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터뷰]궁정가수 연광철 "무반주 '고향의 봄' 들어보세요"
12월 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서 한국 가곡 독창회도
연광철은 지난 3일 서울 강남구 풍월당에서 열린 간담회를 통해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배웠거나 부르는 모습을 봤던 곡 위주로 선정했다. 이번엔 제 또래나 부모님 세대가 잘 아는 곡을 불렀는데 기회가 되면 다른 곡들도 작업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유럽에서 30년간 활동해온 연광철은 이번 작업을 하면서 한국인인 자신의 정체성을 재확인했다. "그들의 문화 속에서 살며 (그들의) 음악과 함께 하려고 노력했지만 제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느꼈죠. 한국 가곡을 부르면서 전기도 안 들어오던 시골에 살며 느꼈던 정취와 자연의 아름다움이 떠올랐고 한국에서 자란 제 본 모습을 찾게 됐어요."
그는 "외국 노래를 부를 땐 '내가 전달하는 게 맞나' 확신이 서지 않았다. 반면 한국 가곡은 단어의 뉘앙스와 전체적인 맥락을 제가 해석한 대로 전달해도 듣는 사람이 공감할 거라 생각했다"며 "외국에서는 이방인으로 그들의 음악을 불렀지만 한국 가곡은 온전히 제 것을 부르는 느낌이었다. 편안하고 즐겁고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고 돌아봤다.
연광철은 전기도 안 들어오는 충청도 충주에서 나고 자랐다. 청주대 음악교육과를 다니다가 불가리아로 건너갔고 독일 베를린음대를 졸업했다. 베를린 슈타츠오퍼, 밀라노 라 스칼라, 런던 로열 오페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등 세계 최고 극장에서 활약하며 2018년 '캄머쟁어'(Kammersaenger·궁정가수) 칭호를 얻었다. 1996년부터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단골손님으로 나서는 등 최고 바그너 가수로 자리매김했다.
음반의 마지막 트랙은 '고향의 봄'이다. 반주 없이 오직 목소리로만 녹음했다. 연광철은 "이 노래를 부르며 제가 자란 공간, 시골 냇가, 버드나무 등이 생각나 목이 메였다"며 "우리나라 말처럼 노래하기 좋은 언어가 없다. 작곡가들이 음성학 공부를 더 하면 한국에서도 예술적인 가곡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연광철이 노래한 '고향의 봄'은 풍월당의 창립 20주년 기념 음반이다. 2003년 클래식 전문 음반 매장으로 시작해 클래식과 인문학을 연결하는 문화 플랫폼으로 거듭난 풍월당은 클래식 음악 마니아들의 '성지'(聖地)로 불리는 공간이다.
박종호 풍월당 대표는 "이번 음반은 기획·제작·유통 등 모든 과정을 우리 손으로 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우리 정서를 잘 담은 한국 가곡을 알리는 것이 숙제였는데 이번 작업을 하면서 우리 시어를 서양 음악에 담기 위한 음악가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음반 발매는 고객들의 후원 덕분에 가능했다. "당초 세계적인 음반 회사가 음반을 제작하기로 했다가 무산됐죠. 할 수 없이 회원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했는데 200명 정도가 기꺼이 후원해줬어요. 미국 뉴욕에 사는 한 할머니가 풍월당 이야기를 듣고 감동해 쾌척한 1만 달러(1300만원)는 음반 작업의 불쏘시개가 됐죠."
지난 10월 작고한 단색화 거장 고 박서보 화백은 생전 단색화 '묘법 No.980308'을 음반 표지 디자인에 활용할 수 있도록 후원했다. "박서보 화백의 아들이 풍월당의 오랜 고객이기도 해요."
지난 20년간 풍월당을 유지하는 데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박 대표는 "듣는 사람이 많지 않아도 클래식 음악의 가치는 없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버지를 따라서 풍월당에 왔던 초등학생이 성인이 돼 다시 이곳을 찾는 모습을 보며 공간의 가치를 생각하게 됐죠. 매달 월세 2천만원을 내야 하는 현실이 오히려 더 많은 사람에게 음악을 알려야 된다는 동기부여가 됩니다."
'고향의 봄' 음반에 수록된 18곡 가사는 영어, 일본어, 독일어 등 3개 국어로 번역했다. 지난 3일 동시 발매한 음반과 디지털 음원에 이어 내년 초에는 LP도 발매할 예정이다. 12월 3일에는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한국 가곡 독창회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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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문수경 기자 moon034@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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