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초연결 AI 시대…왜 고전 열풍인가
인공지능(AI) 개발 경쟁의 새 장을 연 챗GPT가 나온 지 1년이 지났습니다. 인류 문명을 질적으로 다른 미래로 이끌 AI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했으니, 어딜 가나 AI 얘기가 많은 건 당연한 현상입니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 흐름이 우리나라에서 나타나고 있는데요, 바로 고전과 클래식 붐입니다.
가을이 깊어가는 11월 들어 이러한 흐름은 더욱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빈필하모닉 등 세계 3대 교향악단이 이번 주 동시에 내한공연을 펼칠 예정입니다. 세계 주요 도시를 제쳐놓고 이들 교향악단이 경쟁하듯 서울에 모여든 것은 정말 흔치 않은 일입니다. 그만큼 한국에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이 늘었다는 방증입니다. 아트바젤과 함께 세계 양대 아트페어로 손꼽히는 프리즈가 작년에 이어 올해 2년 연속 서울에서 열린 것도 미술시장에서 일고 있는 변화 양상입니다. 1980년대 서점가를 풍미한 시집의 인기가 되살아나고, 각 대학 경영학과와 금융회사들이 인문학 강좌를 경쟁적으로 여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초연결 시대라고 하는데, 대중은 ‘나만의 시간’ 속으로 침잠하려는 욕구를 강하게 보이고 있습니다.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누구나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다”라며 고전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언급했는데요, 이와는 달리 고전과 클래식에 열광하는 한국인의 모습과 그 배경을 들여다보고, 우리 청소년들이 해야할 일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이번주 3대 오케스트라 서울로…고전·클래식 붐
디지털·AI 시대, 되레 종합적 사고 중요성 커져
고전(古典)이나 클래시컬(classical)이란 단어를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인류 문화유산의 보고(寶庫)이지만, 뭔가 접하기 부담스럽고 고리타분한 느낌을 지울 수 없을 텐데요, 스페인의 궁정화가 벨라스케스 등으로 대표되는 17세기 바로크 미술 등이 그런 대표적 사례로 떠오를 겁니다. 그러면 고전의 영역을 살짝 넓혀볼까요. 요즘 사람들은 미술 전시회를 찾는 일, 시나 인문서적을 읽는 것도 모두 고전과 클래식을 즐기는 행위라 여길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고전의 폭을 조금만 넓히면 최근 고전과 클래식 붐이 왜, 그리고 어떤 경로로 나타나게 됐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 클래식 음악 부흥기 맞아
고전·클래식 붐의 불씨를 당긴 것은 클래식 음악입니다. 한국 클래식 음악은 피아니스트 백건우, 바이올리니스트 정명화,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정명훈 등 걸출한 스타들이 만들어왔습니다. 그리고 2015년 쇼핑 콩쿠르에 우승한 피아니스트 조성진를 비롯해 선우예권과 임윤찬 등이 이를 새로운 단계로 올려놓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현악 파트가 강했던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 피아노 신성(新星)들이 등장하며 클래식 음악 부흥기가 찾아온 것이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의 공연 관람 갈증이 더해진 것도 클래식 붐을 일으키는 데 한몫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에는 세계 3대 교향악단들이 일제히 내한해 공연을 합니다. 전례 없는 일입니다. 오스트리아의 빈필하모닉(11월 7·8일), 네덜란드 로열콘세르트헤바우(11월 11일), 독일 베를린필하모닉(11월 11·12일)이 공연을 갖는데요, 클래식 음악계 성수기에 유럽 현지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입니다. 앞서 지난달 런던필하모닉, 체코필하모닉, 오슬로필하모닉이 공연을 펼쳤고, 앞으로 라이프치히게반트하우스 등도 한국을 찾을 예정입니다.
인문학, 위기는커녕 전성기
클래식 음악뿐 아닙니다. 전시 관람과 미술품 구매 열기도 뜨겁습니다. 해외 유명 갤러리를 몰고 온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이 2년 연속 8만 명 이상이 관람하는 흥행 대박을 기록했습니다. 국내 미술품 시장은 연 4000억 원 규모에서 작년 1조 원대로 급격히 커졌습니다. 이 영향으로 지난해 세계 미술시장에서 한국은 처음으로 점유율 1%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세계 7위에 해당합니다.
미술 관람 붐은 내년 2월 중순까지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에서도 확인됩니다. 장욱진이 한국 근현대 화단을 대표하는 작가이긴 하지만, 미술관에서도 이처럼 많은 인파는 오랜만에 봤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또한 미술 애호가인 방탄소년단 RM이 개인 소장하고 있는 장욱진 작품을 전시회에 내놓아 더욱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서점가도 마찬가지인데요, 50대 이후 장·노년층이 최근 고전을 많이 읽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작년 예스24 판매 집계를 보면 50대와 60대 이상의 책 구매 분야 1위가 ‘소설·시·희곡’이고, 3위가 ‘인문’ 분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해 교보문고에서 판매된 시집도 10년 전에 비해 74.5% 증가하며 서점 창립 이래 역대 최다 기록을 세웠습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10년 전만 해도 2030세대(58%)가 주로 책을 사 봤는데, 올 상반기에는 40대와 50대 이상 구매자가 전체의 59.6%로 다수를 점했습니다. 구매 연령대가 중장년층으로 옮겨가면서 서점가에 인문·문학 서적 판매 비중이 늘어난 것입니다.
