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완의 사이언스카페 | 달에 포장도로를 건설할 기술] “레이저로 굳힌 월면토, 포장도로·로켓 착륙장 재료 된다”
레이저로 달의 토양을 녹여 포장도로와 로켓 착륙장을 만들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인류가 반세기 만에 유인(有人) 달 탐사를 재개하면서 우주복과 장비를 손상하는 날카로운 달 먼지가 문제가 됐다. 포장도로를 만들면 먼지 피해 없이 이동할 수 있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독일 연방재료시험연구원의 얀스 군스터(Jens Günster) 교수와 알렌대 기계공학재료과학과의 미란다 파테리(Miranda Fateri) 교수 연구진은 10월 13일(현지시각)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이산화탄소 레이저로 유럽우주국(ESA)이 개발한 인공 월면토(月面土)를 녹여 단단한 유리 상태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달 복제토 녹여 포장용 타일 만들어
미국은 1972년 아폴로 17호 이래 중단됐던 유인 달 탐사를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으로 재개했다. 과거와 달리 우주인이 달에 잠시 머물다 오는 것이 아니라 우주기지를 세워 장기 체류시킬 계획이다. 달을 화성 같은 심우주 탐사를 위한 전진기지로 삼겠다는 포석이다.
독일 연구진은 달 토양을 우주기지를 세울 재료로 쓰기 위해 사장석과 감람석, 휘석 등으로 인공 월면토를 만들었다. 바로 달 복제토다. 달 기지를 세우려면 현지 재료를 활용해야 한다. 지구에서 건설자재를 실어 나르면 비용과 시간을 감당하기 어렵다. 달 토양을 건설자재로 쓰기 위해 달 복제토를 만들어 연구하는 것이다.
연구진은 인공 월면토에 12㎾(킬로와트) 출력의 레이저를 쏘았다. 온도가 섭씨 1200도까지 올라가자, 월면토가 녹으면서 콘크리트와 비슷한 압축 강도를 가진 검은색 유리 같은 구조로 변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이번 실험에는 다양한 강도와 폭의 레이저 빔이 동원됐다. 연구진은 실험에서 레이저 빔 경로를 교차하거나 겹치면 월면토 표면이 굳다가 균열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최종적으로 지름 45㎜ 레이저 빔을 사용하여 약 250㎜ 크기의 속이 빈 삼각형 모양을 만들었다. 연구진은 삼각형 타일을 서로 맞물리면 달에 도로 역할을 할 수 있는 단단한 표면을 만들 수 있다고 밝혔다.
파테리 교수는 “달 토양으로 도로 포장재를 만들면 달에서 운송이 더 쉬워질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앞으로 같은 방식을 달의 로켓 착륙장이나 발사대에도 사용할 수 있는지 알아볼 계획이다.
연구진은 이번에 레이저를 사용했지만, 달에서는 햇빛을 모아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밝혔다. 돋보기로 햇빛을 모아 종이를 태우는 것과 같은 원리다. 독일 연구진은 별도 전원이 필요한 레이저 대신 지름 1.5m 렌즈로 햇빛을 모아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추산했다.
국내선 마이크로파로 월면토 벽돌 만들어
국내에서도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신휴성 박사 연구진이 독자적으로 인공 월면토를 개발했다. 연구진은 레이저 대신 전자레인지에 쓰는 마이크로파로 온도를 올려 인공 월면토 벽돌을 만들었다. 도자기 굽듯 온도를 올려 단단하게 만드는 소결(燒結)을 한 것이다. 연구진은 마이크로파를 쏘면 달 토양의 입자를 덮고 있는 철 이온의 온도가 높아져 결국 토양 입자까지 녹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한국 건설기술연구원은 인공 월면토로 채우고 달 탐사 장비를 시험하는 대형 지반열진공체임버도 갖추고 있다. 신휴성 박사는 “올해부터 월면토에 직접 마이크로파를 쏘아 표면을 소결하는 연구를 시작했다”며 “한국원자력연구원과 지면을 따라 이동하며 소결할 수 있는 장비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원은 앞으로 체임버 안에서 3D 프린터로 달 복제토를 녹여 원하는 구조물을 찍어내는 실험도 할 계획이다.
독일 연구진은 이번에 레이저로 인공 월면토를 굳혔다. 문제는 레이저는 전원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독일 연구진은 레이저 대신 렌즈로 햇빛을 모으면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신 박사는 “우리도 햇빛을 집적해 인공 월면토를 직접 소결시키는 실험을 해봤지만, 힘들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돋보기를 이동하면서 온도를 균일하게 올리고 월면토를 녹여 소결시키기 힘들다”고 밝혔다. 전자레인지와 돋보기 가운데 누가 먼저 달에 고속도로를 깔아줄지 미래 달 기지가 기대된다.
우주복과 장비 손상시키는 달 먼지
달에 포장도로를 만드는 것은 과거 아폴로 탐사를 방해했던 달 먼지(moon dust) 문제를 해결하는 목적도 갖고 있다. 지금 이대로 달에 가면 지름이 0.02㎜ 정도인 미세먼지가 유리섬유처럼 단단하고 표면이 날카로운 상태로 정전기를 띠고 우주복과 장비에 들러붙는다. 지구의 흙은 대기와 마찰로 둥글게 되지만, 달은 대기가 없어 사방이 뾰족한 형태다. 게다가 태양에서 날아오는 고에너지 입자 때문에 달 토양은 강력한 정전기를 띤다.
달 먼지는 탐사 장비나 우주복을 손상할 뿐 아니라 우주인의 건강도 해칠 수 있다. 달 먼지가 목에 들어가면 지구에서 석탄을 캐는 광부들이 걸리는 진폐증과 유사한 증상이 나타난다. 아폴로 17호에 탑승했던 해리슨 슈미트를 포함해 우주인 12명이 달에서 목이 따갑고 코가 막히는 증상을 겪었다. 이런 달 먼지를 피해 우주인과 물자를 수송하려면 현지 재료로 만든 포장도로가 필요하다. 과학자들이 인공 월면토를 연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달 먼지 제거 기술도 발전하고 있다. 과거 아폴로 우주인들이 솔로 달 먼지를 제거했다면, 아르테미스 우주인에게는 스프레이가 있다. 미국 워싱턴 주립대 연구진은 최근 국제 학술지인 ‘악타 아스트로노티카’에 “달처럼 진공 환경에서 진행한 실험에서 새로 개발한 액체질소 스프레이가 우주복에 달라붙은 월면토 모사체를 98% 제거했다”고 밝혔다.
워싱턴 주립대 연구진은 달궈진 프라이팬에 물을 떨어뜨리면 동그란 물방울들이 통통 튀는 현상을 모방했다. 질소의 끓는점은 섭씨 영하 196도다. 달은 그보다 기온이 높다. 우주복이나 장비에 액체질소를 뿌리면 프라이팬에서 물방울이 튀듯 기화된 질소가 달 먼지를 위로 띄워 떨어뜨린다. 연구진은 액체질소 스프레이는 달처럼 진공인 환경에서 더 잘 작동했다고 밝혔다. 미국 콜로라도대 볼더 캠퍼스 연구진은 2020년 달 먼지를 제거하는 전자빔 장치를 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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