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군장병 독후감 대상] 공명(共鳴) 하다

백승만 2023. 11. 7.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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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신영 ‘경청’ 을 읽고

‘경청’ 이 책은 듣는 사람보다 말하는 사람이 훨씬 많은 현대사회에서, 차분히 상대에게 귀를 기울여 듣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소통의 지혜인지를 알려주고 있다. 들을 수 없는 병에 걸린 주인공이 자신의 독선적인 행동을 뉘우치고, 상대의 마음을 얻어가는 감동의 이야기를 통해 공감과 상생을 위한 경청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 자기계발서인데도 소설 형식으로 전개되어 소설과 같은 내용을 통해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왜 경청을 해야 하는지, 경청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전달해 주고 있다.

부대에서 보급병으로 근무 중인 김 일병은 입대 전부터 앓고 있던 허리디스크로 고생 중이다. 요 며칠간 작업을 쉬었더니 분대장인 손 중사가 눈치를 준다. ‘너만 힘든 줄 알아? 다들 힘들고 서러운데 참고 견디는 거야.’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김 일병의 가슴 한켠으로 시린 겨울바람이 스치는 듯했다. 집에 계신 어머니의 상태가 호전될 기미가 없다는 문자를 받았음에도, 그는 눈물 훔칠 새도 없이 작업에 투입했다.

분대장 손 중사는 분대를 질서 있게 이끌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 용사 한 명, 분대 한 개, 부대 전체로 그런 질서가 유지되길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처럼 용사들과 후배들은 따라주지 않고, 행정보급관은 종종 손 중사의 방식에 대해 불만을 쏟아낸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너무 네 욕심대로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건 아니냐? 너 자신부터 잘해라”라며 꾸중을 듣기 일쑤다. 손 중사는 그런 행정보급관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노력이 부질없음을 탄식한다.

행정보급관 백 상사의 얼굴에는 어느새 거칠고 투박한 군인의 세월이 흐른 듯 주름이 자글자글하다. 중대 전체를 하나하나 지휘하고 바로잡으려고 애쓰다 보니, 정작 본연의 업무에는 통 신경을 쓰지 못했었다. 또 이제는 가정에도 충실해지고 싶어졌다. 오늘도 윤 일병인가 하는 병사 하나가 면담을 요청하여 듣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두 살 난 딸이 열이 높아 병원에 가야 한다는 아내의 문자를 받고 환복도 하지 못하고 달려 나갔다.

위의 세 명은 사실 ‘경청’의 등장인물이 아니다. 그러나 이 책과 관련된 주요한 공통점이 있다. 김 일병과 손 중사, 백 상사는 각자 처한 상황이 너무나도 달라 쉽게 서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자신에게 닥친 고통이 너무 커 남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경청’의 주인공 이토벤 과장이 그랬던 인물이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는 스스로 정한 신념이 있다는 것이다. 그에게 대화란, 항상 상대방의 말을 반박하고 논리적인 허점을 찾아내며, 결국에는 자신의 의견을 관철할 방법을 찾는 수단이다. 여기까지는 그저 줏대있고 고지식한 인물이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문제는 고통과 슬픔에 찬 사람들의 외침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토벤 과장은 수제 현악기 제조회사에서 일한다. 주변 동료들의 의견은 ‘그저 안돼, 좋지 않아’ 등 짧은 한마디로 일축해 버린다. 그가 들으려 하는 소리는 오직 바이올린 켜는 소리다. 바이올린 소리만이 그를 위로해 주고 동감해 준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속이 텅 빈 울림통에서 맑고 고운 소리를 내는 바이올린과는 달리, 자기만의 세계로 가득 차 소리를 듣지도, 외치지도 못하는 이토벤의 대비되는 모습이 처량하게만 느껴지기도 한다. 결국에는 그렇게나 건강검진을 권유하던 아내의 목소리마저 거부한 채 청신경이 손상되어 정말로 귀가 들리지 않게 된다.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과연 나는 이 사람을 비판할 자격이 있는가?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때 정말로 가슴으로 듣고, 마음으로 말하고 있는가? 사실은 이토벤과 같은 극단적인 인물과 대비됐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들을 줄 아는 사람’이란 ‘상대방으로 하여금 말하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을 열고 듣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을 열고 말하도록 유도하는 사람인 것이다.

