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커크 스카우젠 레노버그룹 수석 부회장 겸 레노버 ISG 사장 | “PC 회사에서 AI 인프라 기업으로 빠르게 변신 중”
세계 1위 PC 회사로 알려진 레노버는 한국과 인연이 깊다. 한국 기상청은 2년 전부터 레노버 슈퍼컴퓨터로 기상 예보를 비롯해 지진·기후변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레노버의 슈퍼컴퓨터는 계산 속도를 8배 높이면서도 전력 소비를 기존 대비 4분의 1로 줄여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2018년부터 세계 슈퍼컴퓨터 시장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레노버는 이제 ‘모든 곳에 있는 인공지능(AI)’을 기치로 내걸고 AI 분야 강자로 발돋움하고 있다. 개인용 컴퓨터(PC)부터 사업장과 공공영역 곳곳에 차세대 AI 서비스를 공급하겠다는 포부다.
레노버 AI 서비스의 범위는 육·해·공을 넘나들고 있다. 멕시코만에서 최대 선단을 운영하는 ‘그루포 핀사’의 어선에는 레노버 에지(edge·말단) 서버와 AI가 적용돼 바다 한 가운데서 어획물을 종류와 크기별로 자동 분류한다. 멸종 위기종을 즉각 골라내는가 하면 어선이 항구로 돌아가기 전 어획물을 기반으로 시장 수급 현황을 분석해 준다. 전 세계 대형 농가들도 레노버 AI 솔루션을 도입했다. 카메라로 가축을 분석해 감염병 등 질병에 걸린 동물을 골라내는 데 쓰이고 있다.
AI·고성능 컴퓨팅(HPC) 등 레노버의 인프라 사업을 이끄는 커크 스카우젠 레노버그룹 수석 부회장 겸 레노버 인프라스트럭처 솔루션그룹(ISG) 사장은 최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사무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많은 이가 레노버를 PC 기업으로 알고 있지만, 현재 레노버 수익의 41%가 PC 이외 부문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AI 인프라 매출은 연간 20억달러(약 2조7200억원)를 돌파하는 등 레노버는 PC 기업에서 인프라 중심 기업으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고 말했다.
AI 사업에 팔을 걷어붙인 레노버는 향후 3년간 10억달러(약 1조3500억원)를 AI 인프라 구축에 투입할 계획이다. 이 중 1억달러(1350억원)는 전 세계 AI 스타트업과 협업해 최첨단 AI 지원 솔루션을 개발하는 데 쓴다. 현재까지 레노버가 시장에 내놓은 AI 관련 제품은 업계 최대 규모인 70종 이상이다. AI 스타트업 45곳과 손잡고 개발한 AI 솔루션은 165개에 달한다. 국내 AI 스타트업 딥브레인과 리벨리온도 레노버와 협업 관계를 맺고 있다.
스카우젠 사장은 레노버 AI 서비스의 차별점으로 안정성과 성능을 꼽았다. 시장조사 업체 ITIC에 따르면 레노버 x86 서버는 최근 9년 연속 안정성 부문 1위에 뽑혔다. 스카우젠 사장은 “이제는 과거처럼 데이터센터 한곳에 서버 1000대가 설치되는 것이 아니라, 1000대의 서버가 각기 다른 1000곳에 설치돼 안정성이 중요해졌다”고 했다. AI가 에지(휴대폰 등 단말기)에 적용되면서 서버 오류를 최소화하는 역량이 더 중요해졌다는 설명이다.
스카우젠 사장은 미국 퍼듀대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인텔 엔지니어로 IT 업계에 첫발을 들였다. 인텔에서 24년간 근무하며 클라이언트 컴퓨팅그룹을 비롯해 인프라스트럭처 솔루션그룹, 아시아·태평양 솔루션그룹 총괄을 맡고 수석 부사장을 지냈다. 그는 과거 인텔을 서버 중심에서 데이터센터 인프라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6년 레노버에 인프라 솔루션그룹 사장으로 합류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인프라 사업 수장으로서 과거 인텔에서의 경험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나.
