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정부 때 시작된 ‘한국판 블프’…‘코리아 세일 페스타’ 판 어떻게 커졌나
무용론에도 9년째 시행…코로나19 이후 흥행 및 내수 진작 기대
(시사저널=조유빈 기자)
'할인의 시즌'이 시작됐다. 과거 연말을 앞둔 11월은 소비가 가장 부진한 시기로 여겨졌지만, 지금의 11월은 유통업계 할인 행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대목'이 됐다. 그 중심에는 일명 '한국판 블랙 프라이데이'로 여겨지는 코리아 세일 페스타(11월11일~30일)가 있다. 기업들은 각종 할인 행사와 이벤트를 내걸고 연말 전 총력 공세에 나서고 있다. 미국의 쇼핑 시즌 '블랙 프라이데이'가 한국에서 활성화된 배경은 뭘까.
'국가쇼핑 주간' 건의로 시작…8년째 진행
코리아 세일 페스타는 애초에 정부가 만든 행사였다. 박근혜 정부 당시 대한상공회의소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 실천을 위한 100대 과제' 중 하나로 모든 유통 기업이 참여하는 '국가쇼핑 주간'을 신설하는 사안을 정부에 건의했다.
미국의 블랙 프라이데이(11월24일), 중국의 광군제(11월11일), 영국의 박싱데이(12월26일) 등 해외에서 기념일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대규모 할인 행사가 내수 진작 효과를 낸다는 것에 착안한 것이다. 특히 블랙 프라이데이의 경우 미국 내에서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온라인을 통해 '블랙 프라이데이 특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특히 2015년은 메르스 사태 이후 내수 진작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해 침체된 소비를 활성화하기 위해 시작한 '코리아 그랜드 세일'은 '유커 특수'를 노려 10월에 진행됐고, 내국인까지 그 범위를 확대한 '코리아 블랙 프라이데이'도 추진됐다. 이후 2016년부터 코리아 세일 페스타로 이름을 변경해 매년 개최해왔다.
그러나 '성공적인 행사'라는 평을 받진 못했다. 코리아 세일 페스타에 소비자 호응이 이어지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할인율'이었다. 정가를 기준으로 진행되는 할인 행사는 기본적인 할인율이 적용되는 온라인 쇼핑을 주로 이용했던 소비자들에게 '큰 폭의 세일'로 여겨지기 어려웠다.
美 블프는 90% 할인이라는데…국내 행사 할인율 등 비판
미국과 다른 한국의 유통 구조도 영향을 미쳤다. 미국의 유통업체들은 창고형 매장에 상품을 쌓아둔다. 연말이 다가왔을 때 소진하지 못한 물량을 비우고 신상품을 들여놓는다. 일명 '악성 재고'를 '떨이 판매'하기 때문에 원가에 가까운 가격이 형성된다. 이로 인해 블랙 프라이데이는 소비자들에게는 파격적인 가격에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기회가 됐고, 유통업계에는 악성 재고를 처리하고 재무 상태를 흑자로 돌릴 수 있는 중대한 시기로 여겨졌다.
그러나 한국 유통 플랫폼은 보통 유통업체가 직접 물품을 사들여 판매하기보다는 '중개'하는 경우가 많아 재고를 털 가능성이 낮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할인 폭이 제한돼 정기 세일과 큰 차이가 없는 할인율로 행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고, 80~90% 할인률을 내건 상품은 수량이 극히 적어 '미끼 상품'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울며 겨자먹기'로 행사에 참여하는 업체들도 많아 정부 주도의 '관제 행사'에 대한 비판도 일었다.
투입되는 예산에 비해 소비 진작 효과가 없다는 유통업계의 평가가 나오면서 코리아 세일 페스타를 둘러싼 존폐 논란이 일기도 했다. 참여 기업 수는 늘었지만 매출은 오히려 줄어드는 등 내수 진작 효과가 줄어드는 것에 대한 비판과 함께, 시장의 요구와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을 내놓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문재인 정부는 정부 주도의 대규모 세일 행사가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해 예산 규모를 축소하고 민간 유통업체가 주도하는 것으로 행사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이후부터는 민간 유통업계가 행사 내용과 방향을 정하고, 정부 부처는 유관기관 협조 등 행사 보조에 집중해오고 있다.
민간 주도로 바뀐 이유는…코로나19 이후 긍정 전망 왜?
한국을 대표하는 할인 행사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 고전해 온 코리아 세일 페스타를 둘러싼 분위기가 반전된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다. 2020년 진행된 코리아 세일 페스타는 코로나19로 긴 동면에 접어들었던 소비 심리를 깨우면서 국내 소비 시장의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소비 시장이 위축되면서 재고를 쌓아둔 업체들이 행사에 참가해 매출 증대 효과를 봤다.
2018년 451곳, 2019년 704곳이었던 코리아 세일 페스타 참여업체는 2020년 1700곳 이상으로 늘어났는데, 특히 제조업체의 수가 크게 증가했다. 카드 결제액은 전년보다 6.3% 늘어났고, 백화점 3사 오프라인 매출은 5.4%, 주요 온라인 쇼핑몰 8곳의 매출은 27% 증가하는 등 선방했다. 이로 인해 코리아 세일 페스타가 실제 소비 증가와 내수 진작을 끌어낼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이 제기된 바 있다.
메르스 이후 시작된 '한국판 블랙 프라이데이'는 코로나19 이후 본격적으로 소비 활성화에 기여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올해도 수행해야 한다. 소비자를 움직일 수 있는 키워드는 여전히 '할인율'이다. 특히 해외직구 등을 통해 합리적 소비에 눈을 뜬 소비자들에게 소구할 수 있는 '가격 경쟁'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한국판 블랙 프라이데이'가 정착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세일 폭 때문"이라며 "내수 진작 효과를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는 국내 제조·유통업체와의 논의, 간접 지원 등을 통해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큰 할인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코리아 세일 페스타는 국가적 내수 활성화 대책과 함께 전국적 소비 분위기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으로 '국가 대표 쇼핑 축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행사 기간을 지난해보다 5일 늘렸다. 업계의 큰 할인 행사나 지자체 축제 등도 이 기간에 진행하게 해 코리아 세일 페스타가 전체 할인 행사를 이끌어가는 플랫폼 역할을 한다는 계획이다. 올해 행사에는 현재 2400여 곳의 기업이 참가 신청을 완료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 행사를 통해 물가 안정 및 소비 진작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아 세일 페스타를 주관하는 코리아 세일 페스타 추진위원회는 "소비자와 기업, 정부와 지자체 모두 어려운 경기를 극복하고, 소비 진작과 경제 활력 제고를 위해 뜻을 모으는 행사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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