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소만 있다고?…대둔산부터 선샤인랜드까지 다채로운 논산 여행
명재고택, 돈암서원에서 배움의 여행도
탑정호-대둔산 가을호수-단풍 멋진 조화
[헤럴드경제=함영훈 선임기자]“웅장한 황산벌에 연무대 높이 섰고 ♬ (중략) 대둔산 굳은 기개 수파람이 어디냐..오오 ♪ 이 나라의 초석 육군훈련소~!”
최백호의 ‘입영전야’, 김민우의 ‘입영열차 안에서’,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 이승기의 ‘아임 고잉 투더 밀리터리’ 노래로 환송을 받은 뒤 대둔산·황산벌 동쪽 연무대 입소 후엔 “논산훈련소가(歌) 200번을 부르고 나면 논산을 떠난다”고 훈련소 조교들은 말한다.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대체로 논산과 인연을 맺지만, 사실 논산을 잘 모른다. 훈련 중엔 평생 이곳을 돌아보지도 않으리라 다짐했다가 자대 배치 열차를 탈 때엔 왜 그리 떠나기 싫고, 군대 생활 내내 뭐가 그리 그리웠던지….
논산 여행은 입영 때 알지 못했던 그곳의 진면목을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논산시 동쪽엔 백제와 신라가 진검승부를 펼친 황산벌이, 서쪽엔 젓갈로 유명한 강경포구를 만날 수 있다.
북쪽 노성면에 있는 명재고택과 중심부에 위치한 돈암서원에선 종가와 서원 문화를 체험하며 인문학 여행을 즐길 수 있다. 동남쪽엔 단풍으로 절경을 이룬 대둔산이, 남서쪽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촬영지인 선샤인랜드와 연무대 훈련소가 여행객들을 기다린다.
논산 선샤인랜드는 개화기 촬영 세트장인 선샤인스튜디오, 한국전쟁 직후의 풍경을 재현한 1950스튜디오, 실내에서 사격과 가상현실(VR) 체험을 즐기며 훈련소 추억을 자녀와 공유하는 밀리터리체험관 등으로 구성된다.
총면적 약 2만㎡에 이르는 선샤인스튜디오는 1900년대 초반 한성(서울)을 재현했다. 한성전기 사옥을 비롯한 근대 서양식 건물과 기와집, 초가집, 일본식 가옥에 1899년 운행을 시작한 전차까지 어우러져 120여년전 모습을 그대로 구현했다.
이곳에서 tvN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대부분을 촬영했다. 드라마가 인기를 끌자 논산 선샤인랜드 또한 한류 관광지로 떠올랐다. 국내 최초 민관합작 드라마 테마파크이다. 극 중 ‘글로리 호텔’로 들어가면 카페 ‘가배정’은 지금도 영업 중이고, 드라마 소품 전시관이 곁에 있다. 디즈니 드라마 세계 1위를 기록했던 ‘파친코’도 이곳에서 촬영했다.
온빛자연휴양림도 새로운 한류 명소다. 지난해 종영한 SBS드라마 ‘그해 우리는’이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으며 촬영지인 이곳도 지구촌에 이름을 알렸다.
논산시청 서쪽 이 도시의 중심부의 산소통인 탑정호에는 길이 600m 출렁다리가 놓여, 호수 위를 걷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논산에 속한 강경읍은 장항과 부여 사이 금강변에 위치해 과거 물류 도시로 번성했다. 이곳에서 출하되는 젓갈은 지금도 전국 최고를 자랑하며, 젓갈정식은 논산 여행의 필수 먹거리이다.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옛 한일은행 강경지점과 강경중앙초등학교 강당, 옛 강경노동조합 건물 등 강경근대역사거리에서 시간여행도 할 수 있다.
한바탕 놀거리를 즐긴 뒤 논산 인문학 여행에 나선다. 벼슬을 사양하고 후대 교육에만 힘쓴 조선의 대학자 윤증(1629~1712)의 집, 명재고택은 안채와 광채(곳간채), 사랑채, 사당, 인공호수로 구성된다.
