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구청장 압승 후 ‘끌려만 다니는’ 제1야당···승자의 저주인가, 반사이익 정당의 한계인가
더불어민주당이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압승 후 오히려 정국 주도권을 잃고 정부·여당에 끌려다니고 있다. 정책적으로 김포시 서울 편입·한시적 공매도 중단 등 여권이 내놓은 의제에 반응하기 급급하다. 당 혁신을 두고도 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원회가 여론의 주목을 독차지하면서 민주당의 변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보궐선거 승리의 역효과, 야당의 구조적 한계 등이 원인으로 거론된다. 민주당이 대안정당으로서 자체 경쟁력을 키우기 보다 여권의 실책에 따른 반사이익에 기댄 결과라는 해석도 나온다.
지난달 11일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승리 후 6일까지 근 한 달 동안 민주당은 정국 주도권을 국민의힘에 완전히 내줬다. 국민의힘은 ‘인요한 혁신위’ 출범, 김포시 서울 편입, 한시적 공매도 중단 등의 의제를 던지며 당 혁신은 물론 정책에서도 여론을 주도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반성을 언급하고 이념 발언을 자제하는 등 일부 변화를 보이고 있다. 논란과 비판도 있지만 역동성, 화제성 등의 측면에서 여권은 승점을 확실히 챙겼다.
그러는 사이 민주당은 각종 정책 이슈에서 끌려다니며 어정쩡한 태도만 취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여당이 선거에 급하다고 정략적인 공수표를 남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이날 MBC 라디오에서 “공매도를 한시적으로 중단하든가 아니면 근본적인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우리 당이 먼저 해왔다”고 말했다. “총선용”이라고 비판하고 민주당도 논의해왔다고 주장하는 식의 대응이다. 앞서 김포시 서울 편입 문제를 두고도 비슷했다. 이 대표는 찬반을 포함해 구체적 답변을 내놓지도 않았고, 홍 원내대표는 행정대개혁과 5·9호선 지하철 연장 문제 등을 논의하자고 맞섰다. 당내에서조차 선명한 입장으로 대응하라는 요구가 나온다.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원내지도부나 또는 지도부가 좀 더 이 국면을 좀 주도적으로 끌어왔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있다”며 “‘약간 좀 밀린다’ 또는 ‘말리고 있다’ 이런 느낌이 든다. 결국은 지지율로 드러나고 있는 거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실제 이날 발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를 보면 윤 대통령 지지율은 36.8%로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후 발표된 10월 셋째주 조사에서 32.5%, 넷째주 조사에서 35.7%였다. 국민의힘 지지율도 같은 기간 35.2%→35.8%→37.7%로 점차 상승하고 있다. 반면에 민주당은 46.1%→48.0%→44.8%로 하락세다.
선거 승리 후 민주당의 존재감이 오히려 약해지고 있는 것은 승리의 역효과로 볼 수 있다. 이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구속영장 기각→강서구청장 선거 압승이 이어지면서 이 대표 체제는 안정화됐고 총선까지 큰 변화의 가능성은 줄어들었다. 강서구총장 선거 승리 후 오히려 체제가 굳어지면서, 살아남기 위해 변화할 수밖에 없어진 국민의힘과 대비되는 상황을 맞았다는 것이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야당의 구조적 한계라는 지적도 있다. 정책 이슈에서는 집행 능력을 가진 여권에 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의원은 “‘야당은 상대적으로 정부 여당이 내는 정책에 대해서 문제가 있는 걸 지적하고 그걸 바로잡는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위치에 있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2일 경제성장률 3% 회복을 위한 재정지출 확대 등의 제안을 내놨지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진 못한 바 있다.
환경적 요인만 탓하기에는 민주당 자체 문제도 분명히 존재한다. 민주당이 여권의 실책에 의해 지지율을 높이거나 유지해왔다는 점도 존재감 부재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민주당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도 윤 대통령의 이념 편향 발언, 일방적 당정관계 논란, 이 대표 구속영장 기각 등에서 찾아야 한다는 게 일반적 분석이었다. 민주당이 제시한 정책 의제나 혁신 노력 때문에 승리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한 재선 의원은 통화에서 “(강서구청장 선거 승리는) 민주당이 잘해서 이긴 게 아니라 저쪽에 대한 심판이었기 때문에 이대로, 또 그대로 나온다는 보장은 없다는 게 많은 의원들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재판과 수사가 여전히 진행 중이라 이 대표는 운신의 폭이 좁고, 당내 화력의 상당 부분이 검찰 비판에 쏠려 있다는 점도 한계로 지목된다. 계파 갈등이 진행형이란 점도 부담이다. 여권 관계자는 “우리는 새로운 의제를 던지고 변화된 모습을 보이려 하는데 민주당은 자신들의 의제를 던지지 못하고 영수회담이나 검찰독재 같은 기존 이야기만 반복했다”고 말했다.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이제 민주당은 민주당다운 것을 내놔야 한다”며 “결과적으로 민주당은 민주당다운 정책이나 공약을 내놔서 지지층과 중도층의 마음을 얻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실정과 여당의 헛발질을 기다릴 게 아니라 민주당 자체 ‘매력’을 키우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의미다.
박순봉 기자 gabgu@kyunghyang.com, 신주영 기자 j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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