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상위법 위반 ② 고발요건 모호 ③ 전속고발권 충돌···법조계도 발끈

서일범 기자 2023. 11. 6.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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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법 고발지침 개정안 문제점은
오너 일감 몰아주기 등 관여 없더라도 '무차별 고발' 가능
고발요건도 추상적이고 불분명 "기업 경영 위축 불가피"
개정안 행정예고···경제6단체, 공정위에 반대의견 전달
우태희(왼쪽부터)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과 김창범 한국경제인협회 부회장,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정만기 한국무역협회 부회장이 지난달 대한상의에서 열린 상근부회장 회의에 앞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경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정거래법 위반행위 고발지침’ 개정을 두고 재계와 법조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조치가 단순히 기업인들의 부담을 키우는 수준을 넘어 자칫 법적 안정성까지 흔드는 개악(改惡)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다. 전문가들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 법 개정으로 향후 기업 활동이 극도로 위축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한국경제인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영자총협회·한국무역협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한국상장회사협의회 등 경제6단체는 6일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지침 개정안’에 대한 반대 의견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경제6단체는 최근 개정안에 반대하는 집단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일명 ‘일감 몰아주기’ 등 중대 사익 편취 행위로 사업자(법인)를 검찰에 고발할 때 오너 일가(특수관계인)도 원칙적으로 함께 고발하도록 하는 것이다.

재계와 법조계는 우선 법리적으로 일종의 ‘하극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현재 공정거래법은 특수관계인이 사업자에게 사익 편취를 지시하거나 관여했다는 증거가 있고 △법 위반의 정도가 명백하고 중대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특수관계인을 고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만약 이 같은 공정거래법 조항 자체에 문제가 있다면 법 조항을 직접 고치는 게 올바른 절차라는 의미다. 하지만 공정위는 하위 규범인 고발지침을 개정해 정부의 증명 책임을 사실상 기업에 떠넘기고 있다는 게 법조계의 지적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상위법에서 정한 고발 요건을 행정 지침으로 뒤집는 것은 법의 기본 원리에 맞지 않는 조치이므로 개정안을 전면 검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침은 상위법에도 위반한다는 지적이 많다. 공정위가 예고한 지침에는 사업자의 위반이 인정되면 특수관계인의 ‘법 위반 정도가 객관적으로 명백·중대하지 않더라도’ 원칙적으로 고발하도록 했다. 이에 상위법에서 정한 고발 요건에 반한다는 것이다.

고발 요건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있다. 새로운 고발지침에는 고발 요건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생명·건강 등 안전, 사회적 파급효과, 국가 재정에 끼친 영향, 중소기업 피해, 이와 유사한 사유가 있는 경우 고발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는 추상적이고 불분명한 데다 상위법에서 정하고 있는 고발 요건의 범위를 벗어났다는 것이 경제단체들 판단이다. 경제6단체는 “어느 경우 고발 대상이 되는지 예측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여론에 따라 고발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공정위의 존립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공정위는 그동안 경제 원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검찰이 공정거래법 관련 사건을 다룰 경우 법리를 잘못 적용할 수 있다는 논리를 앞세워 전속고발권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에 따라 법 위반 중대성 입증 의무를 검찰에 넘기게 되면 전속고발권을 유지해야 할 이유 또한 사라진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재계는 이번 개정에 따라 극도의 불확실성이 나타나 기업 경영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유정주 한경협 기업제도팀장은 “고발 요건이 불명확하고 광범위해 법리적 판단이 아닌 국민 정서나 여론에 따라 고발 여부가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어떤 경우에 고발을 당하는지 알 수 없어 법적 예측 가능성이 저하되는 문제를 떠안게 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최근 미중 갈등을 비롯한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 가뜩이나 위축된 기업 경영이 더욱 움츠러들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최근 반도체 경기가 사상 최악의 불황에서 벗어나 반등 기미를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국내 간판 기업인 삼성전자의 올해 3분기 누적 영업이익(3조 7423억 원)이 전년(39조 705억 원) 대비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등 경제계가 여전히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상황이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경제 형벌 규정을 완화하는 등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힘썼는데 이번 조치는 국정 운영 기조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조치”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개정안은 8일까지 행정 예고를 마친 뒤 공정위 의결을 거쳐 시행된다. 아직 의결 일자가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이르면 연내 시행도 가능할 것으로 재계는 우려하고 있다.

서일범 기자 squi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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