인문학의 인기는 “인문학으로 경영하라”라는 말이 유행하는 데서도 감지할 수 있습니다. 고전에서 위로와 치유를 받고 지혜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그만큼 간절했던 것이죠.
고전 열기는 한 사회의 성숙도를 나타낼 뿐 아니라 국민소득 5만 달러 사회의 징표인 ‘독서하는 국민’을 만든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한국인이 고전에 심취하고 있는지, 청소년들은 여기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다음 페이지에서 들여다보겠습니다.
NIE 포인트
1. 고전과 클래식에 대한 평소 생각을 얘기해보자.
2. 자신이 인문학이나 고전 읽기로 위로받은 경험을 나눠보자.
3. 인문학이 위기를 지나 전성기를 맞은 배경을 생각해보자.
창의력·융합적 사고의 원천 '고전'
고전에서 배워야 할 이는 청소년
한국에 불고 있는 ‘고전 열풍’에는 여러 요인이 있습니다. 먼저 초연결이 가져다주는 공허와 불안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과 많이 연결될수록 행복해질 것 같지만, 이는 소셜 네트워크와 같은 가상공간의 연결일 뿐입니다. 자신의 필요에만 맞는 가상공간 속 인간관계는 정서적 안정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급변하는 경제 환경도 미래를 더욱 예측하기 어렵게 하고, 하루하루 초조한 일상은 끝도 없이 이어집니다.
“초연결 능사 아니다” 인식 확산
초연결이 실은 개인의 분절화를 뜻한다는 걸 사람들은 알게 됩니다. 그러니 마음을 안정시키고 나만의 시공간 속으로 조용히 빠져들려는 욕구가 커집니다. 이는 누에가 고치 속으로 숨어 자신을 보호하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명명된 ‘코쿠닝(cocooning)’ 현상의 한 단면입니다. 그래서 고전 읽기, 클래식 작품 감상 등에 몰두하게 됩니다. 따스한 사람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고전 작품을 통해 위로를 얻으려 하는 것이죠.
심리학적으로는 이를 ‘회고 절정’ 또는 ‘므두셀라(구약성경 속 최고령 인물) 증후군’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회고 절정(reminiscence bump)은 노년기에 자신의 삶을 되돌아봤을 때 초기 성인기의 기억을 가장 많이 떠오르는 현상을 말합니다. 므두셀라 증후군은 좋지 않은 기억은 잊고, 좋은 기억만 남기려는 심리적 왜곡 현상입니다. 음악이든 문학, 미술이든 고전 속에는 이성·혈육 간의 사랑, 절절한 조국애, 희생과 헌신, 시련과 고난, 이를 이겨내는 용기와 격려, 다시 찾아오는 평화와 같은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분절과 소외의 시대, 사람들은 고전을 통해 영화로운 과거의 기억을 더듬으려는 심리가 확대된다는 설명입니다.
물론 고전 자체가 주는 묘미도 상당합니다. 예컨대, 베토벤이나 브루크너, 말러의 교향곡을 1번부터 9번까지 듣다 보면 인간 이성에 대한 믿음과 도전, 인류의 형제애 등이 하나의 멋진 스토리로 이어집니다. 팝이나 록 음악에서는 찾을 수 없는 부분이죠. 젊을 때는 클래식 음악이 지루해 보였는데, 마치 와인의 세계처럼 크고 넓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게 재미있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소득수준 향상과 경제적 안정은 이런 고전과 클래식의 묘미를 발견하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프리즈 서울’ 총괄감독 패트릭 리 씨는 “한국인은 영화, 음악, 패션 등 창의적 문화를 좋아한다. 다음 단계로 ‘아트’를 좋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슬로푸드·공정무역·ESG(환경·사회·지배구조) 등에 관심을 쏟는 요즘 사회 분위기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교과서 ‘죽은 지식’의 한계
이런 고전 붐이 청소년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장년층 이상이 고전에 빠지는 현상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중장년층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분야는 미래 서적입니다. 그래야 사회가 발전하고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반면 청소년은 미래 서적뿐 아니라 고전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미래 인재의 핵심 자질이라는 창의성이나 융합적 사고를 기르는 데 고전을 빼놓고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사회 교과서 속 ‘민주주의 원리’는 죽은 지식이나 다름없습니다. 19세기 전 세계를 요동치게 한 절대왕정 타파와 민주 공화정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는 고전 속에서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현대 민주주의가 어떤 과정과 시행착오를 거쳐 완성됐는지도 고전을 통해 더욱 확실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19세기 프랑스 지식인 알렉시 드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를 읽어야 당대의 민주정치체제 설계의 고민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죠.
미국 시카고대가 85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명문 학교가 된 데에는 1929년 시작한 ‘그레이트북스 프로그램’ 영향이 컸다고 합니다. 재학생들이 졸업 때까지 100권 이상의 고전을 읽게 한 시도가 큰 효과를 낳은 것이지요. 살아 숨 쉬는 고전 속 지혜와 통찰력을 가장 먼저 배워야 할 이는 바로 청소년입니다.
NIE 포인트
1. 한국에서 고전이 큰 인기를 끄는 이유를 얘기해보자.
2. 초연결 시대에 고전 읽기가 갖는 장점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3. 청소년기에 고전 읽기가 중요한 이유를 얘기해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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