“리더로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직원들에게 시장에 우리가 취할 기회가 얼마나 많은지를 알려 열의를 갖도록 격려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인텔에서는 반도체 중심 사업에서 나아가 전체 솔루션을 제공하는 데 집중했는데, 레노버에서도 서버 중심에서 전체 인프라를 포괄하는 기업으로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시장의 미래가 이쪽에 있기 때문이다. 향후 3년 안에 전 세계에서 생성될 데이터양은 그간 인류가 쌓아온 데이터 규모를 두 배 이상 넘어설 전망이다. 이 데이터 중 우리가 컴퓨팅(계산)할 수 있는 양은 2%에 불과하다. 앞으로 컴퓨팅되는 데이터의 75%는 데이터센터를 벗어나 데이터가 생성된 에지에서 처리될 것이다. 이에 우리는 AI의 비전도 에지로 향하고 있다고 본다. 이런 전망을 토대로 레노버는 전 세계 3위 인프라 공급 업체로 빠르게 성장 중이고, 회사 중심 사업을 바꾸는 데 인텔에서 변화를 이끌며 배운 교훈을 계속 적용하고 있다.”
직원들의 반발은 없었나.
“반발보다는 기대의 목소리가 훨씬 컸다. 회사는 근거 없는 목표가 아닌, ‘3년간 R&D(연구개발) 투자를 두 배로 늘리겠다’는 청사진을 내놓고 엔지니어 1만2000명을 채용했다. 미국, 독일, 대만, 중국에 ‘AI 이노베이터 랩’을 구축해 레노버 엔지니어들이 엔비디아, AMD 엔지니어들과 협업할 수 있도록 했는데, 직원들에게 동기 부여가 됐다. 변화는 긴 여정이지만, 첫걸음부터 목표에 부합하는 투자를 실제로 이행하면 직원들도 기대하고 따라온다.
레노버는 직원 7만7000여 명이 180개국에서 근무하고 있다. 회사의 성공 경험을 공유하는 것도 중요하다. 직원들은 레노버가 IBM에서 x86 서버 사업을 인수한 2014년부터 회사가 빠른 성장을 추구한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 레노버는 IBM PC 사업 인수 후 PC 분야에서 1위 했던 경험이 있어 직원들이 회사와 각자의 역량을 믿는다. 따라서 PC에서 그랬듯 인프라 부문에서도 ‘넘버원’이 되겠다는 회사의 목표가 터무니없다고 여기지 않는 것이다.”
‘AI 랩’과 AI 스타트업 혁신 프로그램 등 생태계 조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AI 인프라 시장 평균 성장률이 39%인 와중에 레노버의 AI 인프라 성장률은 139%에 달한다. AI 솔루션은 제조, 물류, 스마트시티, 의료, 금융 등 다양한 산업에 걸쳐 적용돼야 하고, 이 시장에 혁신을 제공하려면 엔비디아, 퀄컴, 인텔, AMD 같은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를 비롯해 AI 스타트업과 함께 협력해야 한다. 엔비디아와 협업해 생성 AI(Generative AI)와 대규모 언어모델(LLM)을 훈련하고 추론할 수 있는 AI 서버를 내놨고, VM웨어 소프트웨어에서 LLM을 관리할 수 있게 하는 생성 AI 솔루션도 협업해 출시했다. 이 밖에 훨씬 다양한 솔루션을 갖추고자 전 세계 1만6000개에 달하는 AI 관련 스타트업 중 일부를 선별해 협업을 늘려가고 있다.”
PC 수요 침체로 최근 4개 분기 연속 매출이 감소했다. 향후 실적을 어떻게 예상하나.
“AI 서버 수요가 강력하게 증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레노버는 어떤 국가에서든 시장보다 두 배 이상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직전 분기 실적에서 인프라 사업 부문은 37%, 서비스 부문은 22% 성장했다. 지금은 AI 관련 수요가 LLM 훈련에 집중돼 있지만, 재훈련과 추론 분야로 수요가 넘어갈 것이며 이 분야가 궁극적으로 훨씬 큰 시장이 될 것이다. AI를 제외한 서버 시장의 업황이 좋지 않아도 AI 관련 분야에서 레노버는 계속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으리라 본다.
PC 시장은 하반기부터 회복되기 시작해서 한 자릿수 중반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측된다. 회사에서 보고 있는 두 가지 주요 지표가 있는데, ‘채널 재고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와 ‘경쟁사와 비교할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레노버 서버에서 윈도를 사용하는지’가 그 기준이다. 이 지표를 보면 채널(유통 업체)의 PC 재고 조정은 거의 끝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글로벌 PC 부문 1위를 유지하고 있는 레노버의 시장 내 입지는 긍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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