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외교관 대구
생선 대구는 쌀쌀한 겨울바람이 불어오는 계절, 부산 바다의 주인공이다. 입이 커다랗다고 ‘큰 대’(大)에 ‘입 구’(口)를 쓰거나, 두 한자를 위아래로 나란히 배열해 ‘대구 화(夻)’ 한 글자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 물고기는 여행가였다. 어부에게 붙잡혀 소금에 절여지거나 포로 건조해 보존력을 높인 뒤 바다에서 내륙으로 긴 여행을 떠나는 것은 대구의 또 다른 일생이었다.
조선 시대 낙동강은 바다에서 내륙으로 통하는 길이었다. 낙동강 명지도에서 소금에 염장된 대구는 해산물이 귀한 경북의 안동, 영양까지 여정이 이어졌다. 그리고 경북 내륙의 제사와 손님상에 부산 바다의 맛을 전했다. 입이 커다란 이 물고기는 매해 음력 10월부터 12월까지 종묘에서 열리는 제사를 위해 멀리 한양으로도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나라를 위한 제사상에 큰 입에 담뿍 담은 남쪽 바다의 맛을 펼쳐 냈다.
대구는 외교관이기도 했다. 일본 막부 관리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1668~1755)는 1729년 초량 왜관에 와서 머물 때 조선 관리에게 세밑에 대구를 선물받고 기뻐했다. 세밑이니 아마도 생대구였을 것이리라. 일본 측도 막부를 방문하는 조선통신사를 위해 대구를 재료로 한 음식을 마련해 두 나라의 친선을 도모했다. 언어와 생각은 달라도 입 커다란 물고기를 함께 나누는 자리는 분명 진심이 통하는 자리였을 것이다.
대구는 중국과의 외교에서도 단단히 한몫했다. 중국에서는 본래 대구가 나지 않기에 한번 대구 맛을 본 중국 사람들은 모두 그 맛에 반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건대구 맛을 본 명나라 성화제(成化帝·재위 1464~1487)는 줄곧 건대구를 공물로 요구했다. 그리고 중국으로 가는 연행사들은 건대구를 선물로 가지고 가서 외교의 장에서 서로 소통하고 우의를 증진시켰다.
대구가 전하는 부산 바다의 짭조름한 맛 앞에선 지역도 나라도 큰 문제가 아니었다. 여행가이자 외교관인 이 물고기는 큰 입만큼이나 넉넉하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열고 품어냈다. 찬바람에 대구탕이 생각난 것인지. 한국과 일본, 중국 세 나라의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복잡 미묘하다 보니, 그 옛날 대구의 일생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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