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전 美 이민자 차별의 잔상, 韓 사회와 오버랩"

고광본 선임기자 2023. 11. 6.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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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수 사건’ 재조명 강형원 전 로이터 기자·남기웅 커넥트픽처스 대표 인터뷰
50년 전 미국에서 두 번 살인사건 휘말린  
이철수씨 사건 ‘프리 찰스 리’ 다큐영화화
이민자 등에 대한 미국 내 공공연한 차별  
편견·차별 많은 한국에도 경종 울리는 계기
미국 주류 언론 출신 강형원(왼쪽) 기자와 남기웅 커넥트픽처스 대표가 6일 서울 청계천로 콘텐츠진흥원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광본 선임기자
[서울경제]

“50년 전 미국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중국인 갱단 두목이 총을 맞고 죽었는데 억울하게도 한국계 청년인 고(故) 이철수 씨가 죄를 뒤집어썼죠. 오늘날 이 사건을 ‘프리 철수 리’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재조명했는데 우리 사회에서 북한 이탈 주민, 다문화 가정, 생계형 불법 이주 노동자 등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강형원 전 로이터통신 기자와 남기웅 커넥트픽처스 대표는 6일 서울 중구 청계천로 콘텐츠진흥원에서 서울경제신문과 합동 인터뷰를 갖고 “당시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동포들은 물론 현지 화교, 일본계, 필리핀계, 인도계 등 아시아 커뮤니티가 함께 나섰다”며 이같이 밝혔다. 13세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 AP통신·LA타임스 사진기자 시절 퓰리처상을 두 번 받은 강 전 기자는 이 사건을 처음 보도해 구명 운동의 불씨를 지핀 이경원 전 새크라멘토유니온 기자와 함께 이 씨의 출소 후 사회 활동 재개를 도왔다. 남 대표는 지난해 미국 선댄스영화제에서 화제를 모은 ‘프리 철수 리’를 최근 한국에 배급했다.

2014년 고인이 된 이 씨는 1973년 6월 3일 차이나타운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졌을 때 백인들의 엉터리 증언으로 인해 범인으로 지목돼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이후 폭력과 살인이 난무하던 교도소에 수감됐다가 갱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살인 사건에 휘말렸다. 당시 이 씨는 옥중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천사가 아닙니다. 그러나 악마도 아닙니다. 정말로 난 살인자가 아닙니다”라고 절규했다.

당초 한국에서 어머니의 성폭행 피해 사건으로 태어난 이 씨는 나중에 주한미군과 결혼한 어머니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으나 여전히 교육도 못 받고 허드렛일을 전전했다. 하지만 작가의 소질을 보여줄 정도로 글솜씨가 괜찮았다. 수감 10년째인 1982년 재심 끝에 출소하게 됐으나 구명 운동에 나섰던 사람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자책하며 알코올·마약 중독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말년에는 자신의 인생을 청소년들에게 알리는 데 나서기도 했다. 강 전 기자는 “이 사건은 자칫 그냥 묻힐 뻔했으나 주류 언론에 있던 이 전 기자의 심층 보도로 인해 한인 사회와 종교계가 들끓는 계기가 됐다”며 “아시아인들이 뭉쳐 20만 달러를 모금하고 법정 응원을 펴 감동을 줬다”고 설명했다. 이 전 기자는 “구명 운동 과정에서 고 유재건 변호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그레이스 김과 함께 셋이서 처음 구명위원회를 시작했고 일본인 3세들이 합세하면서 미 전역의 아시아계들이 단결하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이경원(오른쪽) 기자가 2007년 9월 이철수 씨(가운데)·강형원(왼쪽) 기자와 함께 미국 애틀랜타에 있는 마틴 루터 2세와 코레타 스콧 킹의 묘소를 방문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강형원 기자

이 사건은 이 전 기자의 후배인 하줄리 코레암저널 편집장이 이 씨의 장례식에 참석했다가 영화로 만들겠다고 결심한 뒤 이성민 프리랜서 영상 감독, 김수현 프로듀서와 의기투합해 지난해 86분 분량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다뤄졌다. 미국 주류 신문·방송은 “구조적 인종차별과 사법 체계에 대한 강력한 고발장”이라고 평가했다. 이 영화가 선댄스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 등 세계 20여 개 영화제에 공식 초청을 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남 대표는 “이철수 사건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만연한 구조적 차별과도 일맥상통한다”며 “하지만 독립 다큐 영화라 관객을 만날 기회가 적다”고 호소했다. 앞서 남 대표는 한국전쟁기 고아를 다룬 ‘폴란드로 간 아이들’, 쿠바 한인을 소재로 한 ‘헤로니모’, 미혼모와 해외 입양을 조명한 ‘포겟 미 낫’, 끔찍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직시한 ‘귀향’과 ‘코코순이’ 같은 다큐 영화를 배급했는데 코로나19 이후 영화 시장이 더 어려워졌다고 안타까워했다.

두 사람은 ‘프리 철수 리’를 보며 우리 사회의 차별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씨 사건처럼 적잖은 아시아 이민자들이 미국의 언어·문화 장벽을 넘지 못해 차별을 받고 있는 현실이 한국에서도 오버랩되고 있다는 것이다. 로이터통신 기자 시절 이 씨 사건을 보도했던 강 전 기자는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는 인생의 법칙에서 ‘검투사’로 살다 간 ‘프리 철수 리’ 이야기는 한국인의 강인한 DNA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기록”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두 사람은 “미국에서 여전히 이민자 등에 대한 여러 차별이 남아 있는데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라며 “우리도 언어·문화 교육 등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야 건강한 공동체를 형성하고 진정한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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