솟는 등 유례없는 위기를 겪고 있었다. 이 문장에서는 말 그대로 ‘살인적인 물가’를 마주한 레이건 대통령의 위기의식이 느껴진다.

경각심을 주기엔 충분하지만 따지고 보면 차라리 강도가 인플레이션보다 낫다는 생각도 든다. 길에서 만난 강도는 위협적인 말을 내뱉고, 빼앗는 행동을 한다. 인플레이션은 다르다. 소리 소문 없이 찾아와 주머니를 쓱 훑고 지나간다. 지난달과 다를 바 없는 밥을 먹고, 소파에 앉아 TV를 보는 사이 눈 뜨고 당한 것이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는 김씨, 차에 기름을 넣고 있는 이씨 등 지금 이 순간에도 피해자는 속출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전 세계는 의식주(衣食住) 전반에 걸쳐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해왔다. 하지만 먹고 자는 것을 너머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하고, 유튜브에서 동영상을 골라 보는 디지털 세상이 오면서 새로운 유형들이 나타났다. 최근 주요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들이 가격을 올리면서 시작된 ‘스트림플레이션(스트리밍+인플레이션)’이 대표적이다. 디즈니플러스는 이달 국내에서 광고 없는 요금제를 월 4000원 올렸고, 티빙은 내달 모든 요금을 20%씩 인상할 예정이다. OTT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자 수익화에 나선 것이다.

문제는 스트림플레이션이 전염병처럼 스마트폰, IPTV(인터넷TV) 등 다른 디지털 서비스들까지 퍼질 우려가 있다는 사실이다. 통신사들은 각각 OTT를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결합요금제’를 운영하고 있는데, OTT 요금이 오른 탓에 결합요금제도 비싸질 전망이다. 실제로 지난 2021년 11월 넷플릭스가 ‘프리미엄 요금제’를 월 1만4500원에서 1만7000원으로 2500원 인상했는데, KT·LG유플러스는 약 1년 만에 관련 IPTV 요금을 넷플릭스의 인상 폭만큼 올렸다.

스트림플레이션의 침투가 눈앞까지 다가왔지만 우리는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제대로 된 통계조차 없다. 현재 통계청의 가계동향 조사 항목상 OTT 구독료는 공연·극장 관람료, 독서실 이용료 등과 함께 ‘오락·문화’로 집계된다. 우리나라에서 넷플릭스의 인터넷 트래픽 점유율은 네이버, 카카오를 합친 것보다 많고, 국내 OTT 이용자들은 평균 2.7개의 유료 디지털 서비스를 구독하고 있다. 이처럼 OTT는 ‘국민 미디어’가 됐고, 잇따른 가격 인상에 OTT발 물가 부담은 앞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소비자들은 올해 OTT 업체들이 말없이 작년보다 얼마를 더 챙겼는지 알 권리가 있다. 이를 알아야 정부도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 스트림플레이션을 막지 못할 수는 있다. 하지만 최소한 대비는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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