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준태 칼럼] 경찰의 사기범죄 대응역량이 강화돼야 한다

경기일보 2023. 11. 7.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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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준태 前 동국대 경찰사법대학장·법학박사

최근 공식 범죄통계(법무연수원, 범죄백서 2022)에 따르면 2012~2021년 연평균 범죄발생 건수가 200만건에서 150여만건 수준으로 상당히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이 가운데 형법범죄는 절반 정도에 달하고 있다(90만건 정도). 언뜻 보면 치안 상황이 양호해진 것으로 판단할 수도 있다.

전통적인 강력·흉악범죄로 분류되는 살인, 강도, 방화범죄 등은 최근 10여년 사이에 상당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강도범죄의 경우 10년 사이에 6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 카드사용, 모바일 기기(앱), 인터넷 이용 등 대금결제 수단의 변화로 현금을 다액으로 소지할 가능성이 현저하게 줄어든 탓에 폭행 협박을 수단으로 재물을 강취하는 사례가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앱이나 카드를 사용해 대중교통 운임을 지불하는 사례가 일상화되면서 택시 강도사건이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다. 또 현금을 노린 소매치기 같은 절도범죄도 줄어들었다. 주택가에 폐쇄회로(CC)TV 같은 감시장비가 촘촘하게 설치되고 주거공간에 대한 안전성을 향상시키는 노력(환경설계를 통한 범죄예방 등)들이 진전되면서 관련 범죄들도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형법범죄 중 절도범죄(17% 전후)와 사기범죄(33%전후)가 50%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부분은 사기범죄가 절도범죄 발생 건수를 훨씬 웃돌고 있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치기절도나 침입절도범죄들이 줄어든 대신 타인을 기망해 재산상의 이익을 취하는 사기범죄는 점점 증가하고 있는 동향이다. 소득수준과 거래·투자 규모가 커지고,유동성 재산이 많아지고 있는 가운데 투자 수익에 대한 관심이나 욕망도 증대되고 있다. 고령화 추세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은퇴자들의 생활자금을 이용한 투자수요도 늘어나고 있으며 자산을 조금이라도 불리려는 욕구가 증가하고 있다.

모바일 기기를 이용한 거래 방식이 활성화하면서 비대면성 사기수법이 일반화하고 있으며 각종 투자사기(주식, 코인, 상품권투자 등)가 빈번해지고 있다. 최근 발생하고 있는 대형 금융사기 범죄는 피해금액 규모(수백 억원에서 조 단위), 피해자 수(수천 명서 수만 명), 다양한 연령대, 범죄 확산 속도 및 피해의 전국적 분포에 이르기까지 과거와는 매우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한편 강력사건은 대부분 시간과 물리적 공간을 통한 범죄현장(Crime Scene)이 존재하면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접촉면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장 및 피해자를 중심으로 한 경찰의 신속한 대응, 신원 확인 및 물리적 증거수집이 가시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사기범죄의 특성은 가상공간을 활용하고 있는 탓에 물리적 공간이나 시간적 제약을 받지 않고 있다(보이스피싱, 앱을 이용한 거래 등). 피해자들이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관계로 동종 유사 범죄들에 대한 피해 신고 도 여러 관서로 나뉘어 접수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심지어 같은 경찰서에서도 여러 건이 접수되면서 수사팀이 다른 경우도 있다. 모바일 기기를 이용한 범죄수법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통신기록 및 송금 내역 등 각종 서버에 대한 압수수색 절차가 필수적이며 방대한 분량의 증거 분석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경찰의 현행 경제사범수사 체제는 대체로 고소·고발을 단서로 해 수사가 개시되며 고소인들이 제출하는 증거자료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강력사건과는 달리 수사관들의 역할이 수동적인 경향이다. 피의자를 체포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보다는(현장출동·잠복 등), 우편이나 이메일, 전화를 통한 출석 요구를 두세 번 하고 나서 피의자들이 출석하지 않으면 ‘소재불명’으로 지명통보나 기소중지 조치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기사건이 증가하면서 개별수사관들의 업무량도 늘어나고 사건의 특성상 수사가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 그러는 사이 피해자들은 한없이 기다리고 수사 진척 상황에 불만을 느끼면서 경찰에 대한 신뢰도 역시 떨어지고 있다.

오랜 논의 끝에 이뤄진 수사권 조정 노력으로 (사법)경찰의 위상이나 권한이 향상됐기에 시민들은 보다 나은 치안 서비스를 경찰에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늘어난 업무로 인해 수사경찰 기피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범죄발생 양상에 맞게 수사역량을 향상시키고, 절차도 개선하고, 수사조직과 인력도 효율적으로 배치해야 한다. 경찰의 사기범죄 대응 역량이 획기적으로 개선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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