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실전 방불케 한 초대형 어선 충돌사고…긴박했던 1시간

변해정 기자 2023. 11. 6.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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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부·해경 등 17곳 참여…행안장관, 사고 대응 총괄
악조건 기상에도 일사분란 대응…이상민 "튼튼 보완"
[울산=뉴시스] 배병수 기자 = 6일 오후 울산신항 용연부두에서 ‘해양선박사고 대응훈련’이 진행되고 있다. 이번 훈련은 행정안전부가 올해부터 새롭게 도입한 레디 코리아(READY Korea*) 훈련의 두 번째이며 울산에서 진행되고 있다. 2023.11.06. bbs@newsis.com

[울산=뉴시스] 변해정 기자 = 6일 오후 2시1분. 울산시 간절곶 동방 55.5㎞(약 30 해리) 해상에서 119로 다급한 신고가 걸려왔다. 2400t급 급유선인 울산호 선장이 72t짜리 낚싯배 영덕호와 부딪혔다는 것이다.

조업을 마치고 귀항하던 영덕호가 울산호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그대로 들이받은 것인데, 그 여파로 영덕호는 전복돼 바다 밑으로 침몰했다. 당시 가시거리가 200m에 불과할 정도로 짙은 안개가 끼어 있었고, 승선원 20명 중 10여 명이 바다에 빠져 표류 중인 것으로 추정될 뿐 정확히 몇 명이나 선체에 갇혀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경유 4000t이 실려 있던 울산호 역시 좌현(뱃머리 기준 왼쪽) 화물창에 파공(구멍)이 생겨 10㎘가 순식간에 유출돼 기름 띠를 만들었다. 게다가 큰 폭발음과 함께 상부에 원인이 알 수 없는 불이 나 번지기 시작했다. 울산호에는 신고를 한 선장을 포함해 총 10명이 타고 있었고 자체적으로 불 끄기가 어렵자 구명뗏목으로 탈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물론 실제 상황이 아니다. 행정안전부가 올해 도입한 '레디 코리아(READY Korea)'의 두 번째 훈련이었다. 레디 코리아는 기후 위기에 따른 자연재난과 여러 재난이 겹쳐 발생하는 복합재난 등 새로운 위험에 대한 기관의 준비 태세를 점검하고 대응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기획됐다.

특히 2017년 12월 인천 영흥도 인근에서 발생한 낚싯배와 급유선 충돌 사고로 15명이 사망한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울산=뉴시스] 배병수 기자 = 6일 오후 울산신항 용연부두에서 ‘해양선박사고 대응훈련’이 진행되고 있다. 이번 훈련은 행정안전부가 올해부터 새롭게 도입한 레디 코리아(READY Korea*) 훈련의 두 번째이며 울산에서 진행되고 있다. 2023.11.06. bbs@newsis.com


훈련이지만 실제 상황처럼 내내 긴박했다.

119로 신고 접수를 통해 상황을 인지한 남해 해양경찰청은 함정 9척을 급파하는 동시에 행정안전부와 해양수산부, 소방청, 울산시 등 관계기관에 사고 상황을 전파했다. 사고 해역 인근에서 조업 중이던 다른 낚시배인 승리호와 동해호에도 구조 협조를 요청했다.

신고 25분 만인 오후 2시26분께 해경의 1000t급 지휘함인 '1009함'이, 1분 뒤인 오후 2시27분께 50t급 경비정인 'P-02정'과 100t급 경비함정인 '130정'이 사고 해역에 도착했다.

도착 직후 바다에 빠진 2명을 발견했지만 의식이 없음을 확인하고는 헬기로 구조 작업에 나섰다. 생명을 살릴 골든타임을 확보하려면 긴급 이송을 요했던 탓이다. 구조용 밧줄인 호이스트에 매달린 구조대원이 신호홍염(붉은 불꽃)을 터뜨려 표류자 위치를 알린 뒤 서서히 해상 위로 내려와 구조벨트를 채우고 끌어올리는 식으로 구조했다.

