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룡의 시선(詩線) -시 읽는 마음, 점 잇는 선] ⑤ 나 거기에 그들처럼
우즈벡 여행서 받는 마음만큼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에서
받지 못한 것같아 미안했다
세계를 여행하는 마음에는
세계 시민으로 자리매김
하고픈 것도 있기에
그곳에 있는 그들처럼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에서 오쉬로 가는 국내선을 탔다. 기내 잡지 안에 어두운 삽화가 그려져 있는 팸플릿이 있다. 러시아어이기에 무얼 말하는지는 모르지만 좋은 내용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팸플릿을 들고 내렸다. ‘구글렌즈’로 읽어봤다. 키르기스스탄 1인당 국민소득이 낮기에 주변 나라에 일하러 가는 경우가 많은데 잘못된 정보로 ‘현대판 노예 생활’을 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쓰여 있다. 어려움을 겪을 때 정부 기관의 도움을 받으라는 내용과 명함이 있다. 매춘 조직에 팔려 가고, 8년간 농장 노예로 시달리고, 무용수로 갔는데 성매매를 강요받아 고통받은 사례들이 있었다.
한국에는 키르기스스탄 시민이 겪은 고통과 같은 사례가 없을까. 가수와 무용수로 온 필리핀 여성이 성매매를 강요받다 소홀한 틈을 타 탈출한 소식을 읽은 적이 있다. 캄보디아 여성 노동자가 농장의 비닐하우스에서 생활하다가 겨울에 얼어 죽은 뉴스가 떠올랐다. 태국에서 온 여성이 마사지 업소에서 필리핀 여성과 같은 고통을 받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키르기스스탄 시민의 고통을 담은 팸플릿에 우리의 얼굴이 겹쳤다.
구르 에미르에 갔다. 티무르가 가장 사랑했던 손자 무함마드 술탄을 위해 1403년과 이듬해에 걸쳐 지은 무덤이다. 구르 에미르는 티무르의 무덤이기도 하다. 티무르는 1405년 명나라 원정길에 사망했다. 이후 아들과 손자가 묻히면서 가족묘가 됐다.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은 티무르와 그의 손자 울루그 벡을 위대한 군주로 추앙하기에 참배하는 사람이 많다.
구르 아미르에서 나와 햇빛을 피하러 응달에 갔다. 수염이 멋진 남자 둘이 의자에 앉아 있다. 눈이 마주치면서 말을 나눴다. 아프가니스탄 사람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한국도 자기들과 비슷한 상황이라며 손을 내민다. 그들 눈에는 한국이 여전히 내전에 시달리고 있다고 보는지. 외국을 여행하다 보면 이런 일을 종종 겪는다. 케이 팝과 영화, 드라마로 한국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졌지만 나이 든 분 중에는 한반도에 차가운 기운이 가득하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안타깝지만 이 또한 우리의 과제임을, 한반도에 평화가 깃들어야 함을 다시 또 느낀다.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길이다(간디)’
새벽시장에 가는 걸 좋아해 타슈켄트에서도 새벽시장을 보고 싶었다. 초르스 바자르가 5시부터 문을 연다기에 아침 일찍 갔다. 입구부터 생동감이 넘친다. 둥근 돔 모양 건물 안에는 소고기, 양고기 판매대가 가득하다. 수레가 판매대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간다. 판매대에서는 옮긴 고기를 자르느라 바쁘다. 수염 기른 건장한 남자들이 칼과 도끼 들고 있으니 억센 기운이 가득하다. 눈이 마주치니 움칫, 긴장됐다.
고기를 자르던 이슬람 모자를 쓴 남자가 “한국 사람?”이냐고 묻는다. 그렇다니 악수를 건넨다. 고기를 다듬던 비릿함이 내 손에 가득 전해졌다. 대구에서 2년 동안 일했다고 한다. “우즈벡 좋아?” “좋아요. 사람들이 좋아요. 한국 좋았어요?” “음… 조금.”이라고 한다. 외국인 노동자에 이슬람교 신자인 지위로 한국에서 생활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거다. 내가 우즈베키스탄 여행에서 받는 마음만큼 한국에서 받지 못한 것 같아 미안했다.
숙소로 오는 길, 얀덱스 기사는 1년간 한국에서 일했다고 했다. 1년 일했는데도 우리 말을 잘한다. 그때 만난 사장님이 참 좋은 분이라고 칭찬한다. 같이 술을 자주 마셨다고 한다. 얼마 전에 타슈켄트에서 만났다고 한다. 한국 사람을 만나 반갑다며 사진을 찍자고 한다.
이곳 사람들이 “곤니찌와”, “니 하오”라고 인사할 때 많다. 한국 여행객 중에는 “노! 코리아. 안녕하세요!”라며 한국인임을 힘주어 말하는 사람이 많다. 나는 “곤니찌와”라고 하면 “곤니찌와”, “니 하오”라고 하면 “니 하오”라고 대답한다. 인사를 건넨 것에 맞게 인사를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어느 나라 사람인가 보다는 선량한 사람으로 비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선량한 한국인, 선량한 중국인, 선량한 일본인이라면 결국 남는 것은 선량함이 아닐까. 세계를 여행하는 마음에는 세계 시민으로 자리매김하고픈 것도 있기에 굳이 한국인임을 드러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박노해의 시 ‘나 거기에 그들처럼’에 나오는.
“페루에서는 페루인처럼 / 인도에서는 인도인처럼 / 에티오피아에서는 에티오피아인처럼 / 팔레스타인에서는 팔레스타인인처럼 / 그곳에서는 그들처럼”
◇최승룡= 중등사회교사, 강원도교육청 대변인, 교육과정과장, 강원도교육연수원장으로 일했다. 실크로드, 유라시아에 호기심이 많아 이곳을 안내하는 책, 여행을 좋아한다. 8월 중순∼9월 말 중앙아시아 몇 나라를 여행하며 이곳의 지리와 문화, 우리와의 친연성을 6차례의 연재를 통해 강원도민일보에 소개한다.
Copyright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밤 중 불 난 대학교 기숙사에서 한 대학생 용기가 대형참사 막았다
- "시야 가릴 정도로 출몰" 강릉 도심 곳곳 날파리떼 등장
- 중대장 요구로 팔씨름하다 체육전공생 병사 팔 골절…"군검찰 불기소 부당"
- '뺑소니 의혹' 황선우 '무혐의' 결론…경찰, 치상 혐의만 적용 송치
- 박태환이 친 골프공에 망막 다친 골퍼 "박태환 대처 미흡" 항고
- ‘초가지붕이 뭐길래’…고성 왕곡마을 보존 사업비 논란
- 'N번방 사건' 공론화 박지현, 배현진 지역구 송파을 출마 선언
- 배우 송중기 춘천 방문 “영화 곳곳 강원 찾는 재미 갖길”
- “음식서 머리카락 나왔다” 환불받은 유튜버 벌금 500만원
- [영상] 마세라티 승용차 소양강 추락… 20대 운전자 숨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