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2위 태권청년'주정훈"안세영 투혼에 힘받아 항저우金! 태권도 후배들 더 강하게 도전하길!"[진심인터뷰]
"대표선발전 때 오른발 공격을 더 적극적으로 해보면 좋을 거야!"
5일 전남 장흥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제43회 전남 전국장애인체전 남자 태권도 K44(한쪽 팔 장애 중 팔꿈치 아래 마비 또는 절단 장애가 있는 유형) -80㎏급 결승전, '항저우 금메달리스트' 주정훈(29·SK에코플랜트·서울시장애인체육회)이 우승을 확정지은 후 제주 대표 '은메달' 후배 이권훈(28)을 향해 따뜻한 조언을 건넸다. 후배는 허리를 굽혀 깍듯한 예를 표했다. 훈훈한 풍경이었다.
주정훈은 대한민국 장애인 태권도의 역사다. 태권도가 첫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2021년 도쿄패럴림픽서 최초 동메달을 따냈고, 지난 9월, 멕시코 베라크루즈 세계장애인태권도선수권에서 첫 은메달, 항저우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 '난적' 알리레자 바흐트(이란)를 15대13으로 돌려세우며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열흘 만에 이어진 전국장애인체전 결승서 체급을 높여 출전한 '제주 대표' 후배 이권훈을 29대16으로 꺾고 3연패를 확정지었다. 전광석화같은 2단 돌려차기에 환호성이 터졌다. 이권훈 역시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한때 13-12까지 따라붙으며 정면승부하는 모습은 인상 깊었다.
주정훈은 치열하게 붙을 선후배들이 더 많아지길, 그래서 비장애인 태권도처럼 국내서도 뜨거운 경쟁 구도가 만들어지길 열망하고 있다. "이권훈 선수는 -70㎏ 체급인데 이번 대회 체급을 올려 나왔다. 대표선발전선 본인 체급으로 나올 것이다. 치열한 대결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월드클래스' 주정훈에게 국내 무대는 좁다. 태권도는 대한민국의 국기지만 장애인 태권도의 저변은 취약하다. 재활이나 생활체육으로 스포츠에 입문하는 많은 장애인들이 탁구, 수영을 선호한다. 태권도와 같은 격투기 종목은 가족이 부상을 이유로 만류하는 경우가 많다. 이날 주정훈과 같은 K44 등급 출전선수는 4명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국가대표와 붙거나 승패가 뻔한 경우 기권도 잦다. 이날도 주정훈은 준결승 기권승에 이어 결승 단 1경기로 금메달을 확정지었다. 결승전 후배에게 진심 조언을 건넨 이유는, 함께 잘하는 '태권도'를 향한 꿈 때문이다. 주정훈은 "국내 선수층이 두텁지가 않다. 더 많은 선수들이 도전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처음에 체전에 나왔을 땐 내 경기력에만 집중했지만 지금은 함께 멋진 플레이를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크다. 체전에 더 좋은 선수가 많이 나와야 하고, 국내 경쟁 구도가 필요하다. 체전에 경쟁력이 생겨야, 국제 무대 경쟁력이 생긴다"고 했다. 후배들의 겁없는 도전을 바랐다. "체전서 국가대표와 붙게 되면 기권하는 경우가 있는데, 실력차가 나더라도 끝까지 도전했으면 좋겠다. 국대 상대로 붙어볼 좋은 기회 아닌가. 나 역시 어느 상대를 만나든 경기시간 5분을 다 채우려 노력한다. 맞으면서 배우는 용기, 겁내지 않고 도전하는 용기를 통해 다함께 발전했으면 좋겠다."
헤어날 수 없는 태권도의 매력에 대해 주정훈은 "태권도가 주는 자신감은 엄청나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이 매 훈련 나온다"고 했다. "장애로 인해 성격이 내성적으로 바뀌기도 하고 왕따를 당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강해져야 한다. 자신을 단단하게 해주는 수련의 과정, 그것이 태권도의 가장 큰 힘이자 매력"이라고 강조했다.
주정훈은 주변을 향한 감사도 잊지 않았다. "소속팀 SK에코플랜트와 서울시장애인체육회의 전폭적인 지원, 보배반점의 후원에 감사드린다. 제 미래를 보고 투자해주신 것이다. 보배반점 김진혁 선수단장님은 항저우 현장서도 제 포토카드를 나눠주셨다. 쑥스럽기도 했지만 정말 감사했다. 그런 마음들에 힘입어 더 높이 올라가야 한다는 각오가 생겼다. 더 많은 선수들이 후원을 받으며 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불굴의 주정훈은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항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시작으로 내년 파리패럴림픽, 세계선수권, LA패럴림픽까지 그랜드슬래머에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9월 세계선수권 결승전 초반 상대와 무릎을 강하게 부딪치며 무릎 위 근육이 찢어졌다.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려 했지만 주심이 경기 중단을 선언했다. 모니터에 상대 '승' 사인이 뜨는 순간, 주정훈은 눈물을 쏟았다. "세계선수권 첫 결승 진출이었고, 직전 그랑프리에서 금메달을 땄고 최고의 컨디션이었다. 너무 아쉬웠다"고 했다. 이 악문 부상 투혼이 이어졌다. 한달 만의 항저우아시안게임과 체전에서 아픈 무릎에 압박붕대를 친친 감고 경기에 나서 기어이 정상에 섰다. 도전은 계속된다. 현재 세계랭킹 2위 주정훈은 파리패럴림픽 티켓을 위해 치료를 미룬 채 12월 맨체스터 그랑프리에 나선다.
투혼의 주정훈은 "늘 지금보다 더 힘든 상황, 더 극한의 상황을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셔틀콕 천재' 안세영을 언급했다.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배드민턴 안세영 선수가 보여준 투혼이 내겐 큰 동기부여가 됐다. 부상을 안은 채 장애인아시안게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안세영 선수의 경기영상, '유퀴즈' 방송 영상을 여러 번 돌려봤다. 부상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7연속 패한 상대를 기어이 꺾어내는 모습을 보면서 운동선수로서 정말 멋있다고 느꼈다. 항저우서 금메달을 딴 후 안세영 선수에게 SNS로 '덕분에 금메달을 딸 수 있었다'는 메시지를 보냈더니 답장이 왔다. '감사합니다. 응원할게요. 금메달 축하합니다.' 모든 아픔이 다 날아가는 것같았다. 항저우 금메달의 기쁨을 거기서 다 누렸다"며 활짝 웃었다.
목포=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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