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을 거란 그 말은 어쩐지 인생을 속이는 말처럼 들렸다[소설, 한국을 말하다]
가족 - 금요일
AI(인공지능)는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꿀까. 가속하는 저출산과 고령화, 사교육 광풍, SNS가 발신하는 끝 모를 욕망 속에서 한국인은, 또 한국 사회는 어디를 향해 가는가.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이 질문에 답한다. 9월 4일부터 연재에 들어간 문화일보의 ‘소설, 한국을 말하다’는 문단에서 가장 첨예하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소설가 15명이 들여다 본 ‘지금, 한국’을 짧은 소설에 담았다. 매주 월요일 한 편 씩 공개되며, 12월까지 계속될 예정.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이후 송 씨는 금요일을 좋아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가족들이 모이는 날도, 특히 외식 약속도 매번 금요일로 결정되었다. 어머니 생각을 하지 않아도 금요일은 약속을 지키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마치 송 씨가 밖에서 가족들 얼굴을 보는 걸 어색해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기라도 하듯 그때마다 상가의 멀쩡하던 변기가 고장 나거나 주차장에서 말썽이 생기곤 했다. 중학교 교사인 딸은 몇 번 안 되는 외식 때마다 송 씨가 얼마나 늦어서 가족을 걱정시키고 애타게 했는지 상세히 기억하고 지적했다. 오늘만큼은 딸에게 그런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가족을 기다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좋은 날이었다. 딸 말대로 처음 호텔에서 뷔페를 먹어도 될 만큼.
동네 다세대 주택에 사십 대 아들을 둔 노부부가 살았는데 거의 매일 떠나갈 듯한 아들의 고함이 들렸다. 바로 대각선 방향이라 아내는 거실 창문도 마음 편히 열지 못했다. 송 씨도 쉬는 일요일에 그 남자의 대상 없는 욕설을 자주 들었다. 동네 사람들이 민원을 제기하지 않는 건 노부부 때문이었다. 노부부는 하루도 빠짐없이 골목을 쓸고 쓰레기와 담배꽁초를 주웠다. 그렇게라도 이웃에게 양해를 구하려는 듯. 아들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대학교를 나왔는데 일하던 반도체 공장에서 무슨 일인가 있었다고 했다. 그 후로 정신이 이상해졌다고. 그랬던 그들이 이 년 만에 이사 갔다. 골목은 언제 그런 이웃이 있었느냐는 듯 조용해졌고 그 때문인지 긴 골목의 방지턱을 지나는 배달 오토바이들 소리가 더 크게 울렸다. 아내는 이제 좀 사람 사는 동네가 됐다고 말하면서도 그 집은 이사 가서 잘 지내고 있으려나, 종종 중얼거렸다. 송 씨도 이웃이 떠난 후에야 그들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되는 게 이상하긴 했다. 아들이 공장에서 무슨 일인가를 당했다는 말에 대해서도. 아무튼 욕설과 고함을 듣지 않아도 된 건 다행이었다. 딸네는 사위가 승진했고 고등학교 손자 손녀들은 중간고사에서 성적이 오른 모양이었다. 송 씨의 일흔다섯 번째 생일이 돌아오는 것도 딸은 축하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오늘 여섯 시에 송 씨 가족은 L호텔 이 층 뷔페식당에서 만나기로 했다. 휴대전화를 작업복 조끼 주머니에 넣어둔 채로 왔지만 호텔 가는 길은 외우고 있으니 별일 없을 터였다.
좀 돌아가긴 해도 대방역에서 역삼동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송 씨는 딸이 알려준 번호의 버스를 타고 창가에 앉아 출근 가방을 무릎에 올려두었다. 오늘따라 낡은 검정 가방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허기도 졌다. 점심시간에 할 일이 있었다. 며칠 신경이 쓰인 일이었고 그걸 처리하느라 끼니를 놓쳤다. 오늘따라 사장이 나와 상가건물을 한 바퀴 돌고도 뭐가 못마땅한지 비좁은 관리실을 지켰다. 사장이 더 오래 있었다면 송 씨는 저녁 타임 교대자와 삼십 분 먼저 교대하지 못했고 또 가족을 기다리게 했을 것이다. 집에서 가까운 산책길에서 한 여성이 무차별 폭행을 당한 사건 이후로 가족들은 아침저녁으로 안부를 주고받곤 했다. 사장이 일찍 돌아간 일도 오늘은 다행이었다.
