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 곰’ 오삼이의 빈자리…‘지리산 활동가’는 공존을 묻는다
윤주옥 반달곰친구들 이사 책 출간
“공존은 곰들의 것을 돌려주는 것”
지리산 반달가슴곰 오삼이(KM-53)는 왜 모험을 떠났을까. ‘방랑 곰’ 오삼이는 여느 반달곰과는 조금 달랐다. 지리산에서 태어났지만 2살 반이 되자 인간이 정해준 서식지를 벗어나 자신만의 삶터를 개척했다. 합천 가야산, 김천 수도산, 영동 민주지산을 거쳐 충북 옥천, 보은까지 백두대간을 누볐다. 그런 오삼이가 지난 6월 위치추적 장치 배터리 교환을 위한 포획 중 사망했다. 당시 환경부 국립공원공단은 오삼이가 마취 후 계곡으로 이동하던 중에 힘이 빠지면서 계곡 하부로 쓰러져 익사한 것으로 추정했다.
갑작스러운 오삼이의 죽음에 지리산 반달곰 보호활동과 오삼이의 삶을 지지하던 ‘지리산 활동가’ 윤주옥 반달곰친구들 상임이사는 아무런 말도 꺼낼 수 없었다. 그리고 지난 10월 윤 이사는 화가인 딸 결 작가와 함께 오삼이의 삶과 자취를 돌아보는 책을 출간했다. 10월27일 전화로 만난 윤 이사는 “책이 나오자 다시 오삼이와 연결된 느낌”이라고 했다.
오삼이가 사라진 지금 지리산에는 여전히 80~90마리의 반달가슴곰이 살고 있다. 내년이면 2004년 시작된 정부의 지리산 곰 복원사업이 20주년을 맞는다.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반달곰과 어울려 살아야 할까. 지난 십여 년간 지리산에서 반달곰을 위해 활동해 온 윤 이사에게 책 출간 과정과 반달곰과의 공존에 관해 물었다.
-오삼이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4개월이 됐네요. 책은 언제부터 구상하신 거예요?
“사실 책은 오삼이가 살아있을 당시에 쓰였어요. 당시 제가 한 매체에 오삼이에 대해 쓴 글을 보고 출간 제의가 들어왔어요. 현장 활동가로서 책을 낸다는 게 어색했지만, 주변 권유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오삼이가 사고를 당할 즈음엔 책이 거의 완성된 상태였지만, 그 소식을 듣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같이 책을 쓴 딸도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고 했죠.”
윤 이사는 오삼이의 생애를 다시 한 번 뒤돌아볼 시간이 필요했고, 출간을 잠시 미뤘다. 다시 출간을 결심하게 된 것은 윤 이사에게 출간을 권유하고 끝까지 책을 만들자고 독려해준 활동가 후배이자 독립출판사 ‘니은기역’ 편집자 문현경씨 덕이었다. 책 ‘오삼으로부터’는 독특한 구성으로 만들어졌다. 앞에서 시작하는 1부는 윤 이사가 오삼이에게 보내는 편지가 담겼고, 책을 뒤집으면 결 작가가 그린 그림책 2부가 시작된다.
-책 구성이 독특해요. 따님과의 작업이란 점도 눈에 띄어요.
“딸 결은 무대미술을 전공한 작가예요. 제가 반달가슴곰 오삼이에 대한 책을 쓰겠다고 하면서 그림을 부탁했더니 흔쾌히 참여해줬어요. 결은 어려서부터 제 활동을 지켜봐 온 동료 활동가이기도 해요. 달리 설명할 것도 없이 책의 취지를 잘 이해했어요. 처음엔 결의 그림을 삽화로 넣으려고 했지만, 작품이 좋아서 1부, 2부로 구성하게 됐습니다.”
책은 윤 이사가 쓴 편지 형식을 띠고 있지만, 반달가슴곰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독자들에게 친절하고 다정한 어조로 답을 주기도 한다. 청소년 독자 대상으로 쓴 책이지만 ‘왜 반달곰을 복원하게 됐을까’, ‘반달곰이 사람을 해치면 어떡하지’, ‘반달곰은 어쩌다가 멸종위기종이 되었을까’ 등의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은 성인 독자에게도 훌륭한 반달곰 입문서가 될 것 같다.
