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 ‘연인’ 될듯말듯… 뫼비우스 띠같은 조선의 사랑[안진용기자의 그여자 그남자]
“서방님…” 깜짝 고백한 여자
마음확인후 ‘직진’하는 남자
엇갈리고 재회… 애끓는 운명
1막 이어 2막서도 굴곡진 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모티브
시청자들은 ‘해피엔딩’ 염원
그 남자, 분명 양반인데 명분보다 실리가 중하다. 체통 차리지도 않고, 인연에 얽매이는 것도 싫다. 그래서 비혼주의자였던 그런 그의 눈에 그네를 타는 한 여인이 들어왔다. 그날, 그 남자 장현(남궁민 분·왼쪽 사진)은 진귀한 소리를 듣는다. “들리느냐 이 소리, 꽃 소리.” 사랑에 빠진 남자만 들을 수 있는 소리다.
그 여자, 사대부의 딸이다. 하지만 당돌하고 당차다. 마음에 한 사내를 품고 있다. 그런데 그 사내는 요지부동이고, 웬 놈(?)이 눈앞에 서성댄다. 장현이다. 처음에는 눈에 거슬렸는데, 어느덧 눈에 밟힌다. 애써 외면하던 장현이 위험에 빠지자 그 여자, 길채(안은진 분·오른쪽)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친다. “서방님, 피하세요!” 깜짝 고백이다.
기침과 가난, 그리고 사랑은 감출 수 없다 했던가. 그래서 이렇듯 불현듯 드러난다. “방금 전에 나보고 서방님이라고 했소?” 길채의 마음을 직접 확인한 장현의 마음은 ‘직진’이다. 하지만 그들이 걷는 길은 직선이 아니다. 굽이굽이 굴곡졌다. 게다가 사랑의 종착지는 좀처럼 닿을 수 없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 같다.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MBC 주말 사극 ‘연인’. 국운이 백척간두지만 두 사람에게는 서로만 보인다. 시청자들 관심사도 온통 둘의 사랑이 어떤 결실을 맺을지 쏠려 있다. 그러니, 이 작품의 제목이 뻔하지만, ‘연인’일 수밖에.
엄혹한 시대가 둘을 가만히 두지 않지만 장현은 “내 이 달빛에 대고 맹세하지. 그대가 어디에 있든 내 반드시 그대 만나러 가리다”라고 길채를 안심시킨다. 먼 길을 떠나기 전, 둘은 꽃신을 두고 재회를 약속한다. 꽃신을 가지고 돌아오겠다는 장현은 꽃신을 가져오면 “오직 나만을 위한 낭자의 마음”을 달라고 말한다.
하지만 기다림은 길었다. 믿을 만한 사람은 “장현이 죽었다”는 거짓 소식을 길채에게 건넸다. 장현의 환영을 보던 길채는 되뇐다. “이젠 오지 마셔요. 난 이승에서 산해진미도 맛보고 조선팔도에서 천수를 누리다 갈 생각이니. 우린 아주아주 먼 뒷날에 다시 만납시다.” 결국 돌아온 장현은 다른 남자와 혼례를 앞둔 길채와 마주한다. 길채는 함께 떠나자는 장현의 손을 뿌리쳤고, 장현은 홀로 심양으로 떠난다. 이 남녀의 1막은 이토록 처연하게 끝난다.
운명은 항상 장난을 친다. 두 사람은 심양의 포로 시장에서 재회한다. 장현의 등장이 내심 반가우면서도, 포로로 잡혀 있던 길채는 냉담하다. 왜 도움을 청하지 않았냐는 장현에게 길채는 “내가 왜 나리를 찾나. 우린 아무 사이도 아니다”라고 선을 긋는다. 본디 받기만 하는 사랑은 부담스럽다. 길채가 “내게 은혜를 베풀어도, 난 갚을 수가 없다. 그러니 아무것도 해주지 마라”고 말한 이유다. 그러나 사랑의 저울은 한 번도 수평인 적이 없다. 항상 한쪽으로 기울고, 지금은 장현이 가진 사랑의 무게가 더 크다. 그는 결국 포로 시장에서 길채를 빼낸다.
하지만 둘의 사랑은 원체 평탄한 적이 없었다. 장현을 흠모하는 청나라 황녀 각화(이청아 분)가 시녀로 쓰겠다고 길채를 데려간다. “나는 사자에 찢겨 죽는 걸 볼지언정, 내가 갖고 싶은 사내를 다른 여인에게 빼앗기지 않는다”는 각화는 길채를 보듬는 장현을 용납할 수 없다. 결국 장현은 길채를 구해 조선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목숨을 건 내기를 한다. 이렇게 길채는 또 갚을 수 없는 빚을 진다. 기구하다. 하지만 이 또한 운명이다.
10부작인 ‘연인’ 파트2는 어느덧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매 순간 엇갈리는 두 사람을 보며 시청자들은 해피엔딩을 염원하고 있다. 총 20부작이라는 긴 호흡을 좇아온 팬들은 사랑의 결실을 맺는 것이 시청자들에게 진 빚을 갚는 길이라 아우성이다. ‘연인’의 모티브가 됐다는 고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꽉 찬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레트 버틀러는 떠나고, 스칼렛 오하라가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는 대사로 열린 결말을 맺는다. 이와 유사한 마무리라면 과연 시청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 여자, 그 남자의 결말만큼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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