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강한, 서평연대 스물네 번째[출판 숏평]

기자 2023. 11. 6.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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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 더 많은 세상이라면(박윤영·채준우 지음 / 뜨인돌)

장애인이 더 많은 세상이라면



사랑하는 사람과 좋은 곳에서 맛있는 밥을 먹고자 외출했는데, 휠체어를 탔다는 이유로 들어갈 수 있는 식당이 없다. 지하철을 환승하려고 하면 장애인 전용 환승통로가 복잡해 1시간 넘게 바퀴를 굴려야 한다. 차별받는 사람은 분명히 존재하는데, 차별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출근시간 지하철에서 시위를 벌이는 이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고, 손가락질하고, 아무렇지 않게 혐오 표현을 남용하는 사람들에게 장애인의 이동권은 물론 인권보장도 관심 없는 이야기일 뿐이다.

비장애인이 남들처럼 공부하고 사랑하고 일하며 사는 것은 특권이 아닐 수 없다. 나만 편하면 된다고, 국가는 나름대로 장애인을 위한 법과 제도를 마련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 비장애인은 세상이 완전히 반대로 뒤바뀐다면 어떻게 될 것인지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과 나는 다르다고 믿는 당신도 ‘선량한 차별주의자’일 수 있다는 것을 일깨운다. (김정빈 / 출판칼럼니스트, 9N비평연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홍보위원)

김정빈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10·29 이태원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에서 100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했다. 수많은 사람이 ‘길’ 위에서 허망하게 죽어가야만 했던, 이 참사를 더욱더 가슴 아프게 만드는 건 ‘외면’이다. “왜 그런 곳에 가느냐?” “핼러윈은 우리나라 축제도 아닌데 왜 챙기느냐?”라며 2차 가해를 하고 무분별한 혐오 표현을 내뱉는 사람들과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책임지는 일보다 재빨리 덮어버리는 일에 더 열중하는 정부 탓에 ‘10·29 이태원참사’는 충분히 애도받지 못하고 고립돼야만 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날 희생자들이 이태원에 간 게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물어야만 한다. ‘그들이 왜 돌아올 수 없었는지’를…. 이 책에는 그날의 진실에 다가서고자 고군분투하고 희생자들을 진심으로 애도하는 사람들(유가족, 생존자, 목격자)의 목소리가 담겼다. 이 글을 읽는 누구라도 이 책을 펼쳐 그날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마주해 주기를, ‘남의 일’이라며 외면하고 피해자를 탓하는 일을 멈춰 주기를,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안전이 위협받고 있는 이 사회를 함께 비판해 주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현다연 / 출판편집자, 9N비평연대)

현다연



■광기와 우연의 역사(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 정상원 옮김 / 이화북스)

광기와 우연의 역사



서문처럼 “오랜 숙성 과정을 거쳐서 탄생한 운명적 순간은 예기치 않은 우연처럼 몇몇 사람들을 덮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이 떠오르게 한다.

살면서 무수히 많은 선택의 순간이 주어진다. 개인에게만 영향을 미치면 모르겠지만, 나의 선택 한 번으로 역사가 변한다면 어떨까? 선택의 순간에 놓인 사람들은 어떤 판단으로 세계사의 족적을 남겼을까? 호기심이 떠오를 때 이 책을 꺼내어 읽었다.

슈테판 츠바이크가 딱딱한 역사에 서사를 불어넣음으로써 살아 움직이게 한다. 역사 배경지식이 부족한 사람에게 이 책은 소설처럼 빨려들게 한다. 키케로부터 윌슨까지, 고대부터 근현대사를 아우르는 핵심 사건들 속 주요 인물을 중심으로 역사적 사건, 개인의 심리묘사까지 파고든다. 다만 사실을 기반으로 작가의 상상과 서사가 부여돼 사실 그대로 믿기엔 무리가 있다. 역사에 친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이 책은 입문서가 돼 줄 것이다. (최상현 / 서점원, 9N비평연대)

최상현



■말을 잘한다는 것(정연주 지음 / 세종서적)

말을 잘한다는 것



“엄밀히 따져보면 ‘말실수’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말이란 결국, 우리가 가진 생각과 태도가 입을 통해 소리로 새어 나오는 것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조금 냉정하게 얘기하면 ‘그저 말실수였으니 한 번만 봐 달라’는 말은 하지도 말고 듣지도 말아야 합니다. 말은 단순히 소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말에 담긴 뜻과 말하는 사람의 생각과 태도에 우리 사회가 훨씬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비판하고 반성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상식을 바로잡을 수 있고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누구보다 말의 위력을 잘 알고 있는 저자는 말을 통해 사회를 바꾸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 책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었다. 읽는 내내 나는 이 책을 흔한 자기계발서로 분류하고 싶지 않았다. 내용은 깨알처럼 유용했지만, 이상하리만큼 자주 가슴이 뜨거워졌기 때문이다. 낯설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격이자 살아온 시간 자체’라는 문장을 잊지 않으려 한다. (김성신 / 출판평론가, 9N비평연대)



정리=엄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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