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보이지 않는’ 이재명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보이지 않는다. 구속영장 기각과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압승으로 그의 화려한 컴백이 예상됐다. 정부·여당과 검찰의 공세는 기가 꺾였고, 당내 비주류의 반발은 주춤했다. 민주당이 ‘이재명 체제’로 총선을 치르는 것은 기정사실화됐다. 지금부터는 ‘이재명의 시간’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슈의 중심에서 이 대표는 조금 멀어져 있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뉴스를 독식하는 쪽은 여권이다. 윤석열 정부의 대척점에는 제1야당 지도자인 이 대표가 아니라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 데이터가 그렇다. 네이버 데이터랩에서 검색량을 살폈다. 이 대표가 35일 만에 당무에 복귀한 10월23일부터 11월5일까지 ‘이재명’ ‘이준석’ ‘윤석열’이라는 단어 중 이 대표가 1위를 차지한 날은 10월23일 한 차례뿐이었다. 같은 기간 이준석 전 대표는 네 차례 1위였다. 이 대표는 총선을 5개월 앞두고 소용돌이치는 정국의 중심에서 비켜나 있는 셈이다.
왜 그럴까. 이 대표 복귀 후 보름간 행보를 살펴보자. 먼저 그의 통합 행보가 기대만큼 강하지 않았다. 복귀 당일 체포동의안 가결파 징계 논란에 대해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곧바로 친명계 최고위원들은 “잠시 미뤄둔 것”이라며 여지를 남겼다. 당장 칼을 쓰지는 않겠지만 칼집엔 넣어두고 있다는 경고로 당내에선 받아들여졌다.
나흘 후인 10월27일 이 대표는 비명계 송갑석 의원이 물러난 지명직 최고위원 자리에 친명계인 박정현 전 대전 대덕구청장을 임명했다. 당 내외에서 비판이 일자 이 대표는 기자들에게 “그분이 친명입니까? 저는 잘 모르겠는데”라고 했다. 박정현 최고위원은 11월3일 최고위원회의에 처음 참석해 “이재명 대표를 중심으로 당이 똘똘 뭉쳐 총선 승리”라고 말했다. ‘명비어천가’를 불렀단 평가가 당 내외에서 쏟아졌다.
이 대표는 의제도 주도하지 못했다. 복귀 당일 일성이 “내각 총사퇴”였다. 너무 나갔다고 생각했는지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전면적인 국정쇄신을 하는 각오로 민생을 챙기라는 강조의 의미였다”고 톤 조절에 나섰다. 이 대표가 11월2일 기자회견을 열고 밝힌 ‘성장률 3% 회복을 위한 제안’도 재정 확대 외에는 구체적인 성장 전략이 없었다. 재원 마련에 대해서는 ‘낭비성 예산 삭감조정’과 ‘정부·여당과의 협의’라는 말만 남겼다.
민주당이 주춤한 사이 정부·여당은 ‘메가 서울’, 한시적 공매도 금지 등 포퓰리즘 정책을 추진하며 총선판을 흔들고 있다. 이 대표와 민주당은 명확한 입장을 제시하지 못하고 여론의 눈치를 보고 있다. 이런 와중에 민주당은 최고위원회의에서 김포의 서울 편입 논란과 관련해 역술인 천공 영상을 틀어놓고 함께 관람했다. 틈만 나면 김대중·노무현 정신 계승을 이야기하는 정당의 모습이라기에는 민망한 현실이다.
사석에서 만난 정부·여당 관계자들은 총선 결과를 비관하지 않는다. 그 첫 번째 이유로 여전히 ‘이재명 리스크’를 꼽는다. 일단 수면 아래로 내려간 사법 리스크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친명계 의원들조차 “이 대표와 민주당은 안 보일수록 좋다”는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를 한다. 농담만은 아닐 것이다.
강병한 정치부 차장 silverm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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