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아빠 자동차

서울문화사 2023. 11. 6.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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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남자와 젊은 아빠는 다른 사람이다. 둘은 차를 고를 때 얼마나 같고 다를까? 국산 패밀리카 3대를 타면서 살펴본 ‘좋은 아빠 차’의 조건.

SANTA FE 현대자동차

애국자의 조언

‘좋은 아빠 차’로 기사를 쓰려니 시작부터 벽을 느꼈다. 나는 결혼을 한 적도 아이를 가져본 적도 없다. 내 경험으로 이 기사를 쓸 수는 없었다. 전화를 걸었다. 경북 구미에 사는 장충원 씨는 애국자다.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이 0.78명이던 2022년에 장충원 씨는 쌍둥이를 낳았다. 그는 총각 시절엔 차를 많이 바꿨다. 어머니께 물려받은 르노삼성 QM3를 시작으로 현대 그랜저 HG, 기아 K7과 카니발, 현대 팰리세이드, 기아 EV6를 차례대로 탔다.

장충원 씨는 예나 지금이나 승차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부드럽고 편안한 승차감. 그는 이틀 전 테슬라 모델 Y를 받았다고 했다. “제가 이제 차를 고르는 기준은 간단합니다. 자동차 취향을 추립니다. 그 차들을 모아 크기별로 나열합니다. 그중 내가 가장 갖고 싶은 차보다 딱 1단계 큰 차를 고릅니다. 그럼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어요.”

쌍둥이 아빠는 은행원답게 실리적이면서도 납득 가는 조언을 들려주었다. 나는 그에게 좀 더 구체적인 모델 추천을 부탁했다. 쌍둥이 아빠는 “4천만원 아래로 살 수 있는 차 중에는 ‘깡통’ 팰리세이드를 이길 수 있는 차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내게 팰리세이드는 1단계가 아닌 2~3단계 큰 차다. 나는 쌍둥이 아빠와의 전화를 끊고 싼타페 시승 일정을 잡았다.

싼타페 DNA

신형 싼타페를 타는 건 미디어 시승회 이후 두 번째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산타페의 인상은 똑같다. 크고 고급스러운 차. 미디어 시승회 현장에는 2000년부터 출시된 다섯 세대의 싼타페가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1세대부터 4세대 산타페를 함께 보자 싼타페 특유의 느낌이 있었다. 또렷한 눈매, 볼륨감이 느껴지는 차체, 커다란 덩치. 내가 아는 코리안 패밀리카의 정석이다. 반면 이번 5세대 싼타페는 둥글둥글한 인상을 지웠다. H 라이트부터 각이 섰다. 신형 그랜저, 쏘나타, 코나에 적용된 심리스 호라이즌 램프가 올라갔고, 양옆에 H 모양의 라이트가 적용됐다. 후면부에는 더 큰 빨간색 H 램프가 탑재됐다. H 라이트는 공개 이후 사람들 사이에서 토론거리가 되었지만 젊은 인상을 주는 건 확실하다. 4세대 싼타페의 주요 소비층은 50대 이상이었다고 한다. 현대자동차 연구원들은 젊은 차주에게 어필하기 위해 신형 싼타페에 레트로와 미래적인 디테일을 고루 반영했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레트로는 커다란 차체, 미래적인 디테일은 H 라이트가 담당한다.

아빠의 무게

쌍둥이 아빠와 이야기하며 알았다. 아이가 있는 집의 차는 아이만 태우는 게 아니다. 카시트와 유모차가 늘 동반된다. 카시트 장착은 2006년부터 법적 의무다. 6세 미만의 어린이가 차에 탈 때는 반드시 카시트를 장착해야 한다. 카시트는 부피가 크다. 생후 1~2년은 카시트가 전방이 아닌 후방을 보도록 설치해야 해서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 아이가 하나라면 차의 조수석을 최대한 앞으로 빼고 그 뒤에 카시트를 채우면 된다. 반면 애국자 장충원 씨는 동시에 카시트 2개를 실어야 한다. 아내가 운전석 뒤편 2열에 탈 수 없다. 쌍둥이 아빠가 큰 차를 강조한 이유다. 이번 시승차는 6인승이다. 2열과 3열을 눕히면 4인 가족이 조그만 상을 깔고 앉아도 될 만큼 넓다. 차량 후면부는 박스 형태라 트렁크에 걸터앉아도 정수리 위 공간이 남는다. 실제로 현대차 디자이너들은 뒷좌석을 다 접고 실내에 앉아 트렁크 밖 풍경을 즐기는 가족을 상상하며 후면부를 디자인했다고 한다.