오른쪽에 대청, 왼쪽에 누마루, 가운데 방이 있는 사랑채에는 창호가 많은데, ‘경치를 빌린다’는 차경(借景)의 매력을 엿볼 수 있다. 곳곳에 있는 창이 액자가 돼 시간과 계절에 따라 다른 풍경화를 담아낸다. 자연 실경을 작품처럼 빌려 감상하는 한옥의 ‘액자 미학’이다.
큰 사랑과 작은 사랑을 연결하는 안고지기는 미닫이와 여닫이 기능을 합친 문이다. 여닫이로 모든 문을 개방하면 공간 확장이 가능해, 많은 사람이 모일 때엔 헤드쿼터 파빌리온이 된다.
문이 닫힌 누마루는 아늑한 방이지만, 문을 여는 순간 정자처럼 변신한다. 주변 풍광을 한눈에 조망하는 명당이다. 누마루 아래 금강산을 형상화한 석가산(石假山)을 아담하게 조성해 풍류를 더했다.
안채 옆 광채(창고가 딸린 집채)에도 선조의 지혜가 숨어 있다. 구조를 보면 나란하지 않고 북쪽으로 갈수록 조금씩 좁아지는 형태다. 지붕은 안채가 광채보다 높다. 계절의 변화에 따른 일조량과 바람의 이동을 고려한 배치다. 덕분에 광채 북쪽 끝 창고는 여름에도 시원해 냉장고 역할을 했고, 주거 공간인 안채는 볕을 충분히 받는다.
사랑채 돌계단 옆 댓돌에 일영표준(日影標準)이라는 새김 글자가 눈에 띈다. 윤증의 9대손 윤하중이 해시계를 독자적으로 개발했고, 해시계의 영점 위치가 일영표준이다.
장독대와 수백년을 함께한 느티나무를 비롯해 은행나무, 배롱나무가 우직하게 자리를 지킨다. 여름에는 배롱나무꽃이 화사하고, 가을에는 은행나무 황금빛이 안구를 정화한다.
사랑채와 안채 등에서 한옥 스테이를 한다. 문화재청 후원 ‘고택·종갓집 활용 사업’으로 진행하는 1박 2일 프로그램에선 고택 스테이 동안, 종손과 대화, 종가 음식 만들기, 고택 작은 음악회 등을 체험할 수 있다.
한국문화재재단의 문화유산 방문캠페인 중 ‘백제고도의 길’에 포함된 돈암서원은 명재고택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이다. 조선 중기 정치가이자 예학 사상가 사계 김장생(1548~1631)을 기리며 건립했다.
현종 때 사액서원(조선시대 왕으로부터 서원명 현판과 노비·서적 등을 받은 서원)이 됐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한국의 서원’으로 등재된 9곳 중 하나다.
강학 공간인 양성당을 중심으로 정의재(서재)와 거경재(동재), 사당인 숭례사 등이 자리한다. 응도당(보물)은 조선 중기 이후 서원 강당 가운데 규모가 제법 크다.
김장생은 “모든 인간이 어질고 바른 마음으로 서로를 도와가며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개개인의 행동 방식을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질서가 필요하다”면서 이를 ‘예(禮)’라 했다. 돈암서원이 우리나라 예학의 산실이 된 이유이다.
연산역은 근대여행 콘텐츠이다. 작은 역이지만 기차문화체험관, 급수탑(국가등록문화재) 같은 신구 볼거리를 모두 갖췄다. 퇴역한 기차 4량을 활용한 기차문화체험관엔 기차문화전시관, 어린이도서관, 어린이놀이공간, 쉼터 등이 있다.
연산역 급수탑은 1911년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었다. 현존하는 급수탑 중 가장 오래됐으며, 화강석으로 쌓은 몸체가 이채롭다.
지난해 개관한 연산문화창고가 연산역 인근에 있다. 옛 곡물 창고가 복합 문화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5개 건물을 담쟁이 예술학교, 커뮤니티 홀, 카페 등으로 운영한다. 시기 별로 다양한 전시와 공연,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한국관광공사 월별 ‘가볼만 한 곳’ 사전탐방에 참여한 김수진 작가는 대한민국 구석구석 비짓코리아에 논산을 소개했다. 1박2일 여행코스로 ‘첫날 : 연산역→연산문화창고→돈암서원→탑정호출렁다리/ 둘째날 : 명재고택→종학당→선샤인랜드’를 추천했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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