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광장] 피해자 비난하기, 이제 그만

김충제 2023. 11. 6.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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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나의 멘티가 카톡을 보냈다. 그녀는 현직 검사로 일하고 있다. "성추행 재판을 하나 진행하고 있는데, 가해자가 피해자의 전과를 이유로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아요. 그녀의 말을 어떻게 믿느냐며 전과를 자꾸 캐물어요"라며 안타까워했다. 가해자 측에서는 피해자의 도덕성을 이유로 진술의 신빙성을 문제 삼는 것이다. 피해자는 20년 전에 절도 전과가 있었다. 피해 사실만으로도 힘든데, 드러내놓고 싶지 않은 과거까지 밝혀지니 피해자는 더 고통스럽다. 도대체 과거의 전과와 지금 성추행 피해가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아직도 성폭력 사건은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피해자에게 '완벽한 피해자'와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공통점이 있다. 피해자답게 슬퍼해야 하고 비통한 표정을 지어야 피해자로 간주한다. 또 아무 흠결 없이 완벽해야 한다. 두 조건을 갖추지 못할 경우 피해자로 인정되기 어렵다. 오히려 비난받기까지 한다. 성폭력 사건의 본질은 관계의 위력의 차이에서 오는데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니 피해자 비난은 더 심해진다. 성폭력 사건에 대한 성인지 감수성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 큰 문제는 '완벽한 피해자'와 '피해자다움'이 없다는 것이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나의 멘티는 그 점을 염려하고 있었다. 피해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장하고 기특하여 나는 그녀가 그 재판에서 꼭 이기기를 진심으로 응원했다.

'피해자 비난하기'도 마찬가지이다. 어제오늘 일도 아니지만 개선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금년 봄에 모 기업의 임원이 갑자기 사직했다. 그는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며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갑작스러운 사직의 배경에는 성추행 사건이 있었다. 조사 결과 피해자의 말이 사실로 드러났고, 회사에서는 단호하게 조치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주변에서 피해자에 대해 별로 공감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처음부터 싫다고 했어야지' '본인도 그것을 이용하여 요직으로 간 거 아냐' 등등. 피해자를 비난하는 말들은 다 열거하기도 어렵다. 사실 이런 말을 듣는 것은 놀랍지도 않다. 오히려 이러한 상황이 뻔히 예상되는데도 불구하고 신고하는 용기가 정말 대단하다. 그만큼 상사의 성추행을 참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완벽한 피해자'만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성폭력 사건만이 아니었다. 2022년 10월 29일 158명의 생명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는 우리 사회에 큰 아픔과 충격을 안겨주었다. 어이없는 사고를 당한 것도 가슴 아픈 일인데 피해자들과 가족들은 일 년이 흐른 지금도 2차 피해에 시달리고 있었다. 오죽하면 사건이 발생한 지 일 년 되는 그날 하루만큼은 피해자를 추모하자는 취지에서 다음이 댓글 창을 닫았으랴. 네이버도 언론사에 댓글 닫기를 권고했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모질게 되었는지 안타깝다. 핼러윈이라는 미국 문화를 맛보기 위해 그 시간에 이태원에 간 것이 그리 비난받을 일인지. 만일 당신의 자녀나 가족이 현장에 있었다면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근거 없이, 사실 확인도 없이 피해자를 비난하는 언행은 근절되어야 한다. 특히 익명성이 보장된 댓글 창에서 일어나는 피해자 공격은 더 비열하다.

그러나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다면 형법 제307조의 명예훼손죄에 해당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실제 피해자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명예훼손죄로 실형을 받은 사례도 있다.

국민총생산(GNP)이 높다고, 경제가 발전했다고 모두 다 선진국이 아니다. 사고와 의식의 발전도 함께 따라와야 선진국이고 선진사회이다. 우리 사회가 피해자 감수성을 갖춘 진정한 선진사회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그리고 명심해야 한다. 완벽한 인간이 없듯이, 완벽한 피해자도 없다는 것을.

이복실 국가경영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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