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한 달 전인가. 혜화 어느 빌딩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날, 엘리베이터를 함께 기다리는 낯선 사람이 나에게 무언가를 물었다. 스타리아를 타고 왔냐고. 네? 처음 보는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거는 것도 이상했지만, 난데없이 스타리아 차종이 내 차인지를 묻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기에 우선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나의 대답을 듣고는 아 하더니 이어서 스타리아가 정말 좋다고 말했다.
그는 발달장애인 당사자이자 문석영이라는 이름을 지닌 장애인권 활동가였다. 그는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스스로 자신의 권익을 옹호하는 피플퍼스트센터라는 단체의 소속이었다. 오랜 시간 발달장애인의 권익 운동은 대부분 장애인 가족을 통해 대신 이루어졌지만, 피플퍼스트운동은 발달장애를 가진 이들 스스로 모여 권리를 옹호하는 참여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단체였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커다란 자동차 이야기를 하다 헤어진 그를 더 알고 싶어 그의 소셜미디어 계정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사회 곳곳에서 야무지게 쓰이는 이 승합차에 관한 각종 리뷰를 모아두었다. 얇고 길쭉하게 생긴 눈을 갖고 뭉툭한 전면부의 모습이 흡사 성격 좋은 메기처럼 보이는 거대한 승합차에 푹 빠진 발달장애인 활동가는 아무래도 자신이 언젠가 ‘삐뽀삐뽀’ ‘나란히나란히’ 우렁차게 소리 내고, 열 맞추어 움직이는 하얀색 스타리아가 되기를 꿈꾸는 것 같았다.
한참 그가 올린 같은 차종의 사진들을 들여다보다 문득 그가 이 자동차에 ‘꽂힌’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이 대형차는 어디선가 구급차였으며, 동시에 장애인야학 통학 승합차가 되기도 했다. 그는 아무래도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동시에 장애인의 삶을 구하기 위해 출동하는 이 자동차의 쓸모를 깊이 사랑하게 된 것만 같았다.
그로부터 두 주 뒤, 국회 국정감사를 모니터링하다가 문석영 활동가가 참고인으로 출석하는 모습을 보았다. 새치와 흰 눈썹을 지닌 그는 하얀 정장을 입은 채로 국회의원들 앞에 섰다. 마치 그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는 ‘하얀색 스타리아’처럼.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국정감사장에 참고인으로 선 최초의 순간이었다.
정부의 일방적인 예산 삭감 기조 속 중증발달장애인의 공공일자리 중 하나인 ‘동료지원가 사업’이 꼼짝없이 폐지를 앞두게 된 순간, 그는 권력자들 앞에 서서 당당히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10년간 공장에서 일하며 정신력으로 버텨왔지만, 사람들은 발달장애를 가진 나를 무시해왔다고. 그래서 늘 주눅이 들고 우울하고 외로웠다고. 그렇지만 다른 장애인을 돕는 동료지원가가 되면서 처음으로 나의 쓸모를 생각하게 되었다고. 그러니, 고용노동부 장관님, 국회의원님, 제가 다른 동료 장애인의 직업 생활을 돕는 동료지원가로 뼈를 묻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또박또박 말했다.
엄숙한 국정감사장에서 그가 스타리아가 되고야 만 순간을 보았을 때, 생명을 구하고 삶을 구하는 그 자동차가 되었을 때, 아니, 그 차 이상으로 더 크고 멋진 책임감을 보였을 때, 나도 모르게 ‘아!’ 하고 탄성을 지르고야 말았다.
변재원 작가·소수자정책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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