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함수의 위기관리 경영] ‘즉흥적 사고’로 위기 대응 역량 향상해야
얼마 전 한 기업의 임원이 위기관리 체계 구축 프로젝트를 마치고 주요 결과물인 매뉴얼을 사장에게 최종 보고를 했다고 한다. 보고를 마친 자리에서 사장이 “그렇다면, 이제 위기가 발생하면 대응에는 문제가 없겠네요”라고 물었다. 그 질문을 받고 자신 있게 “그렇습니다”라고 답을 하기가 망설여져서 위기관리 체계를 기반으로 잘 대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담당 임원은 위기관리 체계를 만드는 것과 실제 대응 역량을 확보하는 것은 다른 영역인지 필자에게 물었다. 또 위기 대응을 위해 어떤 준비가 실제로 필요한지 필자에게 물었다.
전사적인 위기관리 매뉴얼, 재난·재해 매뉴얼, 회사마다 발생 가능성이 큰 위험에 대한 위기관리 매뉴얼 등 기업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각종 매뉴얼이 만들어져 있다. 발생하는 사건과 사고는 한 번도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유형도 아니다. 위기는 언제나 발생할 수 있는 것에서 먼저 생긴다. 그래서 위기관리 사전 준비 단계에서 취약성 진단을 할 때,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위험 요인과 그 유형을 파악하는 것인데, 가장 중요하게 보는 기준은 ‘발생 가능성’과 ‘피해 영향도’다.
지금 기업에 구성돼 온 위기관리 체계 구축 가설은 조직의 위기를 진단하고 예방해서 관리할 최상의 시스템을 갖추면 된다는 것이다. 이 가설은 모호함과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조직 위기 피해를 조절할 수 있다는 전제를 포함한다. 이 배경에는 해당 사건·사고에 대해서 현장을 통제하면 위기로 확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시각이 깔려 있다. 사건·사고와 관련된 이해 당사자 외에 언론과 일반인이 인지하지 않으면 위기가 아니라는 판단 기준이 깔려 있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위기관리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가장 먼저 진행하는 업무가 ‘취약성’ 진단이다.
취약한 잠재 위기 파악이 위기 대응 기본
취약성을 진단하는 핵심 대상은 기업에 영향을 미치는 위험 유형과 요인이다. 모든 조직에는 조직의 산업, 규모, 위치, 운영, 인력 등과 관련해 특정적으로 취약한 잠재 위기가 있다고 본다. 예를 들면, 호텔 운영 관리자에게는 투숙객의 안전을 해하는 위험 요인이 제일 중요한 잠재 위기다. 반면 음식점의 식품 관리자에게는 집단 식중독이 중요한 잠재 위기다. 기업 전사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위기 유형을 식별하고 위기 발생 시 대응 단계와 절차를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위기관리 기준을 수립하는 것에 해당한다.
조직의 잠재적 위기 목록에는 보이콧, 지진, 폭발, 화학 물질 유출, 소문, 사망, 화재, 소송, 성희롱, 제품 피해, 파업 등이 포함된다. 그런데 이러한 잠재 위기는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내용이다. 예를 들어 소문의 경우, 그것이 가지는 의미나 내용을 어떻게 규정하는지에 따라 위기가 될 수 있고 그냥 소문으로 끝날 수 있다. 그래서 기업마다 위험 요인을 잠재 위기로 규정할 때 해당 요인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을 함께 기술하게 된다. 이를 통해 위기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파악한다. 예를 들면, 재난이라고 규정하지 않고 ‘재난으로 인한 운영 중단’으로 구체적으로 규정해 재난으로 회사의 비즈니스 과정 중 어디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핀다. ‘직장 폭력’이라고 한다면, 폭력 범위를 어디까지 할 것인가도 중요하다. 폭언부터 욕설, 부당하고 강압적 지시와 조직 문화 등도 포함시킬 수 있다.
