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크 차이나’와 한국 경제
영국 경제 전문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11월 18일(현지시각) ‘2023년 세계 대전망(The World Ahead 2023)’이라는 특집기사에서 중국의 성장이 정점(peak)에 달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그 이후 ‘피크 차이나(Peak China)’ 논쟁이 전 세계 언론을 달궜다. 최근 중국 경제성장률이 둔화하고 있는 것이 코로나19 같은 한시적 문제만이 아니라 부동산 시장 위기, 인구 감소, 미국과의 경제 및 기술 분쟁 등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는 것이 주된 논거다. 올 상반기 중국 경제성장이 다소 부진하면서 피크 차이나 논쟁은 더 확산했다.
중국 경제성장의 한계를 먼저 지적하고 나선 것은 미국 존스홉킨스대 할 브랜즈(Hal Brands)와 터프츠대 마이클 베클리(Michael Beckley)다. 이들은 저서 ‘중국은 어떻게 실패하는가(Danger Zone: The Coming conflict with China)’에서 중국은 지금 정점을 지나는 중이며 경제적, 정치적 하락 추세는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중국 경제의 주요 하락 요인으로는 인구 감소, 서방의 견제, 자원 고갈, 1인 독재, 부동산 리스크 등을 꼽았다.
피크 차이나 논의가 관심을 보이는 방향은 두 가지다. 첫째, 중국이 미국의 글로벌 패권을 대체할 수 있을지 여부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이미 2003년 발간한 보고서에서 2040년쯤 중국이 미국 경제를 추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홍콩상하이은행(HSBC)도 2011년 중국 경제 규모가 2050년쯤 미국을 앞설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후에도 시점 차이만 있을 뿐 비슷한 전망이 잇따랐다. 그러나 최근 피크 차이나 논쟁은 중국이 미국을 추월하지 못하거나 단기간 앞섰다가 다시 역전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해미시 맥레이는 저서 ‘2050 패권의 미래’에서 중국이 미국을 앞서는 것도 경제 규모만 잠시 앞설 뿐 인구 감소, 중진국 함정, 경직적인 정치체제 등으로 다시 하락하며 군사적 우위, 국제적 영향력, 기축통화 지위 등에서는 미국을 추월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피크 차이나 논의가 관심을 보이는 또 다른 주제는 중국 경제성장 둔화가 미치는 정치·경제적 영향이다. 정치적으로는 패권 경쟁에서 한계에 부딪힌 중국이 무력으로 분쟁을 일으킬 가능성을 제기한다. 특히 대만에 대한 중국의 무력 침공 가능성과 그로 인한 지정학적 불안 문제를 경고한다. 경제적으로는 대중 무역의존도가 세계적으로 높아진 상황에서 중국의 경제성장률 감소가 글로벌 성장 잠재력을 하락시키는 문제를 주목한다. 중국은 2022년 기준 세계 수출 점유율 14%로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120여 개국에 최대 무역 상대국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의 경제성장이 구조적으로 하락하면 수많은 국가의 성장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중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올해 5%, 내년 4.2%로 추정하고 2027년부터는 4% 아래로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중국과 밀접한 경제 관계를 맺은 아시아 국가의 생산량이 향후 5년 동안 최대 10%까지 감소할 수 있다고 했다.
피크 차이나에 대한 한국의 우선적 관심은 경제적 영향이다. 최대 수출 상대국이자 최대 무역 흑자를 안겨주던 중국 경제의 둔화는 우리 경제의 가장 큰 하방 위험이다. 지난해 8월 대중 무역은 적자로 반전된 이후 올 9월까지 14개월째 적자가 지속되고 있다. 올해 들어 9월까지 누적 적자는 156억달러(약 21조원)에 이른다. 9월까지 발생한 무역 적자 201억달러(약 27조원)의 78%가 대중 무역에서 발생했다. 한국의 대중 수출의존도 역시 19%대로 하락해 20년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IMF 전망처럼 중국 경제성장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면 이전처럼 중국을 통한 경제 활로를 다시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중국 경제는 여전히 중요하다. 10% 이상 성장하던 20년 전 중국 경제보다 지금의 5% 성장이 규모 면에서는 오히려 크다. 국내총생산(GDP)의 절대 규모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지정학적인 산법이 복잡해지고 성장 잠재력이 축소되고는 있지만 세계 2위의 거대 시장이 우리 옆에 있다는 것은 여전히 우리에게 기회 요인이다. 피크 차이나 전망에도 잊지 말아야 할 팩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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