버스 기사는 진행자들이 전화 연결을 한 청취자가 노래를 한 소절 시작한 순간에 라디오를 꺼버렸다. 고향에 관한 노래라 송 씨도 가사를 잘 알고 있었는데. 저 기사도 고향에 뭘 두고 온 사람인가 보네. 송 씨는 멋대로 상상했고 그러자 모르는 버스 기사가 조금은 궁금해졌다. 추분을 앞둔 때였다. 여름내 믿기지 않을 만큼 높았던 습도도 뚝 떨어졌고 적당히 선선했다.
구반포에서 청소년 두 명이 올라타 송 씨 자리 앞에 손잡이를 잡고 섰다. 헐렁한 쥐색 추리닝 바지에 티셔츠와 운동화. 손자 손녀도 그렇고 송 씨 눈에 요즘 학생들 옷차림이 다 비슷해 보였다. 라디오가 꺼져서인지 키가 껑충한 소년들의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바로 들렸다.
요즘 뭐 했냐?
한 애가 친구에게 물었다.
운동, 알바, 게임, 유툽, 애니.
요즘 애들은 두 글자로 말하는 모양이군. 송 씨는 속으로 웃었다. 손자를 만나면 이 얘기를 해줘야지. 운동 알바 게임 유ㅤㅌㅠㅂ 애니, 송 씨는 그렇게 외우려고 했다.
넌 뭐 했냐?
다른 애가 친구에게 물었다. 송 씨는 창밖을 내다보며 귀를 세웠다.
알바, 게임, 유ㅤㅌㅠㅂ, 빨래, 간병.
……누구?
엄마.
소년들은 말이 없었다. 간병 한다고 말한 애가 뭘, 하면서 친구를 팔로 툭 쳤다. 송 씨는 버스 출입문을 보는 척하면서 그 애들을 슬쩍 봤다. 열일곱 여덟쯤 돼 보였다. 애들은 다시 이야길 시작했고.
송 씨는 어머니 생각을 밀어내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짧은 투병 끝에 어머니는 십 년 전에 돌아가셨다. 괜찮을 거다. 어머니는 늘 그렇게 말하곤 하던 사람이었다. 어떤 일이 생길 적마다, 누굴 만날 때마다 어머니는 젊어서도 늙어서도 그 말밖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사람처럼 말했다. 괜찮을 거라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송 씨는 그 말에 전염성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믿게 되었다. 그런데도 딸이나 아내, 사위에게도 막상 그 말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한 번은 그가 골목에서 쓰레기를 줍던 노부부에게 그 말을 하는 걸 들은 아내가 당신 안 하던 말을 하네요, 했다. 괜찮을 거라는 그 말은 자신의 귀에도 어쩐지 불가능하고 인생을 속이는 말처럼 들리는 건 사실이었다.
송 씨는 신논현역에서 하차했다. 이 근처에 호텔 말고 병원도 있나. 엄마가 입원한 병원에 간다던 애도 친구랑 그곳에서 하차해 건널목으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다. 송 씨는 병원 건물을 찾아 두리번거리다가 딸의 말을 기억해내고는 아이들과는 반대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호텔은 거기서부터 이백 미터. 이십 분이나 일찍 도착할 듯싶었다.
호텔 정문 안쪽에 검색대가 설치돼 있었다. 호텔 회전문을 통과하기도 전에 송 씨는 공연히 긴장되었다. 저 검색대 안쪽, 이 층 식당에 이미 가족들이 와 있을 것이었다. 노란색 조끼를 입은 안전요원이 시키는 대로 송 씨는 출근 가방을 검색대에 내려놓고 통과했다. 순간 경고음이 울렸고 검색대 위쪽에 붉은 등이 쨍하게 들어왔다.
안전요원이 송 씨를 제지했다. 모니터를 살펴보던 직원이 가방을 열어봐야겠다고 했다. 직원이 가방을 열고, 송 씨 얼굴을 바라본 후 물었다.
이게 뭡니까?
아, 잊고 있었다. 가방에 망치가 들었다는 걸. 출근할 때 집에서 망치를 챙겨갔다.
검색대 직원들에게 송 씨는 낮에 한 일을 설명하려고 했지만 자신을 훑어보는 요원들의 표정에 숨부터 턱 막혀왔다. 안전요원은 식당에 있다는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보라고 했다. 송 씨는 휴대전화를 관리실에 두고 왔다고 더듬거렸다. 아내 전화번호가 가물가물했다.
안전요원은 이 호텔 뷔페에 온 게 정말 맞느냐고 재차 물었다. 송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그럼 망치를 두고 가라고 했다. 이건 폐기해야 한다고.
이, 이 사람들이.