위기 키우는 미숙한 현장 대응
위기관리 체계를 잘 갖췄다는 믿음에도 불구하고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미숙한 현장 대응부터 커뮤니케이션 실수와 오류가 발생해 위기를 더욱 확산하는 상황을 자주 목격한다. 위기 대비와 대응 간 간극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기계적 공정으로 생산 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거나 모든 것을 자동화하기 어렵고 사람의 노동이 꼭 투입돼야 하는 공정에서는 현장의 안전사고 위험도가 매우 높을 수밖에 없다. 그 안전사고 발생 가능성과 피해 정도가 최고 수준임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장에서 안전사고에 대한 위험도를 심할 정도로 강조하고 작업자가 지켜야 할 원칙과 기준을 명확하게 명시하고, 안전 감시 체계를 함께 구축해 놓고 위기 대응 훈련을 실행해야 한다. 위기가 발생하면, 어떻게 보고하고 누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문서를 읽지 않아도 행동으로 신속히 옮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대응은 우왕좌왕만 하고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다. 매뉴얼의 주요 결과물, 위기관리팀 구성과 보고 체계와 위기관리팀 구성원의 세부 책임과 역할 규정, 이슈가 발생했을 때 부서별로 해야 할 일 등이 준비돼 있다고 해서 현실적 대응과 커뮤니케이션이 우리가 계획하고 목표한 대로 작동하지 않는 게 실제 모습이기도 하다.
위기관리 매뉴얼에 규정돼 있는 계획은 중앙 통제적 역할을 한다. 또 위기 상황을 관리할 수 있도록 자원을 집중시킬 수 있게 설계돼 있다. 위기를 단계별로 나누고 단계별로 해야 할 역할을 규정하는 구조로 매뉴얼이 만들어져 있다. 그런데 이러한 매뉴얼은 사건·사고가 발생한 후 사람들이 해당 문제를 인지하는 데 시간적 간격이 분명히 존재할 때, 작동될 수 있었다. 최근 디지털 기술 발달과 미디어 환경 변화로 사건·사고가 발생하는 순간 이해 관계자가 아닌 제삼자들도 즉각적으로 내용을 인지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현장 직원의 진술이 실시간으로 인터넷으로 전달될 수 있다.
즉흥적 대응 역량 필요
기존 위기관리 체계가 다양한 위기 상황에 직면했을 때, 계획대로 작동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 그렇다고 ‘매뉴얼’의 무용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시대에 필요한 우리의 위기관리 역량을 어떻게 향상시킬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위기관리 사전 준비와 대응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선 ‘즉흥적 대응 역량(improvisation capability)’을 키워야 한다. 이 개념은 재즈 연주에서 언급하는 즉흥 연주를 실무에 적용한 것이다. 이는 ‘Developing improvisation skills’라는 논문에서 발표된 내용이다. 틀에 박힌 관행과 정형화된 프로세스에서 벗어나 창의적이고 신속하게 문제를 파악하고 대응하는 조직 구성원의 역량을 말한다. 우리가 파악하고 있는 잠재 위기 내용과 지금 처한 상황을 종합해서 현재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따라 대응 방식, 대응 패턴, 대응 의사 결정 내용이 다르게 전개될 필요가 있다. 매뉴얼 내용에 대한 상황적 판단, 즉 즉흥적 대응이 필요한 것이다. 위기를 직접 대면했을 때 현업 담당자는 본인의 결정에 관한 실수를 두려워하며 전략적인 관점에서 즉흥적 사고를 망설이게 된다. 어떤 문제로 분노한 이해 당사자(피해자)의 감정에 먼저 대응하지 않고, 자신이 속한 조직의 원칙만 고려해 원성을 사는 경우도 발생한다.
메타 인지적 능력 향상해야
위기 대응 과정에서 필요한 ‘즉흥적 사고’는 어떻게 향상시켜야 할까. 우선 위기관리 담당자뿐 아니라 조직 구성원이 메타 인지적 능력(무언가를 배우거나 실행할 때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는 능력)을 이해하고 향상해야 한다. 자신이 가진 지식, 취득한 지식의 한계를 인식하는 능력을 키우고 이해 관계자의 입장과 관점을 파악할 수 있는 시각을 확보한다. 주어진 상황에 따라 최적의 전략을 계획하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여러 조직 부서 간 구성원이 팀을 구성해 다양한 위기 사례를 검토하는 훈련을 반복적으로 실행해야 한다. 이 과정에는 조직 외부에 있는 전문가를 포함해 직간접적으로 조직과 관계가 있는 이해 관계자를 참여시켜 특정 사안을 바라보는 그들의 관점을 이해하고 학습하는 방식이 중요하다. 상황에 대한 맥락을 파악하고 맥락에 따라 대응 방식과 패턴, 의사 결정 기준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를 경험할 수 있는 시나리오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기업 내 교육과정에 포함시키는 것도 위기 대응 능력을 키우는 좋은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위기관리 대비와 대응은 한 몸이지만, 머리와 팔, 다리가 따로 놀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위기 대응 시 상황적 대응으로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그것이 개인의 실수가 아니라는 조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필요하다. 그래야 위기 상황에서 복합적 요인을 분석하고 위기의 맥락을 고려해 다양한 관점의 의견을 보고하고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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