서론에서 든 예시에서 김 일병과 손 중사, 백 상사는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기를 꺼리며, 애초에 남의 사정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서로 간의 ‘차이’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여기에서 등장시킨 백 상사는 바로 나 자신이다. 행정보급관으로서 나만의 말 못 할 고충이 있고, 다른 사람은 전혀 이해하지 못할 거라며 어느 순간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왜 내가 힘든지 알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저 힘들 거야, 힘들어 보인다.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가끔 복도에서 마주치는 전문상담관님이 “많이 힘들어 보이세요. 저랑 대화 좀 나누실래요?” 손을 내밀어도 미소만 지어 보일 뿐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내가 내 마음 속 이야기하는 걸 피했던 게 결국 다른 사람들의 소리를 들으려고 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 또한 또 다른 이토벤, 김 일병, 손 중사, 백 상사였던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 누군가 내게 ‘당신은 진심으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묻는다면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나 이외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선, 우선 나의 목소리를 듣고 그것을 내 아내, 용사들, 간부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용기를 키워야 한다. 설령 그들에게 닿지 않더라도, 내가 진심으로 원하고 바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는 게 작가가 나에게 보여주려는 뜻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최상의 바이올린을 만들기 위해서는, 줄을 타고 소리가 울려퍼지는 공간인 ‘공명통’이 세심한 손길로 제작돼야 한다. 그런 바이올린들은 나무의 결을 따라 섬세한 수작업으로 마치 나무와 대화를 나누듯 부드럽게 깎아 만든 공명통을 가지고 있다. 이에 비해 저가 보급형 바이올린들은 나무의 특성이나 결과 상관없이 똑같은 틀, 똑같은 힘으로 공명통을 찍어낸다. 작가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공명통과 사람의 마음은 비슷해 보인다. 상대방의 특성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가치관대로 찍어 눌러버리면, 그 사람은 결코 진실한 소리를 낼 리 없다. 자기 마음이 그럴 여유가 없어져 버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공명통을 비운 채 상대의 마음 그대로 내 텅 빈 마음속에 집어넣을 수 있다면 구태여 힘을 쓰지 않아도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는 최상품의 인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끝으로 책을 다 읽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주인공의 이름이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베토벤은 귀가 들리지 않았다. 베토벤을 빗대어 주인공의 이름이 이토벤이었던 것이다. 이토벤의 별명은 베토벤으로,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귀머거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주인공 이토벤의 감동적인 일생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는 단절된 소통의 답답함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돈을 벌기 위해 평일에는 직장으로 내몰리고, 또 주말에는 가정에서 쉽게 소외당하곤 하는 대한민국의 아버지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에게도 인간관계의 해답을 말하고 있는 이 책. 모두가 한 번쯤 읽어보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 백승만 육군 21사단 상사

[수상소감] 나 자신을 돌아보며 따뜻한 위로 받아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 최전방을 수호하는 제21보병사단에서 임무수행 중인 백승만 상사입니다.

저는 늘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아내가 힘들다고 이야기하면 ‘뭐가 힘들다는 거지?’, ‘뭐가 문제지’라는 문장이 제일 먼저 떠올랐습니다. 대부분의 대화에서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공감은 건너뛴 채, 해결책만을 제시하는 이 책의 주인공 ‘이토벤’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올봄 아내와 크게 다투게 됐고 그 여파는 직장인 부대까지 이어졌습니다. 하루가 멀다고 아프다고 하는 내 부하들, 열심히 한다고는 하는데 내 성에 차지 않는 후배들 등 주변의 모든 것이 싫었고, 짜증과 화만 나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던 중 조신영 작가의 ‘마음을 얻는 지혜(경청)’를 만났고, 읽는 내내 그동안 받지 못했던 따뜻한 위로와 보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 날 관찰하고 적은 것 같은 내용, 하루하루 이토벤처럼 되고 싶지 않아 노력한 나날들….

이제 주말이면 다시 아내와 산책을 합니다. 낙엽을 밟을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너무 좋아 일부러 함께 낙엽이 많은 쪽으로 걸어 다니며 함께 웃기도 합니다. 행복합니다. 이미 많은 보상을 받았는데, 제 이야기를 독후감에 잘 녹여낸 덕에 대상이라는 큰 상을 또 받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글을 보신 모든 분이 저처럼 행복해지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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