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욱제 사장 "폐암 표적항암제 렉라자, 첫 국산 글로벌 블록버스터 신약 될 것"
2030년까지 1조원 이익창출 기대
유럽종양학회서 임상데이터 발표
리브리반트와 렉라자 병용요법시
타그리소보다 사망 위험률 낮춰
신약개발은 위험한 도박과 같아
"좋은 상품으로 국가에 도움주자"
유일한 회장 창업정신이 도전의 바탕
환자들 경제적 부담없이 치료 받길
제2, 제3의 렉라자 개발에 속도
인재영입·조직개편, ESG 경영 강화
신약개발 실패 많아 … 정부 지원 절실
유한양행의 폐암 표적항암제 ‘렉라자’가 글로벌 블록버스터 신약의 신호탄을 힘차게 쏘아 올렸다. 미국 제약사 존슨앤드존슨의 제약부문 자회사 얀센이 항암제 ‘리브레반트’와 렉라자를 함께 활용한 임상시험에서 우수한 치료 효과가 확인되면서다. 지난달 23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유럽종양학회 연례학술대회(ESMO)에서 조병철 신촌세브란스병원 연세암병원 폐암센터장이 렉라자와 리브리반트의 폐암 1차 치료 효과를 담은 ‘마리포사’ 임상시험 데이터를 발표했다. 조 교수에 따르면 리브리반트와 렉라자 병용요법의 무진행생존기간 중앙값(mPFS)은 23.7개월, 타그리소 단독요법은 16.6개월로 나타났다. 리브리반트와 렉라자 병용요법이 타그리소 단독요법보다 질병이 진행하거나 사망할 위험을 30% 낮춘 것이다
특정 유전자(EGFR) 변이가 있는 폐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이번 임상시험은 렉라자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핵심 연구로 꼽혔다. 유한양행이 2018년 얀센과 맺은 최대 1조4000억원 규모 기술수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임상시험 결과가 확인되면서 렉라자는 ‘국산 1호 글로벌 블록버스터 신약’ 문턱에 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렉라자 탄생 배경과 이번 연구 성과, 국내 바이오산업의 미래 등에 대해 조욱제 유한양행 사장(사진)에게 들어봤다.
▷마리포사 임상연구 성과에 대해 설명해달라.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 이른바 ‘EGFR 돌연변이’ 양성 비소세폐암은 전체 폐암의 약 40%를 차지한다. 그만큼 환자가 많다는 뜻이다. 그동안 이 질환의 독보적인 항암제로 평가받아온 것은 유일하게 ‘3세대 치료제’로 승인받은 아스트라제네카의 ‘타그리소’다. 그런데 이 약은 대부분 국가에서 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환자들이 부담해야 하는 약값만 한 달 평균 600만원이 넘는다.
이번 연구를 통해 렉라자와 리브리반트의 효과가 빼어난 것으로 확인되면서 그동안 타그리소가 지켜온 독점적 지위가 깨지게 됐다. 즉, 경쟁이 생긴 것이다. 제약사 간 경쟁은 약값 인하로 이어진다. 그런 관점에서 이번 연구 성과는 세계 환자들에게 상당히 반가운 소식이 됐을 것이다.”
▷렉라자가 세계 폐암 환자들에게 처방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로 인한 창출 이익도 상당하겠다. 업계에선 연간 10억달러(약 1조3000억원) 이상의 매출 전망도 나온다.
“지금 시점에서 구체적인 액수를 예측하긴 어렵다. 다만 앞으로 항암제를 생산할 존슨앤드존슨의 호아킨 두아토 최고경영자는 연 50억달러(약 6조7000여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기대했다. 이를 토대로 국내 증권사들도 ‘유한양행이 렉라자로 2030년까지 1조원에 가까운 이익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발표했다. 다만 이런 평가에도 경제적 관점보다는 인류가 마주한 가장 위험한 질병인 암을 치료하는 분야에서 국내 첫 글로벌 블록버스터 신약이 탄생할 수 있다는 기대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모든 신약 개발이 그렇겠지만 렉라자 개발 과정도 쉽지 않았다.
“렉라자란 신약 후보물질은 동물실험 등을 진행하는 ‘전임상 단계’에서 처음 들여왔다. 이후 임상시험 1상, 2상, 3상까지 개발하며 10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특히 임상 3상은 3년이란 긴 기간에 비용도 1500억원 이상 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졌고,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도 발발했다. 그만큼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번 연구 결과를 발표한 조병철 연세대 교수를 비롯해 렉라자와 관련된 모든 이들이 많은 노력을 쏟았다. 모든 신약이 그렇겠지만, 렉자라도 긴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지나 어렵게 탄생했다.”
▷신약 개발은 경영적 측면에선 위험한 도박 같기도 하다. 길고 힘든 시간을 버텨올 수 있었던 동력이 궁금하다.
“결론적으로 고(故) 유일한 창업자의 유지를 따른 것이다. 유일한 창업주의 창업정신은 ‘가장 좋은 상품을 만들어 국가와 동포에 도움을 주자’라는 숭고한 뜻이다. 그런 관점에서 인류를 구할 수 있는 약을 만드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경영적인 수익 등도 물론 중요하지만 유한양행이 왜 존재하는지, 또 어떻게 세워졌는지 그것에 더 천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쳐 개발한 렉라자다. 지난 7월 건강보험 급여 등재 전까지 무상 제공한다는 결단을 내렸다. 제약업계에선 전례 없던 결정이었다. 이런 결정에도 유일한 창업자의 유지가 바탕이 됐나.
