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는’ 김정은, 그녀가 돌아왔다[★인명대사전]
대한민국에서 정극에 주로 출연하는 여배우 중 ‘코믹함’을 주무기로 가지고 유명세를 얻은 사례는 그다지 많지 않다. 특히 2000년대 이후처럼 국내에서만 방송되는 ‘내수용’ 드라마가 아닌 전 세계를 대상으로 나가는 작품에 출연하기 위해서는 주인공이 갖는 ‘무게감’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배우 김정은이 갖는 위치는 굉장히 독특하다. 1996년 MBC 공채 25기 탤런트로 데뷔한 김정은의 여정은 다채로웠다. 파격으로 시작해 발랄함으로 승부를 보다, 또 진지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 그만의 무기 ‘코믹’을 갖고 돌아왔다. 단지 그것만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다.
김정은은 현재 JTBC에서 주말극으로 방송 중인 ‘힘쎈여자 강남순’(이하 강남순)에 출연 중이다. 극 중 괴력을 가진 세 모녀 중 가운데로 강남순(이유미)의 엄마이자, 길중간(김해숙)의 딸인 황금주 역을 연기 중이다.
‘강남순’에서의 김정은 연기는 지금까지 김정은의 다채로운 이미지를 집대성한 모습이다. 우선 강력한 액션이 있다. 이는 김정은이 2002년 영화 ‘재밌는 영화’나 2008년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에서도 보여준 모습이다. 김정은은 여배우 중 액션에 꽤 최적화된 배우 중 하나다. ‘강남순’에서도 김정은은 오토바이를 거칠게 타거나 타격이나 괴력을 쓰는 액션 그리고 각종 도구를 쓰는 무술도 빼어난 장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절절한 감정연기도 있다. 이는 특히 엄마인 길중간, 딸인 강남순을 대할 때 주로 보이는데, 몽골에 출사를 갔던 남편 강봉고(이승준)가 딸을 잃고 온 다음 딸을 찾아 헤맬 때 나타났다. 이후 한 번 딸을 잃은 황금주는 강남순의 안전에 대한 일에는 극한의 모성애가 발동한다. 그 모습이 과해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균형을 맞추는 김정은의 연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가장 큰 장기인 코믹 연기가 있다. 김정은의 이름은 데뷔 때부터 ‘코믹’과 뗄 수 없었다. 데뷔 후 처음 배역을 맡은 1999년 MBC 드라마 ‘해바라기’에서 삭발해야 하는 상황이 있을 때, 용감하게 이에 도전해 화제가 됐고 다양한 광고를 통해 코믹한 이미지를 보였다.
이후 영화 ‘가문의 영광’, 드라마 ‘파리의 연인’ 등으로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이후에도 ‘나는 전설이다’ ‘울랄라 부부’ ‘여자를 울려’ 등 치정, 코믹, 성장기 등 다양한 소재의 작품에 자신을 맞췄다. 2010년대에는 상대적으로 작품이 드물다 ‘강남순’을 통해 거의 3년 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하게 됐다.
‘강남순’의 황금주 역은 과거의 김정은이었다면 못 했을 연기이고, 또 김정은이 아닌 다른 배우라면 쉽게 도전하지 못했을 배역이다. 김정은은 데뷔 후 다채로운 작품을 통해 얻은 것들을 조금씩 황금주의 안에 녹여 넣어 표현하고 있고, 그의 나이대 배우 중에서 김정은처럼 코믹이 베이스인 황금주 역을 천연덕스럽게 할 수 있는 배우도 없다.
‘강남순’ 안에서도 비록 주인공의 역할은 강남순 역 이유미가 하고 있지만, 단독 주연은 처음이고 그의 역할이 괴력과 강희식과의 로맨스로 좁혀지고 있다. 그렇기에 모계 3인방의 사회정의 실현에 앞장서고, 빌런 류시오(변우석)와도 가장 적극적으로 맞서고 있는 황금주의 역할은 크다.
김정은의 존재는 작품 안에서 어떠한 메시지든 실현이 쉽지 않은 판타지의 설정으로 코믹을 버무려 표현하는 백미경 작가의 입맛에도 맞다. 꽤 오랜시간 작품이 뜸했던 김정은을 캐스팅해 그에게 코믹 본능을 일깨운 이가 백 작가인 것은 확실하지 않지만, 김정은은 황금주의 역할을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고 수행 중이다.
20대 배우들의 장르물 진출이 더욱 많아지고, 그 출신 역시 진지하게 연기에 임하는 타입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 김정은의 계보를 이을 만한 후배의 모습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연기력과 코믹함의 무기를 양손에 들고 있는 김정은의 가치는 독보적이다. 황금주가 그가 사는 세상에서 사회를 구하는 ‘히어로’라면, 김정은은 실제 드라마 안에서 팔색조의 여주인공을 원하는 제작자와 스태프들의 ‘히어로’인 셈이다.
하경헌 기자 azima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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