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아픔, 마주하고 나아갈 때 ‘치유’가 시작되죠

한겨레 2023. 11. 6.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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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를 하다 수년 전 암병원에서 음악치료를 할 때받은 통증 차트를 발견했다.

암병원은 위생에 아주 철저했고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들에 관한 각종 연수 과정을 거친 뒤에야 음악치료를 시작할 수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보통 통증'이다.

"재미있지 않아요? 우리는 보통, 통증을 달고 사나봐요. 보통 통증이 보통때 모습이라니요." '통증 없음'의 밝은 모습은 오히려 드문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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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아트코리아

[왜냐면] 구수정 | 음악치료사

청소를 하다 수년 전 암병원에서 음악치료를 할 때받은 통증 차트를 발견했다. 암병원은 위생에 아주 철저했고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들에 관한 각종 연수 과정을 거친 뒤에야 음악치료를 시작할 수 있었다. 막상 들어가보니 그럴 만 했다. 암병원의 환경은 일상과 거리가 멀었고, 환자의 신체 리듬은 모두 무너져 있었다.

그 중 흥미로웠던 것은 환자의 표정을 읽고 통증 정도를 가늠하는 잣대가 있다는 것이다. ‘통증 없음’부터 ‘최악의 통증’까지 여섯 단계로 나누었는데, 단계별로 할 수 있는 의학적 조치가 달랐다. 물론 음악치료사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다.

차트에 표시된 통증별 표정은 이렇게 세밀하게 나눌 수 있구나 할 만큼 신기했다. ‘통증 없음’은 밝게 웃고 있고 ‘약한 통증’은 희미하게 웃고 있다. 통증이 심해질수록 얼굴 표정이 제어가 안 되고 ‘최악의 통증’은 끝내 참을 수 없는 울음을 터트리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보통 통증’이다. 눈알이 힘이 들어가 있고 입은 앙 다문 상태다. 그런데 이 표정, 어디서 많이 보지 않았나? 지하철 버스에서 많이 마주치는 얼굴이자 나의 이웃, 나의 가족, 내 얼굴에서 많이 보던 모습이다. 미간은 주름지고 그간의 고통이 얼굴에 남아 있다. 이걸 나눠주던 70대 수간호사 선생님이 말했다. “재미있지 않아요? 우리는 보통, 통증을 달고 사나봐요. 보통 통증이 보통때 모습이라니요.” ‘통증 없음’의 밝은 모습은 오히려 드문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정말 통증을 달고 사는 걸까? 가벼운 생리통에서부터 스트레스로 인한 두통까지 약한 고통을 일상에서 안고 산다. 통증의 통(痛)은 ‘아프다’ ‘아파하다’ ‘번민하다’ ‘슬퍼하다’ 괴롭다’ 등의 뜻이 있다. 모두 신체와 마음의 아픔을 뜻한다. 그런데 통(痛)자를 자세히 살펴보면, 병들 녁(疒)자와 길 용(甬)자가 결합한 모습이며 용(甬)자는 고리가 달린 종을 묘사했다. 즉 침대에 누워 있는 이 가까이에 커다란 종을 치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종을 치면 그 진동이 은은하게 퍼지듯 고통이 온 몸에 은은하게 퍼진다는 것이다. 통증을 느낄 때를 생각해보라. 싸르르 아프기도 하고 쇠꼬챙이로 푹 지르듯 아프기도 하다. 그런 통증의 진동을 소리의 진동으로 묘사한 직관력이 대단하다.

인생에서 어떤 고통이 있을까. 신체적 통증도 있을테고, 가까운 이의 통증을 지켜보는 고통도 있다. 자신의 진로나 집안 사정 등으로 인한 마음 꺾임도 있고, 소소한 신경증적 통증도 있다. 그런데 논어의 ‘고진감래’라는 말처럼 고통 뒤에는 언젠가 좋은 날도 있고 웃을 날도 있다. 영화 속 영웅들은 자신의 고통스런 시절을 넘어서야만 하고, 현실 속에서도 젊을 때 잘 나가던 이가 장년이 되어서 잘 나가리란 법이 없다. 차례로 고난을 극복하는 대기만성형도 있고, 인과응보란 말처럼 언젠가 벌은 돌아온다. 상담실에서 듣다 보면 인생 편안할 것 같은 사람도 다 굴곡이 있고 통증의 시간이 있다.

고통이야말로 그 사람의 성격을 형성한다. 그런데 인생의 고통을 마주할 때 중요한 것은 ‘태도’다. 통증을 감출 필요는 없다. 감정을 추스린 뒤 호흡을 길게 내뱉고 나의 통증을 직시하는 것이다. 현재 나의 상태는 이러한 고통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저 반 발치라도 걸음을 떼어 보는 것이다. 뒤로든 옆으로든 앞으로든 제자리든. 인간은 그렇게 극복하기도 멈추기도 하면서 나아간다. 그렇게 나아간다는 것은 ‘낫는다’는 말과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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