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길목을 막은 문지기에… “비켜줘요” 할 줄 아는 용기[주철환의 음악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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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동네엔 유명한 골목길이 3개 있다.
신촌 블루스의 골목길은 오디션 참가자가 한 번쯤 염탐해볼 만한 코스로 이미 소문났다.
가사 일부가 뭉개졌지만 여덟 개의 불이 다 켜진 건 당연한 결과였다.
"장난 아닌데" 상품의 가격은 시장이 매기지만 작품의 가치는 시대가 가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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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동네엔 유명한 골목길이 3개 있다. 산울림의 골목길(‘좁다란 골목길을 따라서 한없이 걷는 마음이여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서 말없이 걷는 발걸음이여’), 이재민의 골목길(‘오늘 밤은 너무 깜깜해 별도 달도 모두 숨어버렸어 네가 오는 길목에 나 혼자 서 있네’) 그리고 신촌 블루스의 골목길(‘골목길 접어들 때에 내 가슴은 뛰고 있었지 커튼이 드리워진 너의 창문을 말없이 바라보았지’).
신촌 블루스의 골목길은 오디션 참가자가 한 번쯤 염탐해볼 만한 코스로 이미 소문났다. ‘싱어게인’ 시즌1에서 이무진, ‘트롯전국체전’에서 신승태가 불러서 심사위원단의 갈채를 받았다. 질러야 할 높이도 그만그만하고 숨 쉴 곳도 여러 군데 확보돼 있다. 하지만 아무나 쉽게 가로챌 수 있는 곡은 아니다.
오디션은 내 앞의 능선이다. 작사·작곡가의 의도를 존중한다고 봉우리에서 그걸 재현할 필요는 없다.(원곡 가수의 재현은 최악) 기량(가창력)은 기본이고 해석(표현력)이 창의적이어야 놀라움을 끌어낼 수 있다. 벽을 넘어야 별이 된다. 자기 스타일로 4분을 장악하되 그것이 우주의 시간(공감)으로 연결돼야 한다.
이번(싱어게인 3) ‘골목길’에 나타난 가수는 생김새부터 남달랐다. ‘원시 틴에이저’라는 영화제목이 생각날 만큼 꾸밈이 없었다. 나이는 18세, 이름은 46호(사진)였다. 전주가 시작되고 리듬을 타는가 싶더니 음악이 잠시 끊겼다. 그때 46호가 심사위원 쪽을 보며 던진 4글자가 나를 전율시켰다. “해도 되죠.”
이건 탈락을 자초하는 신호일 수 있다. 노래하러 나와서 잠깐 허밍을 하다가 느닷없이 해도 되냐고 묻는 건 오디션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일 것이다. 그러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골목길을 휘젓고 다녔다. 경이로움과 경악스러움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가사 일부가 뭉개졌지만 여덟 개의 불이 다 켜진 건 당연한 결과였다. 그렇게 46호는 자신의 모노드라마를 완성했다.
나는 골목길에서 던진 그의 도발적인 질문(‘해도 되죠’)에서부터 ‘의식의 흐름’을 타기 시작했다. 궁핍한 시절의 예술가 한 명이 내 앞에 나타났다. 그는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 이상(본명 김해경)이었다. 그는 1934년에 이런 시를 발표했다. ‘13인의 아해(兒孩)가 도로로 질주(疾走)하오 길은 막다른 골목이 적당하오’ 제목부터 조감도(鳥瞰圖)에서 한 획이 빠진 오감도(烏瞰圖)였다.
댓글이 없던 그 시절에도 항의의 서신이 전국에서 답지했다. ‘그것도 시(詩)냐’ ‘미친놈의 잠꼬대’ ‘당장 집어치워’ 심지어 ‘그 자(者)를 죽여야 해’ 수준까지 독자들의 분노 게이지가 치솟았다. 한 마디로 ‘이상한 가역반응’(이상의 데뷔작 제목)이었다.(이상에게는 ‘예상한 가역반응’이었을 수도 있다) “장난하냐?” 시대를 바꾼 자들이 처음 접하는 반응은 대체로 이렇다. 그러나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들은 다르게 반응한다. “장난 아닌데” 상품의 가격은 시장이 매기지만 작품의 가치는 시대가 가늠한다.
오감도를 다시 펼쳐 원문을 직시하자. ‘第一의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第二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第三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골목대장으로 만족하는 자들은 결코 큰길에 나설 수 없다. 꿈과 현실을 이어주는(혹은 가로막는) 막다른 골목 앞에는 무서운 심사위원들이 경호원처럼 떡하니 버티고 있다. 바보처럼 한마디 못하고서 그냥 뒤돌아 가버린다면 그대 앞에 꿈의 커튼은 좀체 열리지 않을 것이다. “해도 되죠.” 해도 된다.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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