송 씨는 검은 장갑을 낀 안전요원이 흉물인 듯 취급하는 망치를 빼앗듯 손에 들었다. 헤드와 손잡이가 일체형인 스테인리스 망치였다. 무게가 가볍고 타수가 적어 값도 꽤 나가는 데다 목수 일을 하던 때부터 아껴왔던 도구였다. 이 사람들 눈에는 원시적인 도구로 보일지 몰라도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공구가 망치라는 걸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요원들이 앞을 막아섰고 송 씨는 뒤로 물러났다. 뒤가 바로 회전문이어서 송 씨는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경적, 말소리, 음악 소리가 쏟아졌다. 송 씨는 거리의 소음에 잠시 몸을 내맡기고 있다가 처음 온 이 번화가에서 병원이 어디 있을지 두리번거렸다. 그 애는 제 엄마에게 잘 갔을까. 간병을 얼마나 더 해야 할까. 부족한 말로 가족을 지켜주었던 어머니라면 그 애에게 괜찮을 거라는 위로를 해주었을 텐데.
여섯 시 삼십 분이 지나고 있었다. 부끄러운 일을 한 것도 아니다. 여기서 물러서는 건 옳지 않다고 송 씨는 자신에게 말하곤 뒤돌아섰다. 검색대 안쪽, 이 층 나선형 계단을 빠른 걸음으로 내려오고 있는 딸이 보였다. 딸은 뭐라고 급하게 손짓을 했다.
검색 요원들과 딸이 안쪽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송 씨는 검색대 옆 통로로 호텔 로비로 들어갔다. 뭐하러 그런 일을 하시느라고. 딸은 말끝을 흐리며 송 씨의 팔을 부축하듯 잡았다. 딸에게 은은한 꽃 냄새가 났다. 혈기가 끓던 시절에 어린 딸에게 보여줘서는 안 되는 모습도 많이 보여줬다. 늙을수록 돌이킬 수 없는 후회들이 더 가슴을 눌렀다. 딸이 학교 일로 힘들어할 때도 괜찮을 거라는 말을 한 번도 해주지 못했는데. 오늘 이 호텔에서 가까운 컨벤션센터에서 무슨 국제회의가 열린다고 했다. 딸도 여기 와서야 알았다고. 외국에서 온 참석자들이 이 호텔에 투숙하는 모양이었다.
여기 오는 동안 별일 없었지?
송 씨는 이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딸의 옆 모습을 보며 물었다.
아버지, 웬 한숨을 그렇게.
한숨이 아니라 큰 숨이라고 송 씨는 말해주고 싶었다. 이렇게 가족이 다 모인 게 안심이 돼서, 은행나무에 누가 박아놓은 못을 다 뽑아서. 송 씨는 점심시간에 그 일을 했다. 얼마 전부터 누군가 상가건물 앞 오래된 은행나무에 못을 박아놓기 시작했다. 분풀이인지 분노인지 잘 빠지지도 않는 굵고 긴 나사못들을. 어젯밤에는 은행나무가 비명을 지르는 꿈을 꾸었다. 장도리로 애써 수십 개의 못을 빼내면서 송 씨는 누군가의 그 분노가 다른 데로, 사람에게로 향하지 않기를 바랐지만 최근에 일어나는 끔찍한 사건들을 보면 알 수 없는 일이었고 송 씨는 못을 뽑는 일, 그것도 사람의 일이라면 고작 그 정도밖에는 할 수 없게 될지 몰랐다.
금요일 저녁, 함께 밥을 먹기 위해 테이블에 빠짐없이 모여 앉은 가족들이 보였다. 송 씨는 다시 하늘에 계신 어머니를 생각했고 묵직한 가방을 내려놓으며 자리에 앉기까지 무언가를 위해 짧게 기도했다.
“가족이란 희망을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들”
■ 작가의 말
‘가족’이라는 주제를 “하나의 장르”이자 “내 소설 쓰기의 영원한 주제”라 이야기하는 작가다. 그에게 가족이란, 유대에 대한 갈망이 큰, 누가 시키지 않아도 희망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무차별적인 폭력이 일상이 된 사회 속, 가족의 의미는 더 빛을 발한다.
작가는 위험 사회 속, 부족한 데가 많은 구성원이지만 서로의 안녕을 확인하며 조용히, 안심하며 저녁 한 끼 같이 먹는 가족의 모습을 그리고자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작가는 단순히 ‘내 가족’만이 아니라 이웃들, 타인에 대한 염려와 관심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아픈 엄마를 간병하는 소년의 뒤를 살피는 송 씨의 두리번거림과, 40대 아들과 그 아들을 뒷바라지하는 노부부 가족을 떠올리며 ‘잘 지내고 있으려나’ 하는 송 씨 아내의 중얼거림은 귀하다.
■ 조 작가는…
1969년생, 1996년 등단. 소설 ‘불란서 안경원’ ‘가정 사정’ 등을 썼다.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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