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 아닌데도 아슬아슬…두 시간 내내 관객 쥐고 흔든 ‘괴인’

김은형 2023. 11. 6.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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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부터 괴상한 영화 '괴인'은 심상하면서 괴상한 영화다.

첫 연출작인 단편 '해운대 소녀'(2012)로 서울독립영화제 단편 부문 대상을 받으며 데뷔한 뒤 10년 만에 첫 장편을 내놓으며 다시 주목받은 이정홍 감독은 "무관심했거나 혹은 미워했거나 심지어 두려워했던 타인이라 할지라도 긴 시간 애정을 가지고 바라본다면 분명 다르게 보일 것"이라며 "늘 어렵고 가끔은 두렵기까지 한 인간관계를 솔직하게 그려보려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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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개봉
영화 ‘괴인’ 포스터.

포스터부터 괴상한 영화 ‘괴인’은 심상하면서 괴상한 영화다. 별일 일어나지 않는데 긴장감에 손에 땀을 쥐게 되고, 별일이 일어날 것처럼 아슬아슬하다가 갑자기 싱거워지기도 한다. 2시간16분이라는 짧지 않은 러닝타임 동안 대단한 사건도 없이 관객을 쥐락펴락하는 ‘괴인’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등 주요 영화제 상을 휩쓸고 8일 개봉한다.

인테리어 일을 하는 목수 기홍(박기홍)은 피아노학원 리모델링을 하다 승합차 지붕이 찌그러진 걸 알게 되고 범인을 찾아보려고 한다. 밤마다 피아노학원에 몰래 들어와 지내는 누군가 있는 것 같고 그 사람이 뛰어내리며 차 지붕을 망가뜨렸다고 추론한 기홍은 집주인과 함께 범인을 찾아 나선다.

이렇게 보면 마치 밤마다 남의 공간에 몰래 들어가 살아가는 유령 같은 존재를 그리는 공포물이나 범인을 추적하는 스릴러가 떠오르지만 ‘괴인’은 두시간동안 계속 딴짓을 하면서 잊을 만 하면 이 사건을 환기할 뿐이다. 딴짓이란 기홍의 평범한 일상이다. 집주인과 낮술을 마시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임금 문제로 실랑이를 벌이기도 하며 술집에서 합석한 여자에게 플러팅하고, 오랜만에 만난 부모님과는 무뚝뚝한 대화를 나눈다.

영화 ‘괴인’. 영화사 진진 제공

무심한 잡담처럼 이어지는 기홍의 일상은 홍상수 영화를 떠올리게도 한다. ‘괴인’의 온도는 홍상수의 작품들보다 높다. 무심한 듯 흘러가는 타인들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긴장과 파장에 집중한다. 이를테면 기홍이 휴대폰 문자로 받은 피아노학원 원장의 감사 인사와 에둘러 서운함을 표시하는 친구 경준(최경준)에게 썼다 지웠다 하며 보내는 문장들은 타인과의 미묘한 거리, 미세한 호감과 적당한 회피, 소심한 호기와 재빠른 후회 등의 감정들을 여러 각도로 비추면서 관계가 지닌 역동을 흥미롭게 펼쳐놓는다.

현대인의 피상적 관계나 엇나가는 소통 등을 주목하는 독립영화들은 많지만 흔한 주제를 흔치 않은 방식으로 보여주면서 두시간 내내 집중력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건 뛰어난 연출력 때문이다. 첫 연출작인 단편 ‘해운대 소녀’(2012)로 서울독립영화제 단편 부문 대상을 받으며 데뷔한 뒤 10년 만에 첫 장편을 내놓으며 다시 주목받은 이정홍 감독은 “무관심했거나 혹은 미워했거나 심지어 두려워했던 타인이라 할지라도 긴 시간 애정을 가지고 바라본다면 분명 다르게 보일 것”이라며 “늘 어렵고 가끔은 두렵기까지 한 인간관계를 솔직하게 그려보려 했다”고 말했다.

주인공 기홍을 비롯해 ‘괴인’의 모든 출연진은 비전문배우로 박기홍 배우는 이정홍 감독의 오랜 친구이기도 하다. 요리사, 피아니스트 등 출신으로 이 영화에서 처음 연기한 배우들은 이 감독이 추구한 것처럼 “연기로도 구현할 수 없는 부분”을 영화에서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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