표류자들보다 먼저 구조된 선원은 울산호에 탑승했던 김완소(57)씨였다. 그는 다리와 머리에 심한 화상을 입어 '긴급' 환자로 분류돼 울산보건소에서 마련한 현장응급의료소에서 응급치료를 받은 뒤 울산대학교병원으로 후송됐다. 뒤이어 구조된 울산호 선원 오석근(48)씨와 김성만(58)씨는 각각 '응급'과 '비응급'으로 분류됐다.

바다에 표류됐던 또 다른 선원들도 차례로 구조됐고 울산 지역 내 각기 다른 병원으로 분산돼 옮겨졌다. 이재혁 울산시 남구보건소장은 "병원 이송 전부터 현장에서 중증도를 분류해 환자 쏠림을 막고 있다"면서 "다수 사상자 발생 시 관할 지역을 넘어 전국으로 환자를 신속히 이송하게 돼 있다"고 전했다.

그렇게 구조한 인원은 모두 18명이다.

여전히 선체 내에는 10명이 고립돼 있었다. 해경은 선체를 두드리며 생존 반응을 살폈고 생존이 확인되면 해양구조협회 소속의 민간 잠수사와 함께 즉각 구조에 나섰다.

해경은 이날 훈련에서 잠수사의 진입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선체절단 구조 기술'을 시연했다. 사고 발생 50여 분만에 고립자 10명은 전원 구조됐고 주변에선 안도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영덕호는 바다 더 깊은 곳으로 가라앉지 않도록 부력 유지를 위해 절단 부위를 봉쇄하는 작업이 이뤄졌다. 동시에 영덕호 선원 중 실종된 2명에 대한 수색을 계속 진행했다.

한 켠에서는 울산호에서 새어나온 기름을 제거하기 위해 해양환경공단이 방제선을 투입해 오일펜스를 설치했다. 드론을 활용해 실시간으로 오염군을 탐색·체크했다.

임용된 지 3년차로 현장 임시영안소 업무를 맡은 신민경 울산 남구청 노인장애과 사회복지8급은 "시나리오상 사망자가 발생하진 않았지만 실제 상황에선 사망자 신원 파악과 유족 응대를 위해 꼭 필요한 업무여서 열심히 훈련에 임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현장점검하는 이상민 행안부 장관. *재판매 및 DB 금지


그 시각 해수부는 위기경보 '심각' 단계를 발령하고 중앙사고수습본부를 가동했다. 울산시는 재난문자를 발송하고 지역재난안전대책본부를 꾸렸다.

재난안전 총괄부처인 행안부는 이상민 장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가동하고 정욱한 울산해양경찰서장으로부터 가장 먼저 상황 보고를 받았다.

이 장관은 "선체 내 몇 명이 있느냐. 에어포켓(air pocket·공기층) 내 생존 가능성은 얼마나 되나. 구조는 어떻게 이뤄지나. 가용 자원이 부족하지는 않느냐"고 질문을 쏟아냈다. 이후 현장지휘차량에서 원격으로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며 인명 피해 상황을 챙겨봤다.

이번 훈련에 동원된 인원과 장비는 17개 기관·단체 약 600명에 이른다. 단일 훈련 규모 면에선 전 국민이 참여하는 민방위 훈련을 제외하곤 역대급이다. 기존 안전한국훈련 등도 소관 부처별로 제각각 대비하는 형태로 이뤄져 협업을 요하는 실제 복합사고 상황에서는 제대로 대응하기가 역부족하다.

이 장관은 "실전과 같이 대응체계를 숙달하는 합동 훈련이 필요하다"면서 "앞으로도 레디 코리아 훈련을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훈련 결과를 검토해 잠재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복합재난에 대한 대비 체계를 튼튼하게 보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김근수 기자 =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6일 오후 울산신항 용연부두에서 진행한 'READY Korea 2차 훈련(해양사고 복합재난)' 현장을 찾아 이동식 중대본 지휘차량에서 상황판단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 = 행정안전부 제공) 2023.11.0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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