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학상 최고령 수상자 현기영 “제주도에 포박된 인생···앞으로 청년기의 순문학으로 돌아갈 것”
김기택 시집 <낫이라는 칼>과 현기영 장편소설 <제주도우다>가 각각 제31회 대산문학상 시·소설 부문 상을 받았다. 희곡은 이양구의 <당선자 없음>, 번역은 마티아스 아우구스틴과 박경희가 천명관의 <고래>를 독역한 <Der Wal>(고래)이 선정됐다.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은 6일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선정 결과를 발표했다. 심사 대상작은 지난해 8월부터 1년간 단행본으로 출판된 모든 문학작품이다.
82세로 역대 최고령 대산문학상 수상자가 된 소설가 현기영은 “상을 줘야 할 나이에 상을 받는다는 게 쑥스럽기도 하다”며 “현기영에게 준 상이라기보다 ‘제주도 역사를 긍정하겠다. 대한민국 아픈 역사인데 중요한 현대사 부분이다’라는 것을 인정해주는 거 같아서 뿌듯하다”고 수상소감을 말했다.
<제주도우다>는 <순이삼촌>에 이어 제주 4·3 사건을 다룬 3권짜리 장편소설이다. 심사위원단은 <제주도우다>를 두고 “제주의 신화와 설화의 소용돌이를 현재적으로 되살리고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 해방공간에 이르기까지 제주 삶의 실상과 역사를 종횡으로 넘나들면서 4·3의 비극을 넓고 깊게 해부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밝혔다.
현기영은 “제주도의 아름다움과 참혹한 비극을 껴안고 지금까지 왔다. 제주도에 포박된 인생이라 늦도록 제주도에 관한 이야기를 썼다”면서 “앞으로는 청년 시간에 숙고했던 순문학으로 돌아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기택은 수상소감에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이전에 쓴 시와 이후에 쓴 시가 반씩 섞여 있는 시집”이라며 “팬데믹 당시 혼자 있는 시간은 내 몸 안팎에서 일어나는 일을 되새김질하는 시간이었고, 그 외로움이 시 쓰기에 도움이 많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김기택은 “상을 받았을 때 선뜻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며 “새로운 젊은 시인들의 작품이 많이 나와서 상대적으로 독자들이 제 작품을 읽을만한가 의구심이 들기도 했는데 상을 받으며 이제 독자들이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고, 이 상이 지금까지 써온 틀을 벗어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심사위원단은 시집 <낫이라는 칼>에 관해 “오늘의 현실에 맞서 보다 나은 삶을 지향하는 지적 생명의 노력을 진보시키고 있으며 미적 완성의 최고도를 향해 솟아오른 점에서 높이 평가했다”고 했다.
이양구는 “공정이라는 키워드를 주제로 글을 써보라고 해서 쓰게 된 작품”이라며 “공정이라는 기준 자체를 돌아보면 좋겠다는 차원에서 썼다. (글을 쓰면서) 균형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람이든 관계든 국가든 균형을 잘 잡고 살아가야 하는데 모두가 균형을 잃었다는 것에는 동의하는 것 같다. 우리 모두가 세심하게 살펴야 하는 문제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희곡 <당선자 없음>에 대해서는 심사위원단은 “사회성과 작품성의 조화에서 빼어난 균형감을 찾고 있으며, 현실 참여적 희곡 문학의 빼어난 모범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독일에 거주 중이라 이날 간담회에 참석하지 못한 번역가 마티아스 아우구스틴과 박경희는 서면으로 보낸 수상소감에서 “그토록 재미있고 즐겁게 작업을 했는데 이렇게 큰 상까지 받게 되니 너무 감사하다”면서 “원작의 완성도가 높고 설득력 있는 작품이라 번역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말했다. 심사위원단은 “방대한 소설의 양과 긴 길이의 문장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흐트러짐 없는 방식으로 번역해 내었으며, 충실성과 가독성을 두루 갖춘 번역으로 이야기의 힘을 살려냈다”고 높이 평가됐다.
대산문학상은 대산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종합문학상으로, 매년 시·소설·희곡·평론·번역 부문을 시상한다. 희곡과 평론 부문은 격년제로 번갈아 시상하며, 올해는 희곡 부문 수상자를 발표했다.
시상식은 오는 2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리며, 수상자는 각 5000만원씩의 상금과 양화선 조각가의 청동 조각 ‘소나무’ 상패를 받는다.
올해 시·소설·희곡 부문 수상작은 재단의 2024년도 번역지원 공모를 통해 주요 외국어로 번역돼 해외에 소개될 예정이다.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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