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 충돌로 18명이 조난당한다면? 17개 기관 ‘레디 코리아 훈련’
6일 오후 2시 45분경 울산시 울산신항 용연부두. 고속정에 탄 울산해경구조대 소속 해경들이 어선 영덕호를 다급히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 어선은 짙은 안개로 인해 2400t 급유선 울산호와 부딪혀 뒤집힌 상태로, 배 안에 생존자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내 선체에서 ‘생존 신호’를 알려왔다. 아직 ‘에어포켓’이 남아 있어 생존자 10명이 있다는 것이다. 해경은 조난자를 구조하기 위해 선체에 직접 진입하려 했지만, 배 위의 어망 때문에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결국 해경들은 장비를 활용해 뒤집힌 배 상부를 절단하기 시작했다. 절단하기 전 노란색 부이를 붙여 가라앉지 않도록 했다. 2시 52분, 7분 만에 선체 내부에서 생존자들을 구조했다.
●선박 충돌로 18명 조난 가정…17개 유관기관 훈련
이는 실제 상황이 아닌 해양 선박 사고로 인해 조난자 18명이 발생했다는 가정 하에 이뤄진 ‘레디 코리아 훈련’의 일부다. 훈련에는 행정안전부와 해양수산부, 울산광역시, 해양경찰청, 울산소방본부, 보건복지부, 해양환경공단 등 17개 기관 430명이 참여했다.
훈련 시나리오는 2017년 12월 인천 영흥도 인근에서 급유선과 어선이 충돌해 15명이 사망한 사고에 기반해 구성했다. 특히 실제 상황에 더해 “두 배가 충돌하면서 유출된 기름으로 인해 급유선에 화재가 났다”는 설정도 추가됐다.
올해 처음 시행된 레디 코리아 훈련은 여러 대형 재난이 복합화돼 일어나는 최근의 경향을 반영해 만들어졌다. 올 9월 SRT에서 터널 화재 사고를 가정해 훈련한 데 이어 두 번째로 해양 선박 사고를 가정한 훈련이 시행된 것이다. 중앙해양안전심판원에 따르면 2018년 2671건이었던 해양 선박 사고 발생 건수는 2704건으로 늘었다.
현재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라 자연재난 13종과 사회재난 28종에 대한 담당자 훈련이 실시되고 있지만, 기존 교육만으로 신종 복합재난에 대한 긴밀한 대처가 어렵다는 것이 행안부의 판단이다. 행안부 김광용 자연재난실장은 “최근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난과 도시 노후화로 인한 사회재난의 위험성이 모두 높아졌다”며 “각 재난들이 결합해 대형 복합재난이 일어나는 ‘새로운 위험’을 예측해 대비하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인명 구조부터 기름 유출 방제까지 ‘실전 훈련’
이날 훈련에서는 17개 유관 기관이 사고 발생 접수부터 초기대응, 상황 전파, 사상자 구조와 병원 이송 등의 대응 절차에 맞게 움직였다. 우선 급유선에 탄 선장의 신고 내용을 119로부터 전달 받은 남해 해경청이 상황관리시스템을 통해 행안부와 해수부, 소방청, 해경청 등에 상황을 전파했다.
행안부는 유관 기관과 함께 상황판단회의를 열고 현장에 상황관리관을 파견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열고 현장지휘차량에서 직접 상황을 지시했다.
이날 훈련에는 인명 구조와 화재 진압을 위해 울산 해경의 1000t 급 특수함정 ‘화학방제1호정’, 1000t 급 대형경비함정 ‘1009함’, 50t급 소형 경비함정 ‘P-02’ 등 함정 11척과 헬리콥터 1대 등이 동원됐다. 이에 더해 실제 상황과 같이하다 민간 어선과 해양구조협회 소속 민간 잠수사도 어선 내 고립자들을 구하는 데 투입됐다. 울산시와 울산 남구 보건소는 사상자를 경상과 중상으로 분류해 이송하는 등 응급의료체계를 가동했다.
기름 유출로 인한 해양 오염을 막는 작업도 실시됐다. 울산해양환경공단이 방제선 ‘에코미르호’를 사고 현장에 투입해 오일펜스를 철치하고, 유출된 기름을 회수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신속한 상황 전파를 통한 출동과 인명 구조 등 고난도 훈련을 통해 실전과 같은 재난 대응 체계를 익혔다”며 “정부는 앞으로도 레디 코리아 훈련을 정기적으로 실시해 잠재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복합 재난에 대해 대비 태세를 갖추겠다”고 말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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