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란의시읽는마음] 오후가 되어도 나는 일어나지 못하고
2023. 11. 7.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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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것이다.
시 속 '나'는 지금 앓고 있는 것이다.
그 시는 얼마나 절실할지.
어쩌면 시로 인해 나는 또 한 번 어둠을 걷고 문을 열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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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규
오후가 되어도 나는 일어나지 못하고
이불 속에서 뒤척인다 눈을 감고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은 날
어둠이 다가와 나를 흔들 때까지
씻지 않은 밥그릇과 썩어가는 음식물이 잔뜩 쌓인
냄새나는 방에 전화벨이 울린다
귀신처럼
나를 부르는 사람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만,
흐느낄 수 있는 기쁨을 주신 밤이여
가라앉는 유리창이여
나를 바라보라
오후가 되어도 일어나지 않는 나를,
오오 누가 나에게 밤을 선물하셨나
썩은 내 꾸역꾸역 피어오르는 방에서
어둠에 질질 끌려다니는 영혼으로 하여금
공책에 이런 시나 쓸 수 있도록
이불 속에서 뒤척인다 눈을 감고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은 날
어둠이 다가와 나를 흔들 때까지
씻지 않은 밥그릇과 썩어가는 음식물이 잔뜩 쌓인
냄새나는 방에 전화벨이 울린다
귀신처럼
나를 부르는 사람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만,
흐느낄 수 있는 기쁨을 주신 밤이여
가라앉는 유리창이여
나를 바라보라
오후가 되어도 일어나지 않는 나를,
오오 누가 나에게 밤을 선물하셨나
썩은 내 꾸역꾸역 피어오르는 방에서
어둠에 질질 끌려다니는 영혼으로 하여금
공책에 이런 시나 쓸 수 있도록
지친 것이다. 시 속 ‘나’는 지금 앓고 있는 것이다. 늦은 오후 가까스로 깨어 이불 속을 허우적거리다 다시금 밤을 맞을 때까지. 무슨 내막인지는 몰라도 사람들이, 사람들에게서 온 전화가 ‘나’에게는 “귀신처럼” 느껴지는 모양이다. 그럴 때가 있다. 사람에게서 한없이 멀어지고 싶을 때, 모두 버리고 도망치고 싶을 때가. 나 자신에게서조차. 그럴수록 나는 점점 더 “씻지 않은 밥그릇과 썩어가는 음식물”처럼 서글퍼지겠지만.
그러다 문득 “어둠에 질질 끌려다니는 영혼”이 되어 한 편의 시를 쓴다면…. 여기 시인처럼. 그 시는 얼마나 절실할지. 생생할지. 어쩌면 시로 인해 나는 또 한 번 어둠을 걷고 문을 열게 될지도 모른다. 일렁이는 바깥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게 될지도. 사람이 아니라 다만 시로 인해.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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