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칼럼] 끓는 물속의 개구리, 미국 경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시작한 미·중 무역전쟁의 바통을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이어받은 모양새다. 반도체 칩과 과학법(칩스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각종 산업 정책을 도입하고 중국을 배제하는 무역 질서를 구축하고 있다. 문제는 바이든 정부의 산업 정책이 되레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자극하는 등 시장경제를 왜곡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대규모 투자 프로젝트들이 추진되면서 시장에 풀린 막대한 자금과 고임금 일자리가 물가를 높일 수 있다는 논리다. 실제로 골드만삭스 등은 IRA로 시중에 풀리는 돈이 1조달러(약 1352조원)를 넘어설 수 있다고 내다봤다. 올해 4월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 역시 제조업 육성을 위해 정부가 지급한 보조금 때문에 당분간 인플레이션율이 4% 밑으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보호무역주의에 반대 목소리를 내온 필자는 이처럼 정부 개입이 커질수록 끓는 물속의 개구리가 서서히 죽어가듯 미국 경제도 망가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개구리 한 마리를 끓는 물에 밀어 넣으면 바로 놀라 튀어 오른다. 하지만 찬물에 넣고 서서히 온도를 높이면 잘 느끼지 못해 결국 죽임을 당한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인플레이션이 가속화하면 대중은 지도자가 더 철저한 거시경제적 정책으로 물가를 억제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산업 정책 같은) 당국의 임시 관세, 가격 통제, 보조금, 세금 및 규제 등은 대중이 크게 체감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지속적으로 비효율을 초래하고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
인플레이션과 임시 개입(산업 정책) 모두 경제를 왜곡하고 경제성장률을 낮춘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은 보통 빠른 대응으로 이어진다. 인플레이션은 경제 전반에 걸친 현상이다. 따라서 실질 수익을 회복하거나 늘리려는 집단에 힘입어 가속화한다. 그러나 특정 시점에 이르면 반대 세력이 생기기 시작한다. 정책 입안자들에게 인플레이션을 낮추라는 압력도 거세진다. 결국 인플레이션이 진정된 뒤 성장이 재개될 수 있다.
반면, 특정 시점이나 경제의 한 부문에서 표적 관세나 산업별 조치가 미치는 영향은 상대적으로 적다. 이런 조치는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인다. 경제 유연성을 떨어뜨리며 성장을 약화한다. 하지만 인플레이션 급등에 비해 눈에 덜 띄는 경향이 있다. 대중이 거부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다. 게다가 관세를 낮추거나 보조금을 없애는 것은 일반적으로 해당 업계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힌다. 따라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것은 정치적 과제라는 명분이 있는 반면, 왜곡된 임시 조치(산업 정책)를 되돌리기는 정치적으로 어렵다.
오늘날 미국은 이런 상황을 잘 보여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근거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물가 상승 억제 기조를 지지했다. 그러나 동시에 IRA를 통해 정부 지출을 급격히 늘렸다.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산업별 규제도 광범위하게 도입하거나 유지했다. 인플레이션은 미국에서 정점에 달했을지 모르지만, 산업 정책은 여전히 많은 추진력을 등에 업고 있다. 현재 바이든 정권까지 이어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철강·알루미늄 수입에 대한 관세는 미국 철강 가격을 세계 최고로 올려놓았다. 이는 자동차 제조 업체같이 철강에 의존하는 모든 산업의 생산 비용이 상승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미국의 전기자동차 생산 업체들은 보조금과 세금 감면 혜택을 받고 있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는 환경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태양광 패널 수입에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반도체와 배터리에 대한 투자를 위해 대규모 보조금과 기타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도 했다. 또한 ① 메디케어 환자를 위한 인슐린 같은 일부 처방 약의 가격을 제한했다. 여기에 매년 추가 약품에 대해 가격 상한선을 부과할 예정이다. 그뿐만 아니라 정부가 일부 약품 가격을 협상해야 한다는 요건을 도입함으로써 의약품 부족과 일반 의약품 개발 저해 가능성을 초래했다. 아울러 바이든 행정부는 정부 지출의 미국 내 기준 상한선을 높였으며, 정부 조달이 미국산 투입물의 사용을 극대화해 더 많은 미국 내 생산을 지원하도록 요구했다.
