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서 열흘 새 5명·1년에 43명…여성이라 살해됐다
호주 정부 '성평등 증진' 최우선 과제 삼고 남성 교육에 30억원 투입
(서울=뉴스1) 권진영 기자 = 호주에서 지난 열흘 사이, 이틀에 한 명꼴로 여성이 남성 파트너 및 남성 지인에 의해 살해됐다.
4일(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피해자 5명 중 2명은 이전 교제상대 및 남편 등 친밀한 남성 파트너에 의해 목숨을 잃은 것으로 밝혀졌다. 전형적인 페미사이드 범죄의 유형이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州) 경찰에 따르면 21세 수구 코치는 시드니의 한 사립대학교 체육관 화장실에서 머리에 부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이후 그의 이전 파트너였던 24세 남성도 절벽 아래서 발견됐는데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주의 65세 여성은 자택 부엌에서 수차례 자상을 입은 채로 발견됐다. 체포된 그의 남편(70)은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빅토리아주 경찰은 캉가루 플랫에서 치명적 부상을 입고 숨진 46세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44세 남성을 기소했다.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에서는 34세 여성 변호사가 사망했으며 그가 숨진 방에서는 42세 남성이 자해로 의심되는 부상을 입은 채 발견됐다. 남성은 이후 살인 혐의로 기소됐다.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 경찰은 주택 화재 사건 이후 현장에서 38세 여성의 시신을 수습하고 용의자로 추정되는 48세 남성을 살해 혐의로 기소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고의적으로 여성을 살해하는 사건을 '페미사이드'로 정의한다. 주로 과거 교제 상대를 포함해 친밀한 파트너에 의한 살해와 친밀 관계가 없는 사람에 의한 살해 두 가지로 분류되는데, 대부분의 페미사이드가 파트너 및 과거 파트너에 의해 자행된다.
CNN에 따르면 호주에서 폭력으로 사망하는 여성의 수는 지난 2012년 집계가 시작된 이래 매년 최소 43명에서 많을 때는 84명까지 뛰었다.
호주 보건복지연구소(AIHW)에 따르면 지난 12개월 동안 파트너에 의한 가정 폭력을 신고한 호주 여성의 비율은 2016년부터 2021~2022년 사이 1.7%에서 0.9%로 감소했다.
실제 가정폭력 건수가 줄어든 것인지, 폭력 자체를 문제로 인식하지 못해 신고조차 못한 것인지는 더 세부적인 연구와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지난 2021년 실시된 여성 폭력에 대한 전국 커뮤니티 태도 조사(NCAS)에 따르면 응답자의 23%는 가정 폭력이 '일상적인 스트레스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호주 내 여성에 대한 폭력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이는 91%에 달했다.
호주 정부도 여성에 대한 폭력 및 살해를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여성과 아동에 대한 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국가 계획(2022~2032)'를 발표했다. 지난 8월 발표된 1차 실행 계획은 10개 항목 중 '성평등 증진'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유엔에 따르면 호주는 현대적이고 부유한 국가다. 하지만 동시에 여전히 여성이 남성보다 무급 가사 노동을 더 많이 하고 평생 버는 수입은 더 적어 문화적으로 성차별이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사회를 비롯해 권력을 행사하는 직책은 여전히 남성이 장악하고 있으며 국회의원 중 여성의 비율은 지난 2022년 1월 기준으로 39% 수준에 그친다. 역대 여성 총리는 줄리아 길라드(2010~2013) 단 한 명뿐이다.
길라드 전 총리가 의장을 맡고 있는 글로벌 여성 리더십 연구소가 지난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호주 남성들이 온라인상의 여성 혐오 발언을 전 세계 평균보다 더 쉽게 수용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시민단체 '더 라이트 저니'의 활동가 앤드루 라인스는 욕설·막말 댓글부터 하드코어의 포르노까지 아이들이 휴대전화에서 접하는 부정적 메시지를 차단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호주 정부는 1차 실행 계획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남성과 소년을 대상으로 퍼지는 유해 메시지에 대응하기 위해 350만 호주 달러(약 30억 원)를 투입하기로 했다. 이른바 건강한 남성성 프로젝트 3개년 실험이다.
호주 당국은 이 같은 교육 정책과 더불어 가정 폭력에 대한 대응도 강화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페미사이드 관련 통계조차 없는 실정이다.
realkw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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