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칼럼] 카르텔로 내몰린 과학자 명예회복 필요하다

2023. 11. 6.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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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대폭 삭감했던 국가연구개발 예산의 일부가 국회 심의 과정에서 일부 증액될 모양이다. 추경호 부총리가 지난 3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에 출석해서 그렇게 밝혔다. 예산 삭감에 대한 "연구 현장의 우려를 잘 알고 있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하루 전 발언 덕분이다. 물론 예산의 부분 증액으로 과학기술계의 반발이 사그러들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예산 삭감 자체가 연구개발 문제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계가 정부의 예산 삭감에 격하게 반발하는 것은 사실이다. 국가연구발 예산을 분명한 근거도 없이 16.6%나 삭감해버린 것은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다. 과기부가 구체적인 삭감 내용도 밝히지 않은 탓에 연구 현장의 불안은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고 있다. 청년 연구자들의 일자리가 없어지고, 주요 연구시설의 정상 가동도 어려워질 것이라는 '괴담'에 연구 현장이 쑥대밭으로 변하고 있다.

물론 정부 예산은 삭감할 수 있다. 내년도 세수가 크게 줄어든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세수 감소의 원인이 무엇이든지 상관없다. 국가연구개발 사업이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성역도 아니고, 연구개발 예산을 절대 깎으면 안 된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국가 재정이 어려우면 과학자도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실제로 1991년에도 연구개발 예산을 삭감했었다.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예산안의 제출 시한도 넘길 수 있다. 마지막 순간에 심각한 하자가 드러난다면 예산안을 바로잡는 것이 마땅하다. 어떤 경우에도 '연구개발답지 않은 연구개발'에 소중한 국가 예산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절차를 핑계로 엉터리 예산안을 국회에 넘겨서는 안 된다. 물론 엉터리 예산안을 만든 과정은 철저하게 밝혀내서 확실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유야무야 넘어갈 일이 절대 아니다.

그렇다고 국가연구개발 예산을 아무렇게나 난도질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연구개발 사업의 경중을 신중하게 살피고 따져서 합리적인 우선순위를 만들어야 한다. 연구개발 사업의 핵심인 기초과학과 출연연 예산을 무차별적으로 삭감한 것은 절대 합리적인 우선순위라고 할 수 없다. 선진국의 연구개발 현장을 체화(體化)해야 한다는 알량한 이유로 철 지난 '추격형' 국제협력의 사업비를 무작정 3배 이상 증액한 일도 마찬가지다. '보일러 교체'를 위한 선제적 예산 삭감은 소가 들어도 웃을 일이다.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연구개발 예산 삭감이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과기부가 지난 3월에 밝힌 국가연구개발 중장기 투자전략에서 밝혔던 170조 원이 국가재정운용계획서에는 145조7000억 원으로 줄어버렸기 때문이다. 해명이나 변명도 없었다. 내년에는 예산을 늘여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선뜻 믿기 어려운 이유다.

정작 과기계가 격하게 반발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과학기술자문위원회의 심의까지 거친 예산안을 제멋대로 뜯어고친 과기부의 졸속 행정에 대한 재발 방지 대책이 필요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존재 이유를 묻고 있다는 사실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연구개발 예산을 삭감해서 취약계층 지원에 배정했다는 주장도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느닷없이 약탈적 이권 카르텔로 전락한 과학자의 명예 회복이 꼭 필요하다. 그동안 국가 발전의 주역이라고 자부하던 과학자들의 명예와 자존심을 되살려 줘야 한다는 뜻이다. 내년에는 예산을 늘여줄 수 있을 것이라는 정도의 얄팍한 감언이설로 그칠 일이 절대 아니다. 소부장과 감염병에 대한 긴급 예산을 흥청망청 써버리고, 중소기업 지원을 핑계로 브로커의 배를 채워준 엉터리 행정의 실체를 밝혀내고 무거운 책임을 물어야 한다. 연구개발 사업을 관리하는 엉터리 '어공' 관료들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연구개발 예산을 더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원로와 신진연구자의 상식적 발언을 '나눠먹고, 갈라먹는 카르텔'에 대한 고해성사로 변질시켜버렸다.

청년 과학자들이 이번 예산 삭감에 반발하는 상황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의 핵심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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