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폼 5000벌 수집한 글로벌 축구 스토리텔러, “어린 시절 축구장에서 기절한 덕분”

김세훈 기자 2023. 11. 6.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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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고 마라도나, 리오넬 메시, 보비 찰튼, 루이스 피구, 펠레, 지네딘 지단(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와 만난 마르셀로 오르다스. 오르다스 인스타그램



17세 아르헨티나 소년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16강전을 관전했다. 아르헨티나-브라질전이었다. 후반 36분 클라우디오 카니히아가 1-0으로 앞서는 골을 넣었다.

“경기장은 조용해졌고 시간은 멈춘 것 같다. 나는 ‘슛, 슛’을 외쳤지만 마라도나는 드리블만 했다. 그 후 그물이 출렁였고 나에게 달려오는 아버지가 보였다.”

득점 장면을 본 소년은 바로 기절했다.

그가 눈을 뜬 것은 경기장 응급실. 온통 하얀 방에 하얀 옷을 입은 녹색 눈을 가진 여성이 보였다.

“나는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시계를 봤다. 풀타임이 지난 뒤 9분 후였다. 여성을 향해 말했다. ‘아르헨티나가 이겼다’고 말해줘요.”

간호사는 말했다. “그래. 아르헨티나가 이겼어.”

소년은 펑펑 울었다. 디에고 마라도나 등 선수들이 응급실을 찾았다. 결승골을 넣은 카니히아가 말했다.

“너는 우주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야.”

그게 소년이 이후 33년 동안 유니폼을, 아니 유니폼 속에 감춰진 스토리를 모으는 계기가 됐다. 50세가 된 마르셀로 오르다스는 지난 5일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그 순간은 나에게 창세기였다”며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모은 유니폼, 아닌 “갑옷”은 5000여벌. 현재 스페인 마드리드, 영국 런던에서 전시 중이다.

마르셀로 오르다스가 자신이 모은 유니폼의 사연을 소개하고 있다. 방송 캡쳐



그가 가장 좋아하는 유니폼은 1986년 멕시코월드컵 8강전에서 잉글랜드와 맞붙기 전 즉흥적으로 만든 골키퍼 셔츠다. 그는 “멕시코 시티에서 급하게 산 일반적인 르꼬끄 셔츠”라며 “앞면에 오래된 AFA 로고가 꿰매어져 있고 뒷면에는 숫자가 다림질됐다. 가위로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고 말했다. 당시 아르헨티나 카를로스 빌라르도 감독이 통기성이 좋은 셔츠를 고집해 직원들이 급조한 셔츠였다. 마라도나가 그걸 보고 말했다.

“이것으로 영국인을 죽일 것이다.”

마라도나는 신의 손 논란을 일으키며 골골을 넣었고 아르헨티나가 2-1로 이겼다. 셔츠는 그렇게 상징이 됐다.

초기에는 선수들이 유니폼을 공짜로 줬지만, 요즘은 목돈이 들어간다. 오르디스가 가장 많은 돈을 주고 구입한 유니폼은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이탈리아 간판 골잡이 주세페 메아차가 입은 유니폼으로 10만2000유로(약 1억4300만원)다. 그는 에우제비오, 게르트 뮐러, 지코, 플라티니, 지잔, 휴고 산체스, 호날두 유니폼도 갖고 있다.

수집을 아예 포기할까 고민하게 만든 셔츠도 있다. 1986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마라도나가 입은 유니폼이다. 그걸 소유한 사람은 독일 축구 영웅 로타어 마테우스였다. 수차례 구입을 청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노”였다. 그러다가 오르다스의 열정을 TV로 접한 마테우스가 소중한 유니폼을 건넸다. 마테우스는 당시 “오르다스보다 그것을 더 잘 돌보고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기게 해줄 사람이 없다”며 “돈이 전부는 아니지 않나”라고 말했다.

1986년 월드컵 8강전에서 2골을 몰아친 마라도나 유니폼도 갖고 싶었다. 그건 2022년 4월 경매에서 무려 710만 파운드(약 116억원)에 낙찰됐다. 오르다스가 준비한 돈보다 두 배가 많았다. 오르다스는 “1986년 월드컵 장비담당자 아들로부터 당시 8강전 전반 마라도나가 입은 셔츠를 전달받았다”며 “골을 넣은 셔츠는 아니지만 정말 신났다”고 회고했다. 오르다스가 가장 갖고 싶은 유니폼은 무엇일까. 리오넬 메시가 2022년 카타르월드컵 결승전에서 입은 유니폼이다. 그건 지금 스위스 취리히에 위치한 국제축구연맹(FIFA) 세계 축구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오르다스는 “나는 이 일을 취미로 생각하지 않고 연구, 조사로 받아들였다”며 “나는 그들의 셔츠와 스토리가 널리 공유되기를 원할 뿐”이라고 말했다.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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