“그렇다. 지난해 말 폐암 환자 중 3세대 치료제를 복용하고 싶어 하는 환자가 많고 그분들이 국회와 보건복지부, 대통령실 등에 청원을 넣었다는 소식을 듣었다. 폐암 치료제를 개발하는 제약사 대표로서 가슴이 아팠다. 유일한 창업자는 ‘기업은 사회의 소유’라는 유지를 남겼다. 그런 뜻을 이어간다는 관점에서 폐암 항암제를 만드는 회사로써 할 수 있는 사회 환원을 아끼지 않기로 했다.
투병한다는 것만으로도 힘든 폐암 환자들이 치료에 대한 경제적 부담까지 떠안는 것은 막고 싶었다. 환자분들이 비용 부담 없이 치료를 유지하고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제2, 제3의 렉라자 개발을 위해 최근 연구개발 분야 인재 영입과 조직 개편 속도를 높이고 있다.
“세상에 없는 좋은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빼어난 인재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우선 지난 3월 암 치료 임상분야 권위자인 김열홍 고려대 의대 종양혈액내과 교수를 R&D 총괄 사장으로 영입했다. 그리고 R&D 본부 산하의 중앙연구소와 임상의학부문을 사업본부로 격상하고 이들 사업부를 김 사장 직속으로 개편했다.
사업본부를 이끌 임원진에도 변화를 줬다. 오세웅 중앙연구소장 전무, 임효영 임상의학부문 전무, 유재천 약품사업본부장 전무를 각각 부사장으로 승진시켰다. R&BD 본부장(부사장)엔 한미약품에서 글로벌 R&D 혁신 총괄(전무)을 지낸 연구개발 전문가 이영미 박사도 새롭게 영입했다.”
▷해외사업 역량 강화와 사업 다각화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는 평가다.
“그동안 구축한 미국, 베트남, 중국, 호주 등 글로벌 거점을 통해 지역 특성에 부합하는 사업 모델을 운영하고 세계 유수 기업 및 연구소와 협력을 강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사업화전략팀과 글로벌 AM팀을 신설하는 등 일부 조직도 개편했다. 또 프로바이오틱스 사업과 동물의약품 사업, 웨어러블 기기 사업, 마이크로바이옴 사업 등에서도 성과를 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부 역량 강화와 함께 외부 기업에 투자하고 바이오벤처로부터 항암 후보물질을 도입하는 활동도 많이 하고 있다.
“그렇다. 취임 당시부터 신약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 역량 강화를 꾸준히 강조했다. 글로벌 항체 신약 전문기업 에이프릴바이오에 100억원을 추가 출자했다. 국내 바이오벤처사인 제이인츠바이오로부터 4300억원에 비소세포폐암 치료 후보물질도 도입했다. 지난 1년간 진행한 외부 투자는 총 17건이다. 금액도 846억원에 달한다. 신약 개발을 위해선 가능성이 큰 기업과의 발전적인 협력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외형적 성장뿐 아니라 조직 내부를 건실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동감한다. 조직 내부가 건강하지 않으면 지속 가능한 발전은 요원한 일이다. 무엇보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실천에도 혼을 담고 있다. 지난해 초 대표이사 직속의 전담 조직인 ESG 경영실을 신설했다. 또 전사 유관부서들로 구성된 ESG 태스크포스팀(TFT)을 운영하는 등 직접 ESG 경영을 챙기고 있다. 인류의 건강을 책임지는 제약회사의 사명과 의지를 담아 ‘인류와 지구의 건강, 더 나은 100년’이라는 ESG 비전도 수립했다. 이 같은 ESG 활동 정보를 이해관계자와 나누고 소통하기 위해 지난해 7월에는 첫 번째 지속가능경영보고서도 발간했다.”
▷국내 제약산업, 이른바 ‘K바이오’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 지원도 중요하다.
“이번에 ESMO 현장을 찾아보고 놀란 점이 중국 제약사들의 활약이 대단했다는 것이다. 그에 비해 국내 제약사들의 성과는 사실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일본도 세계 10위에 근접한 제약사가 탄생했다. 다행히 우리 정부도 바이오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정했다. 대통령이 직접 관련 회의를 열고, 세제 혜택과 사업화시설 지원 등을 발표했다.
신약 개발은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개발에 실패했을 때 제약사가 받는 타격은 엄청나다. 그렇기에 과감한 도전을 하기가 어렵다. 정부가 그런 점을 잘 고려해 체계적인 지원을 해준다면 반도체와 자동차산업이 대성공을 거둔 것처럼 바이오산업도 뛰어난 인재가 많기에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본다.”
▷유한양행은 올해로 창사 97주년, 2026년이면 100주년을 맞는다. 회사 대표로 100주년을 맞는 각오와 비전은 무엇인가.
“유한양행 대표이사 사장으로서 가진 개인적인 꿈은 ‘빨리 출근해서 일하고 싶은 회사를 만드는 것’이다. 이는 좋은 사람이 많이 모이고 그들이 회사를 잘 이끌어 발전시켜 나가길 바라는 의지의 표현이다.
유한양행이란 조직의 비전과 목표는 100주년을 맞아 세계 50대 기업 반열에 오르는 것이다. 거기에 이르기 위해선 약 4조원 이상의 매출을 거둬야 한다. 올해 매출을 2조원 정도라고 예상하면 결코 쉬운 목표는 아니다. 그렇지만 렉라자를 필두로 한 R&D 성과와 신규 사업 등 잠재 성장성을 감안하면 불가능하지만도 않다. 유한양행의 비전인 ‘그레이트 유한, 글로벌 유한(Great Yuhan, Global Yuhan)’을 이뤄내고 싶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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