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주석 칼럼] 서울 확장의 어제와 오늘
군사 쿠데타가 남긴 유물
서울다움, 정체성 찾아야
한양은 조선의 유일무이한 도시였다. 극소수 왕족과 권문세가 그리고 양반관리를 제외한 10만~20만 인구 중 90% 이상이 아전과 중인, 군인, 상인, 노비로 구성됐다. 사대문 밖 성저십리는 한양의 행정구역 안에 속했을 뿐 실제로는 한양이 아니었다. 한양은 경기도라는 수도권 위성지역과 성저십리라는 그린벨트에 의해 이중으로 둘러싸였다. 들어오려면 성문세라는 입장료를 내야 했다. 거주 자체가 특권이었다.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서울 진입의 봇물이 터졌다. 돈을 벌거나, 출세를 원하거나, 배우거나, 일자리를 구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서울 인구는 100배, 면적은 30배 폭발적으로 팽창했다. 서울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지향하고, 그 절반이 생활하는 대한민국의 종주도시(宗主都市)이자, 의사이상향(擬似理想鄕)이다. 한국전쟁 직후 150만명이던 서울 인구는 1992년 1100만명을 기록했다. 37년 동안 무려 940만명이 늘었다. 연평균 25만4000명씩 늘어난 꼴이다.
몇 가지 서울 확장의 에피소드는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1963년 행정구역 개편의 일등공신은 5·16 군사쿠데타의 주도세력인 제12대 윤태일 서울시장을 꼽을 수 있다. 한신·박경원 내무부 장관, 박창원 경기도지사와의 세다툼을 통해 서울을 넓혔다. 그는 라이벌 한신 장관의 지휘를 받을 수 없으니 서울시를 내부무 산하가 아닌 총리실 산하로 바꿔달라고 박정희 의장과 최고회의를 설득했다.
그 덕분에 1962년 '서울특별시 행정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만들어져 서울시가 국무총리 직속으로 승격된다. 오늘의 강남을 포함한 서울의 대확장은 '별들의 다툼'의 산물이었다. 군사정변 직후가 아니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행정구역 개편이었다. 또 제13대 윤치영 서울시장은 "서울의 과밀화를 억제하기 위해 지방민들이 서울로 전입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고 국회에서 소신발언했다가 경질됐다. 차라리 그때 사대문 안 서울을 보존하고 신도시를 개발했다면 어땠을까.
내년 4월 총선을 코앞에 두고 또다시 돌출된 서울 확장론이 정국의 블랙홀로 떠올랐다. 국민의힘 김기현 당 대표가 김포시의 서울시 편입을 추진키로 한 뒤 구리·하남·광명·과천·부천·고양 등 인접도시까지 들썩이고 있다. '서울 메가시티 구상'으로 각색된 모양새이나, 관련 유권자 500만명의 표심을 흔들어서 수도권 전체 121석을 노리는 수소폭탄급 포퓰리즘 선거공약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1991년 지방자치제 복원 이후 서울과 수도권을 포함하는 행정구역 개혁은 금기였다. 수도권 과밀집중을 막는 수도권과밀정비계획법이 시퍼렇게 살아있다. 지방은 말라가는 중이고, 서울은 차고 넘친다. 미국의 워싱턴과 뉴욕, 일본의 도쿄와 교토, 중국의 베이징과 상하이를 합친 개념의 경제행정 복합수도로 군림하고 있는 서울 일극주의는 균형발전과 지방시대의 영원한 적이다.
금융자본주의의 중심 서울은 이미 메가시티이면서 인접도시와 연결된 메갈로폴리스이다. '서울공화국'이라는 용어가 무색할 정도이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서울이라는 괴물은 도시의 고유성과 서울사람의 정체성마저 앗아갔다. 뉴욕의 뉴요커, 런던의 런더너, 파리의 파리지앵, 베를린의 베를리너, 도쿄의 에돗코 같은 도시의 원주민이 사라졌다. '이방인의 도시'가 돼버렸다. 서울 토박이는 존재감이 없다. 서울 영토 넓히기는 방향 착오다. 선거 바람이 끝나면 곪은 상처만 남을 것 같다. 서울 고향 만들기를 통해 도시의 서울다움과 서울사람의 정체성을 찾는 게 정답이다.
joo@fnnews.com 노주석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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