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눈치에 백기 들었다... 한달만에 말 바꾼 금융위원장
재개 여부는 이후 경제 상황 고려해 결정
‘공매도=주가 하락’ 명확한 관련성 없는데도 밀어붙인 금융위
“개인 투자자들이 요청하는 대로 (공매도 제도 개선을) 다 해 드렸다” (10월 11일)
“내년 상반기까지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11월 5일)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한 달도 채 안 돼 말을 바꿨다.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기관 투자자가 공매도 투자하는 데 개인 투자자보다 더 유리하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고 했던 김 위원장이었다. 그랬던 그가 ‘공매도 전면 금지’라는 초강수를 뒀다. 금지 기한은 공교롭게도 내년 총선(4월) 이후인 6월까지다.
이 때문에 금융위가 국회의 압박에 못 이겨 입장을 바꾼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공매도와 주가 하락간 명확한 인과관계가 없다는 연구 역시 여기에 무게를 싣는다. 김 위원장은 이번에 공매도 전면 금지를 결정하면서 주가 변동과 불법 공매도의 상관관계를 “분석하지 않았다”고 했다. ‘불법 공매도가 주가를 떨어뜨릴 것이다’라는 예측이 이번 금지의 배경이다.
◇ ‘공매도=주가 하락’ 근거 없는데 일단 금지한 금융위
공매도란 말 그대로 없는 것을 판다는 뜻으로, 가격이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는 주식 등을 타인에게 빌려서 팔았다가 주가가 떨어지면 저렴한 가격에 사서 갚아 차익을 내는 투자 기법이다. 공매도는 반드시 매수(갚기 위해 다시 사들임)를 동반하기 때문에 주가 영향은 크지 않다는 것이 그동안 금융당국의 입장이었다.
실제 지난해 6월 한국거래소는 금융위에 ‘국내외 증시 현황 및 공매도 동향’을 제출하면서 “공매도는 주가에 유의미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보고서에서 한국거래소는 ▲2020년 1월~3월 13일(하락기) ▲2021년 5월 3일~지수 최고치 경신기(상승기) ▲지수 최고치 경신기~지수 급락 직전(하락기) ▲지수 급락 직전~2022년 6월 22일(하락기) 등 네 구간으로 기간을 나누고 공매도 거래 대금과 주가 지수의 상관관계를 산출했다. 그 결과 코스피 시장의 상관계수는 차례로 –0.39, -0.44, -0.19, -0.25였다.
상관계수가 1에 가까울수록 공매도 거래 대금과 주가 지수가 정의 상관관계, 마이너스(-) 1에 가까울수록 두 수치가 역의 상관관계를 띠는데 한국거래소의 분석 결과 상승기와 하락기에 상관없이 모두 마이너스였다. 개인 투자자의 주장처럼 공매도가 주가 하락에 영향을 준다면 첫 번째와 세 번째 구간에선 –1에, 두 번째와 네 번째 구간에선 1에 가까워야 하나 이같은 결과는 나오지 않은 것이다.
자본시장연구원(자본연)의 분석도 이와 비슷하다. 자본연은 올해 발간한 ‘공매도 규제효과 분석’에서 코로나19로 공매도를 전면 금지했을 당시의 실증분석 결과 가격 효율성(현재 가격기 적정 수준에 얼마나 가까운지를 나타낸 지표)이 저하되고 시장 거래를 위축시킨다고 발표했다.
김준석·황세운 자본연 선임연구위원은 “공매도의 기능을 부인하긴 어려우며 전면 금지와 같은 극단적인 접근 방식보다 그 기능은 유지하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거래당국과 학계에서 ‘공매도와 주가 하락은 연관이 없다’는 보고를 꾸준히 했기 때문에 금융위도 이같은 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김 위원장은 5일 공매도 관련 제도 개선 브리핑에서 “(공매도와 주가의 연관성이 없다는 지적은) 저희도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 그럼에도 전면 금지, 정치화된 공매도
금융위는 그동안 ‘개인과 외국인·기관의 규제 차이를 해소했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실제 지난 2년 동안 금융위는 제도를 손질해 왔다. 빌린 주식을 갚아야 하는 공매도 상환 기간과 관련해 개인은 기존 60일이었는데, 이를 90일로 늘렸다. 120일인 기관·외국인과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서다. 강제 청산의 기준이 되는 담보 비율 역시 기관(105%)에 맞춰 개인의 담보비율은 140%에서 120%로 인하됐다.
이와 관련해 김 위원장은 지난달 11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개인 투자자의 담보는 현금인데 기관은 주식”이라며 “(기관은) 헤어컷(유가증권 등의 가격 할인)으로 담보(가치)를 인정하기 때문에 실제 담보 비율은 140%를 넘어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공매도는 개인이 불리하다’는 건 개인 투자자들의 오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4·10총선을 5개월 앞두고 금융위는 입장을 선회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송언석 국민의힘 간사가 같은 당 원내 대변인인 장동혁 의원에게 “김포(메가 서울) 다음 공매도로 포커싱하려고 한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지 2일 만이다.
김 위원장은 공매도 전면 금지의 이유에 대해 “불법적인 (무차입 공매도) 거래가 많이 된다면 거래가 왜곡되는 건 부인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은 지난달에서야 최초로 글로벌 투자은행(IB)의 관행적 불법 공매도를 적발했다. 빌리고 매도 주문을 내는 차입 공매도와 달리, 빌리지 않은 무차입 공매도는 현행 규정상 불법이다. 지난달 불법 공매도가 적발된 곳은 BNP파리바와 HSBC인데 차례로 400억원, 160억원 상당의 무차입 공매도를 행했다. 다만 관련된 종목이 수백개에 달해 개별 종목의 주가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게 금융감독원의 설명이다.
총선으로 증시의 주요 제도가 휘둘리면서 해외에선 한국 시장의 신뢰 저하를 우려하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5일(현지 시각) 블룸버그는 “공매도 전면 금지가 (한국의) 신흥국에서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더 위태롭게 할 것”이라며 “개인 투자자가 선호하는 종목에 거품이 형성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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