전문적이면서 친절한 답변들은 윤 이사가 그간 지리산 권역에서 벌여온 반달곰 보호 활동 경험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그는 2007년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지리산 사람들’ 활동을 시작으로 이듬해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구례에 정착했다. 지리산 케이블카 반대운동을 하며 올무, 덫 등 불법사냥 도구 수거 활동을 벌였다. 2020년부터는 지리산 권역 주민들과 함께 반달곰 마을학교, 곰깸축제 등을 진행하고 있다.
-반달곰 보호활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신 건가요.
“(최근 구례군이 다시 지리산 케이블카 사업을 신청했지만) 지난 2012년 케이블카 반대운동이 일단락 지어진 적이 있어요. 그때 이제 뭘 해야 할까 하다가 주민들을 만나러 다녔어요. ‘뭐든 반대하는 사람’으로 찍혀 쉽진 않았죠. 그런데 만나다 보니 모두 한 마음이에요. 지리산에 고맙다. 지리산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의 애틋함이 통했죠. 그리고 반달곰이 제 마음에 확 들어왔어요. 반달곰이 접점이 되면 산도, 사람도 보호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책에 오삼이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고 하셨어요. 직접 보니 어떠셨나요?
“2017년 오삼이가 지리산 자연적응훈련장으로 ‘회수’된 적이 있어요. 등산객 눈에 띄어서 잡혀 온 거죠. 다시 방사할지 말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피켓을 들고 나갔죠. ‘곰이 살고 싶은데 가서 살도록 해라.’ 그때 철창 속 오삼이의 눈을 보니 ‘내가 왜 여기 있지’ 하는 것 같은 거예요. 그때 생각했죠. 야생동물에게는 자연에 살 권리가 있고, 우린 그걸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요.”
-그런 곰이 안타까운 사고로 목숨을 잃었어요. 위치추적 장치의 배터리 교환 작업 때문에 포획이 불가피했던 거로 알아요. 이런 과정은 꼭 필요했을까요.
“매년 국회나 언론은 반달곰을 왜 더 많이 추적하지 않느냐고 해요. 곰의 위치를 모르면 불안한 거죠. 오삼이의 경우 24시간을 추적했어요. 위치추적 업무를 맡고 있는 국립공원공단 직원들은 부담이 엄청났을 거예요. 지리산에 살고 있는 반달곰은 야생동물이에요. 위치를 추적하는 게 부자연스러운 건데, 인간의 입장에서는 계속 관리를 하고 싶은 거죠. 정책에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봐요.”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요.
“우리는 야생동물을 통제할 수도 없고, 그러려고 해서도 안 돼요. 내년이면 곰 복원사업 20주년이 됩니다. 이제 인간들이 잘해야 할 때예요. 그동안 인간의 입장에서 공존을 생각해왔다면, 이제는 야생동물이 어떻게 평화롭게 지낼 수 있을까 더 고민해야죠. 공존이란 건 인간이 많이 포기했을 때 가능한 거고, 그 포기는 인간이 뭔가를 잃는 게 아니라 원래 곰들의 것이었던 것을 돌려주는 거예요.”
그는 공존이란 인간이 야생동식물과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했다. 숲에 갈 때 사람은 정해진 산책로로 다녀야 하고, 등산로가 아닌 곳에서 곰을 만나더라도 그건 곰의 잘못이 아니란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인식의 확산과 교육, 홍보를 위해서는 그동안 반달곰 복원 사업을 주도해온 정부(환경부)와 국립공원공단의 노력이 중요하다고 했다.
-오삼이에게 꼭 전하고 싶었던 뜻이 있으신가요.
“오삼이는 저에게 야생동물과의 공존을 알려줬어요. 그리고 저는 네 삶을 응원한다는 걸 늘 알려주고 싶었어요. 비록 오삼이는 세상을 떠났지만, 어쩌면 지리산에 남겨졌을 오삼이의 새끼가 잘살아갈 수 있도록 저희의 활동은 계속될 거예요. 반달곰들이 부디 한반도의 숲을 오가며 잘 살기를, 인간과는 만나지 않기를 기도해야죠.”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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