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도의 음악기행 <76> 알반 베르크의 7개 초기 가곡] 아름다운 인간의 ‘性’…예술에서의 에로티시즘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이 한창 기승을 부리던 2021년 초겨울, 필자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시내의 텅 빈 광장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귀로 심장박동이 들릴 정도로 피는 요동치듯이 몸을 휘돌고 있었고 머리는 새하얀 백지 같았다. 너무도 당혹스러운 감정에 휩싸여 있었다. 이 감정은 당시 팬데믹이 주던 공포와는 달랐다.
사실 필자가 서 있던 곳에 웬만한 6~7층짜리 건물만 한 크기의 광고가 붙어 있었다. 그 큰 공간에는 수많은 인종, 남녀가 거의 알몸으로 엉겨 붙어 키스를 나누고 끌어안는 장면이 빼곡했다. 어떤 패션 브랜드의 광고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광고에서 도대체 무엇이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심장이 요동치듯 당혹스러운 감정을 불러일으켰다는 말인가. 단순히 선정적인 광고 내용에 눈을 빼앗긴 것일까, 아니면 그 광고가 내 마음 한 곳에 자리한 육신의 욕망을 일깨운 것일까.
필자는 이 광고 사진을 바라보다 무의식적으로 ‘누가 나를 쳐다보는 거는 아니겠지’라고 생각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리곤 아무도 없는 빈 광장을 황급히 빠져나왔다. 숙소로 걸어가는 동안 마음에 느껴지는 감정과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을 헤아려 보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그 당시 마음과 머리는 두 가지 상반된 감정과 생각으로 양분돼 있었다. 머리에서 말하는 건 다음과 같았다. ‘세상에 저런 선정적인 광고를 도시 한복판에 걸어놓다니, 제정신인가. 어떻게 저렇게 적나라하게 사람들이 욕구를 표출할 수 있지. 너는 어떻게 그런 광고를 빤히 쳐다볼 수 있지. 성적으로, 도덕적으로 올바른 사고를 갖고 있기는 한 거니.’
이와는 반대로 마음에서는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갖게 된 자연스러운 욕구와 감정 그리고 이것을 감추지 않는 솔직함, 더 없이 인간다운 장면이 아닌가.
시간이 흘러 당시의 사건을 떠올려 봤다. 어쩌면 한 인간이 사회를 규범 짓는 문화, 제도, 교육, 전통 등의 가치 아래 성장하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며 자신의 본능을 읽어내고, 정의하고, 표출하는 많은 것에 영향을 받는 건 아닐지. 그렇기에 필자도 그간 사회에서 성과 관련된 교육을 받았음에도 우연히 맞닥뜨린 한 광고로 인간으로서 갖는 당연한 감정과 본능을 알아차리고, 이성과 본능 사이의 엄청난 간극에 혼돈과 방황을 했던 것 아닌가.
어쩌면 이 패션 브랜드도 자사 광고를 통해 당시 팬데믹으로 인해 통금령이 내려져 모든 이가 집에 머물러야 했던 네덜란드 사회의 한 단면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현재 21세기의 자유로운 사회에서 나름의 개방된 사고를 갖고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 개인이 공공의 공간에서 성적인 표현을 마주하며 느꼈던 혼란과 당혹함이 이렇게 컸는데 하물며 수 세기 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의식은 어떠했을까. 또 필자가 피아니스트인 만큼 인간의 의식이 반영된 예술, 특히 음악 장르에는 이것들이 어떻게 반영됐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과거 유럽에서는 성을 기독교의 관점으로 볼 때 ‘죄로 물든 것’ 그러니까 ‘인간의 원죄’로 여겼다. 따라서 인간의 육체가 예술 작품으로 묘사될 때도 (특히 나체로 묘사될수록) 순결함, 무결함, 고상함, 때로는 다산, 풍요를 상징해야 했다.
인간의 관능적인 시선을 표현하고자 할 때도 18세기 중엽 프랑스의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화폭에서 종종 묘사되는 여인이 살짝 치마를 들어 발목을 보여주는 것 그리고 꽃이나 다른 사물을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했던 것이 전부였다. 이마저도 천박하다는 비평을 감수해야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성은 번식을 위한 기능 내지 종교에서 규정하는 인간의 원죄라는 시각에서 점차 벗어났다.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갖고 있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 가치가 귀한 것으로서 예술에서 다뤄지기 시작했다.
1795~1800년 프란시스코 고야가 그린 ‘옷을 벗은 마야’는 종교재판을 받을 정도로 저속적인 포르노그라피로 간주되긴 했지만, 60여 년이 지난 후부터 성은 적어도 예술 세계에서는 더 이상 터부적 요소가 아니게 됐다. 1866년 구스타브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은 여성의 성기를 묘사했고, 20세기 초반 구스타프 클림트의 ‘유디트’는 전라의 모습으로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한 손으로 들고 묘한 쾌락의 표정과 함께 황홀경에 빠진 여성을 묘사했다.
이는 프로이트가 ‘쾌락 원칙을 넘어서’라는 책을 통해 사회에서 억압받던 쾌락 원칙이 인간의 의식 표면에 자리한다고 서술하기 시작한 시기와 궤를 같이한다. 음악도 이와 비슷한 경향을 보인 작품들이 다수 있다. 그중 하나로 필자가 최근 연주한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알반 베르크가 1905~07년에 작곡한 ‘7개의 초기 가곡’에서 엿볼 수 있었다.
이 중 세 번째 가곡인 ‘나이팅게일’에서는 ‘한 소녀가 한밤중 나이팅게일의 사랑스러운 울음소리가 진동하고 장미꽃들이 피어나는 순간에 서 있다. 이어 찾아오는 이글거리는 태양을 견딘다’는 표현이 등장한다. 소녀가 한 여성으로 성숙해지는 과정을 섬세하고 부드러운 선율로, 에로티시즘을 통해 묘사한다.
또한 여섯 번째 곡 ‘사랑의 송가’에서는 ‘여름 바람이 사랑하는 연인의 침대로 불어오고, 그들의 숨결을 달밤으로 이끌며, 정원의 장미 향이 그들의 침대를 가득 메운다’는 표현이 나온다. 이와 함께 ‘갈망’이라는 외마디 외침으로 순식간에 음악이 사그라들며 사랑의 절정, 그 이후에 찾아오는 허무함 등을 노래하기도 했다.
이 작품을 공부하며 필자도 인간이 갖고 있는 사랑과 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었다. 인간의 성은 종종 사회에서 억압받으며 터부시되기 쉬울 정도로 연약한 존재인 것 같으면서도 정제된 이성과 사랑에 기초한 성은 우리의 삶을 더욱 건강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더없이 인간적인 것이라 생각해 본다.
베르크도 음악에서 에로티시즘을 육체적 쾌락을 단순히 묘사하는 것이 아닌 치밀하게 설계된 화성과 형식이라는 이성적 구조를 기초로 표현했기에 더없이 아름답게 필자의 마음을 울린 것이라 말할 수 있겠다. 또 이는 찰나에 사라지는 불꽃과 같은 쾌락이 아닌 사람들로 미어터지는 만원 버스 안에서, 소음과 스트레스로 가득한 일상에서 필자의 마음을 더 없이 인간적인 아름다움으로 고양시킨, 마음에 삶의 숨결을 불어 넣어 준 고마운 예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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