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연기된 ESG 공시, 로드맵은 빨리

박은희 2023. 11. 6.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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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희 산업부 재계팀장

금융위원회가 지난달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 도입 시기를 2026년 이후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당초 2025년부터 자산 2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법인에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공시의무를 부과하기로 했으나, 현실적인 문제들을 고려해 1년 이상 미루기로 한 것이다.

금융위는 미국 등 주요국의 ESG 공시 의무화가 지연됐고, 국내 참고 기준인 IFRS-ISSB가 지난 6월에야 확정된 점 등을 반영했다고 밝혔다. 공시 기준과 개념이 명확하지 않아 준비할 시간이 촉박하다는 경제계 의견도 수렴한 결정이다. 이에 따라 ESG 공시 의무화 대상 기업과 기준 등을 담은 로드맵 발표는 올해 하반기에서 내년 상반기로 미뤄졌다.

경제계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ESG 공시 어려움을 호소하며 의무화 조기 시행의 문제점을 지적해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 9월 ESG 공시 의무화 시기를 기업 현실에 맞게 재조정해야 한다는 내용의 의견을 금융위에 전달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지난달 금융위 발표 직전 'ESG 공시 의무화 조기 시행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보고서를 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8월 국내 기업 100곳의 ESG 담당 임직원을 대상으로 국내 ESG 공시제도에 대한 의견을 조사한 결과 'ESG 공시 의무화 일정을 최소 1년 이상 연기하고, 일정 기간(2∼3년) 책임면제 기간을 설정하는 것이 적정하다'는 응답이 56.0%로 가장 많았다. 기업들은 협력업체 데이터 측정·취합 어려움(63.0%), 구체적인 세부 가이드라인 미비(60.0%)가 ESG 공시 관련 애로사항이라고 했다. 한경협이 회원사 조직인 K-ESG 얼라이언스를 통해 실시한 조사에서도 기업 61.1%가 '모호한 공시 개념과 명확한 기준 부재'를 ESG 공시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

한 대기업 ESG 담당 임원은 "구체적 가이드라인도, 표준 플랫폼도 없어 기업이 자체적으로 배출량을 측정하고 공시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래선 투자자들도 상호 비교가 불가능하고, 기업만 공시정보에 대한 모든 위험 부담을 지게 된다"고 호소했다.

지속가능성 공시 제도 확립에 가장 중요한 건 신뢰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자율 공시와 자율 인증 단계에선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정보의 정확성과 인과관계 등을 파악하는 게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대부분 기업들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가 아직 경영 산출적 차원의 사회적 책임성과 홍보성에 머물러 다양한 투입자본의 사회적 영향에 대한 측정과 설명은 취약하다고 평가했다.

김경식 ESG네트워크 대표는 "사업보고서와 달리 지속가능경영보고서는 이해관계자를 대상으로 해 그들이 요구하는 패턴으로 작성하는 게 형식화됐다"며 "제대로된 보고서를 내놓는 곳은 드물다"고 밝혔다. 삼성과 SK가 최근 이사회의 견제·감독 기능을 강화하기로 하는 등 하나씩 바꿔나가며 ESG 경영의 모범을 보이고는 있지만, 대기업도 보고서에 허점들을 다수 담고 있었다.

김 대표가 국내 대표 제조기업 5개사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재계 1위 삼성전자 보고서에는 국내 온실가스 감축률은 자료가 없고, 배출전망치 대비 감축량을 밝혀 탄소중립 관점에서 의미가 없었다.

현대차는 장애인 고용률이 2021년 3.13%에서 2022년에는 2.82%로 후퇴했으나 본문이나 자료에서 설명하지 않았다. SK하이닉스와 LG화학은 다양성과 포용성을 강조하면서 장애인 고용률을 공개하지 않았는데, 계산 결과 각각 0.6%, 1.7%에 그쳤다. 포스코의 경우 2030년까지 온실가스 10% 감축을 선언했는데 자료상으로는 진도율이 보이지 않았다.

금융위는 ESG 공시 도입 시기를 '2026년 이후', 공시기준 구체화는 '내년 1분기 중'이라고 포괄적으로 정했을 뿐 아직 정확한 시기를 정하진 않았다. 도입 시기는 어쩌면 경제계의 바람대로 3~4년 늦어질 수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공시기준은 최대한 빠르게 내놓아야 기업이 충분한 준비 기간을 확보할 수 있다.

수정과 보완 작업이 이어지더라도 균형 잡힌 기준부터 만들어야 한다. 가이드라인을 글로벌 지표에 부합하도록 신뢰성, 비교가능성, 검증가능성 등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전면 재검토해 내년 1분기에는 반드시 공개하길 기대한다. 더 이상 혼란의 시간이 길어지면 안 된다.eh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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