이는 수십 년 전, 정부 지출을 통한 회원국 상품 차별을 금지한 ②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의 의미를 축소하는 행위다. 이 협정은 모든 서명국의 비용 하락으로 이어져 납세자 비용 절감을 가능하게 했다. 이에 미국은 자국 비용을 더 낮춰 상품을 수출하고 구매한 품목에 대해 다른 정부에 더 적은 비용을 지불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바이든 행정부의 개입은 미국 정부의 지출 비용(IRA에 해당하는 원자재 포함)을 높이고 타국의 보복 가능성을 키워 미국산 상품의 글로벌 구매 감소를 초래하고 있다.
대부분 선진국에서는 농산물 가격을 높게 유지하는 방식으로 농업을 규제한다. 이에 미국에선 가격 지원과 재배 제한으로 인해 식품 가격이 상승하고 농업 부문의 효율성이 떨어졌다. 또한 미국은 설탕 생산 업체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음에도 설탕 수입량을 규제하고 있다. 자국민이 설탕에 전 세계 평균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비용을 지불하는 배경이다. 이 때문에 미국의 케이크와 사탕 생산 업체들은 글로벌 경쟁에서 불리하다.
경제에 대한 임시 개입 사례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마지막으로 유아용 조제분유의 예를 언급하고자 한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기간 미국 주요 공장 한 곳이 문을 닫으면서 분유 공급량이 크게 부족해졌다. 캐나다 같은 외국 생산 업체도 미국 기준을 충족하는 제품을 생산하지만, 수입 수량 제한과 미국으로 들어오는 제품에 대한 높은 관세 때문에 (대량 수입이 불가능해) 미국 부모들이 분유를 구하기 어려워졌다.
오랫동안 ③ WIC(여성·유아·어린이 영양 제공 프로그램)가 주(州)마다 승인된 분유 제조 업체를 한 곳으로 제한해 온 사실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WIC가 미국 유아용 조제분유 구매의 약 절반을 차지하기 때문에 이러한 요건은 몇몇 브랜드가 시장을 지배하는 기반이 됐다.
특정 경제활동이나 경제 부문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은 높은 비용을 수반한다. 경제활동을 왜곡하고 물가를 상승시키며 성장을 저해한다. 보조금 같은 개입은 편애를 암시하고 심지어 노골적인 부패를 야기해 위험할 수 있다. 또한 기술이 빠르게 변함에 따라 새로운 시장 진입자가 필요하지만, 규제로 인해 비용이 많이 드는 게 문제다. 또 정부 규제 당국이 효율적인 정책을 펴려면 규제 대상 산업을 잘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와 민간 부문 양쪽에서 일할 수 있는 업계 전문가는 정부보다 보상이 많은 민간 부문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지금까지 민간 부문에 공정한 경쟁의 장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 덕분에 전 세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교육, 인프라, 연구에 대한 투자 같은 정책도 이러한 약속에 부합했다. 그러나 정부 개입이 확산하고 심화하면서 미국의 글로벌 경제 우위에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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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①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부터 약가 통제에 강력한 의지를 밝혀왔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인슐린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지적을 자신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밝히기도 했다. 미국 정부는 메디케어 가입자에 한해 인슐린 가격을 월 35달러로 제한하고 있다. 이 같은 정부 압박에 일라이릴리를 비롯한 글로벌 제약사들은 결국 인슐린 가격을 대폭 인하하겠다고 밝혔다.
② 세계 자유무역 보호를 위해 1995년 1월 1일에 설립된 국제기구. 설립 당시 70개 회원국으로 출발, 현재 164개국이 가입해 있다. 이들이 전 세계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6.4%에 달한다. WTO는 국가 간 경제 분쟁에 대한 판결권을 갖고, 판결의 강제 집행권을 통해 국가 간 마찰과 분쟁을 조정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③ 미국의 영유아, 임신부, 산후 여성이 적합한 음식을 섭취하도록 돕기 위해 만들어진 영양 제공 프로그램. 일례로 분유 제조사 애벗 등과 할인 조건으로 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WIC 지원을 받는 가정에 무료로 분유 바우처를 제공한다. WIC는 특정 분유 제조사의 독과점 체제를 공고히 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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