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래군의 인권과 삶] 책임자를 찾습니다

기자 2023. 11. 6.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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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 광장의 한 모서리에는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있다. 천막으로 만들어진 이 분향소는 매일 오전 8시에 문을 열고 오후 10시에는 문을 닫는다. 유가족과 시민들이 매일 이 분향소를 지킨다.

이태원 참사 1주기였던 10월29일, 추모대회에 시민들이 많이 참석했다. 추모대회가 끝나고 서울시청 광장에 가득 찼던 군중은 모두 돌아갔다. 저녁 먹고 난 다음에 지하철을 타려다가 분향소에 들렀다. 아무래도 시민들이 북적이던 1주기 추모기간이 끝난 다음이니 쓸쓸하게 유가족들이 분향소를 지킬 것 같아서다. 그날은 밤 10시가 넘어도 분향소 문을 닫지 못했다. 분향소에 시민들이 계속 찾아왔다.

상급자, 책임에서 자유롭고 무능

분향소 제단에 올려져 있는 얼굴들을 찬찬히 보았다. 150명의 얼굴 사진이 모두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기 꺼리는 그 자리에는 국화꽃 한 송이 그려진 액자가 대신 놓여 있다. 분향소의 얼굴 사진에는 아무런 고통이 없다. 생전 모습 그대로 그들은 미소를 띠고 있거나 싱싱한 얼굴로 그 자리에서 사람들을 맞아주었다. 10대부터 20대, 30대, 40대, 50대의 얼굴도 있었고, 외국인들도 있었다. 그들이 한날, 한 장소에서 고통스럽게 숨을 멈췄다. 그들이 살아갈 날들이 거기서 멈췄다.

지난 3일 유엔인권이사회(UNHRC)는 대한민국의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국가보고서’ 심의 결과를 최종견해(권고)로 발표했다. 한국 정부에 “이태원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한 독립기구를 세우고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권고했다. 대한민국은 이를 이행해야 할 국제법적 의무가 있다.

그런데 정부는 이 권고를 이행할 의사가 없어 보인다. 보고서 심의 과정에서 “참사 직후부터 경찰의 특별수사본부 수사, 검찰 수사, 국회의 국정조사 등 대대적인 조사와 수사가 이루어졌다”는 입장을 보였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국가안전시스템 개편 종합대책을 마련했으므로 재발방지 대책도 세웠다고 강변한 것이다. 국제인권규약 당사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현한 것이었다. 이런 정부의 인식은 피해자인 유가족협의회나 시민들의 입장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지난 2일에는 세월호 참사 당시 해경 지휘부에 대한 대법원 확정판결이 있었다. 모두 무죄였다. 대형 참사가 날 것을 ‘예견하기 어려웠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었다. 이런 식의 법원 판결이 재난 참사 때마다 이어지는 것을 잘 아는 이태원 참사 책임자들은 재판 과정에서 ‘사고를 예측할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현행법상 구체적인 행위자가 아닌 상급자의 경우는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고, 무능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므로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나 1999년 씨랜드 참사,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나 2014년 세월호 참사 때 모두 똑같이 말단만 처벌받고, 상급 지휘자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무책임의 구조가 건재하다. 그 결과는 언제고 대형 참사가 일어나도 이상할 게 없는 위험한 나라다.

이태원 참사 뒤에 정부가 범부처 합동으로 세웠다는 재발방지 대책도 마치 압사로 인한 참사가 ‘신종 재난 참사’인 것처럼 취급한다. 우리나라에서는 2005년 10월 상주시민운동장 콘서트 압사 참사로 11명이 사망하고, 70여명이 부상하는 등 압사 사고가 여러 차례 있었음에도 이태원 참사를 신종 재난으로 간주하는 것부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휘 책임자들은 털끝만치도 수사선상에조차 올리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히는 것은 왜일까?

제발 무책임의 구조 걷어내자

재난 참사 피해자들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다. 그들이 개인의 복수심에서 그걸 놓지 못하는 게 아니다. 재난 참사 유가족들을 직접 만나 많은 이야기를 들어온 정혜윤씨는 <삶의 발명>이란 책에서 이렇게 썼다. “유족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은 구해야 할 것이 있는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삶도 죽음도 무의미하지 않기를 바라는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중략) 그러기에 이것이 많은 유족들이 반복적으로 하는 말,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라는 한 문장 안에 담긴 말 없는 말이다.” 이태원 참사에서는 그리고 오송 궁평지하차도 참사에서는 책임자가 없다는 결론을 보아서는 안 될 일이다. 책임자가 제대로 처벌되어야 우리는 그들처럼 유가족이 되지 않는다. 제발 무책임의 구조를 걷어내자.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4·16재단 상임이사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4·16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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