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든 떠나고 싶을 때 딱 좋은 ‘종종 여행 떠나는 카페’[김윤정,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책 읽기]
intro
“나는 독서 중의 독서, 구극(究極)의 책 읽기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책 읽기’라고 생각한다.”(김무곤 교수 ‘종이책 읽기를 권함’ 중에서)
가정을 이루었고 두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도, 나는 늘 자신의 쓸모에 대해 걱정했다. 하지만 2011년 겨울. 이 짧은 문장 하나가 내 인생을 극적으로 바꾼다. 어떠한 용도도 없는 가장 순수한 읽기라니! ‘별 의미도 목적도 없이 읽는 행위’ 위에는 시간이 나이테처럼 축적됐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임계점을 지나면서 나는 진정한 풍요로움을 맛볼 수 있었다.
이제 그 이야기를 쓴다. ‘김윤정,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책 읽기’ 그 열세 번째는 곤도 후미에의 ‘종종 여행 떠나는 카페’(황소자리)다.
가출하기 위해서는 현금 확보가 필수다. 카드를 쓰면 기록이 남기 때문이다. 휴대전화도 다른 번호 하나를 준비해 가면 좋겠지만 그건 좀 불가능할 수도 있다. 휴대전화를 놓고 나가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배낭에 필요한 물건들과 모자, 여분의 옷, 에코백을 넣고 집을 나선다. 기차역 화장실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모자를 쓰고, 벗은 옷과 배낭을 에코백에 넣고 나가는 거다. 그러면 CCTV로 추적한다 해도 화장실에 ‘들어가는 나’는 있지만, ‘나오는 나’는 없다. 아주 완벽한 플랜이다.
부부싸움을 하고 가출을 결심했다. 철저하게 계획을 세웠지만, 너무 배고프니까 빨리 밥 달라며 보채는 아들 때문에 가출은 실패했다. 그날 저녁 남편이 맥주와 치킨을 내밀며 화해를 청했다. 맥주를 마시며 사실은 가출 계획을 세웠노라고 고백했다. 남편은 피식 웃더니, “제일 중요한 걸 안 챙겼네. 신발을 갈아 신어야 완벽하지” 하는 거다. 공중화장실에서 환복을 하고 신발을 갈아 신지 않는다면, 나는 기차역에서 잡혀 오는 것으로 가출을 마무리해야 한단다. “역시 대한민국 경찰 대단하네” 하며 박수 쳐주고, 마음속으로는 계획을 수정했다. 배낭 속에 신발을 넣고, 집에서 출발할 때는 가장 허름한 신발을 신고 가야겠다고. 신발은 갈아 신고 버리고 와야지 생각했다.
“혼자만 강기슭에 남겨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살면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고 싶거나, 집을 뛰쳐나가고 싶은 그런 순간이 많았다. 막상 갈 곳은 없었다. 만약에 ‘카페 루즈’가 집 근처에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카페 루즈’는 일본 베스트셀러 작가 곤도 후미에의 소설 ‘종종 여행 떠나는 카페’에 나오는 카페다. 평범한 회사원인 나라 에이코는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똑같은 매일과 예측할 수 없는 미래 때문에 불안해한다. 결혼을 하거나 자기 사업을 하기 위해 퇴사하는 동료들을 보며, 모두들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흘러가고 있는데 자신은 마치 강기슭에 홀로 남겨진 기분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길에 우연히 들어간 ‘카페 루즈’에서 옛 동료였던 구즈이 마도카를 만난다.
그 카페는 마도카가 운영하는 곳인데, 메뉴는 다양하지 않지만 처음 보는 신기한 음식들이 많다. 마도카가 여행지에서 만난 먹거리들을 재현하거나, 식재 등을 공수해 만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에이코는 카페 음식을 먹을 때마다 잠시 잠깐 여행을 떠난 듯한 기분에 휩싸이곤 한다. 오스트리아의 탄산음료인 알름두들러를 마실 때 하늘을 나는 양탄자처럼 의자가 날면서 마음이 여행을 떠난다. 층층이 여러 겹으로 만들어진 헝가리 케이크인 도보스 토르타를 먹으며 삶이란 결국 눈앞의 아픔과 마주하며 상처나 고통을 겹겹이 쌓아가는 일임을 깨닫는다. 에이코의 불안했던 일상은 카페 루즈와 마도카를 만나면서 조금씩 달라지고, ‘변함없는 삶도 행복’이라는 진실을 발견한다.
“햇살이 내려앉은 카페 루즈 창가 자리에 앉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기분이 마냥 좋아진다.”
카페에 앉아 햇볕을 쬐기만 해도 순식간에 기분이 좋아지는 마법의 지팡이 같은 카페가 나에게도 있다. 독일에서 유학하던 중 서로 눈이 맞아 결혼하게 됐다는 부부가 운영하는 ‘카페오늘베를린’이다. 독일에서 공수한 달마이어 커피가 있고, 독일 할머니의 레시피로 구운 쿠헨이라는 가정식 케이크를 판다. 수제 초콜릿은 커피와도 잘 어울려서 입안을 감미롭게 만든다. 북동쪽으로 난 커다란 창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커피를 홀짝거리면, 지지고 볶던 내 일상은 사라지고, 어느새 나는 독일의 시골마을 작은 카페에 앉아 있다. 온통 노란색의 외벽은 진짜 베를린에 있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무작정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이다. ‘오늘 베를린에 온 것 같은’ 느낌과 ‘오! 늘 베를린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은 ‘카페오늘베를린’이라는 이름이 주는 선물이다.
스스로가 불행하다고 느끼지는 않지만, 가끔은 세상으로부터 숨고 싶고, 일상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은 때가 있다. 숨을 고르며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럴 때 나만의 비밀 장소를 갖고 있다면 어떨까? 눈앞에 있는 현실을 잠시 잊고 싶을 때 ‘카페 루즈’나 ‘카페오늘베를린’처럼 ‘종종 여행 떠나는 카페’가 하나쯤 있다면 숨통이 트이고, 마음에 바람이 분다. 잠시 혼자만의 여행을 떠날 수 있다. 변함없는 내 일상도 이만하면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김윤정(서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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