첫 출시 연도 2000년 코드네임 MX5(5세대) 최저 시작 가격 3천5백46만원 전장×전폭×전고(mm) 4830×1900×1730 탑승 인원 5·6·7인승 에어백 개수 10

엔진 2.5 가솔린 터보 / 1.6 터보 가솔린 하이브리드 최고출력(ps/rpm) 281/5,800(2.5 가솔린 터보) 최대토크(kgf·m/rpm) 43.0/1,700 ~ 4,000(2.5 가솔린 터보)

SORENTO 기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젊은 아빠가 자동차를 탄 모습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내용은 이렇다. 한 아빠가 믿기 힘든 소식을 접한다. 6년간 키운 아들이 친자식이 아니라는 것. 아내가 낳은 아들이 병원에서 같은 날 태어난 아이와 바뀌었다는 것. 친아들이 자란 환경은 자신이 아들을 기르던 환경과 정반대라는 것. 낳은 자식과 기른 자식 사이에서 ‘우리는 어떻게 아버지가 되는가?’를 묻는 이야기다. 주인공 료타(후쿠야마 마사하루)는 성공한 건축가다. 그는 렉서스 LS460을 몬다. 료타의 친아들을 길러온 유다이(릴리 프랭키)는 큰 욕심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전파상이다. 그는 다이하쓰의 하이젯을 탄다. 다마스 같은 차다. 영화에 등장한 자동차는 중요한 상징이다. 두 아빠의 능력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소품이지만, 두 아빠가 아이를 대하는 방식과도 묘하게 닮았다. 렉서스를 타는 료타는 늘 엄격한 잣대로 아들을 대하고 평가한다. 반면 유다이는 철이 없어 보일 만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놀아주는 친구 같은 아빠다. 언젠가 한국판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가 제작되고, 거기에 쏘렌토를 모는 아빠가 나온다면 어떤 느낌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시동을 걸었다.

바퀴 달린 세컨드 하우스

쏘렌토를 타기 전날 ‘아빠와 차를 타고 가장 자주 가는 곳’이 어딘지 생각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은 마트다. 빙글빙글 도는 길을 따라 주차장에 올라갔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먹고 싶은 것과 갖고 싶은 것이 가득했다. 그렇게 트렁크에 잔뜩 짐을 싣고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은 특별하진 않아도 ‘아빠와 자동차’ 하면 늘 먼저 떠오르는 기억 중 하나다. 쏘렌토의 승차감은 인상적이었다. 스티어링 휠을 좌우로 돌리면 손바닥에 기분 좋은 묵직함이 느껴졌다. 차가 무거운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실내 공간은 필요한 요소만 추려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센터페시아는 자주 손이 가는 공조기 버튼을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덜어냈다. 2열 도어에 올라간 컵홀더 역시 온 가족의 음료를 생각한다는 점에서 쏘렌토의 색깔을 잘 드러내는 요소 중 하나였다. 쏘렌토는 재미있는 차는 아니어도 분명 듬직한 차였다.

“2열 도어 손잡이 부분에 올라간 컵홀더 역시 온 가족의 음료를 생각한다는 점에서쏘렌토의 색깔을 잘 드러내는 요소 중 하나였다.쏘렌토는 재미있는 차는 아니어도 분명 듬직한 차였다.”

안전제일 자동차

쏘렌토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또 다른 젊은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른 살 배수용 씨의 아빠 경력은 13개월 차다. 직업은 목수. 그는 아내가 아들 배희우 군을 임신하기 6개월 전 기아 봉고 3 더블캡 사륜구동을 중고로 구매했다. 그때만 해도 아이가 생길 줄은 몰랐다.

“제 차는 도시에서 오버스펙이죠. 서울 시내에 있는 걸 다 합쳐도 10대도 안 될 거예요.” 실제로 서울에서 봉고 3 더블캡은 롤스로이스 컬리넌만큼이나 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배수용 씨는 아들을 봉고 3 더블캡에 태우는 일은 없다고 했다.

“트럭은 너무 위험해요. 뒷좌석에 카시트를 실을 순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정작 자신은 매일 그 차를 타고 출퇴근하면서, 위험하기 때문에 아이를 태울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이것이 아버지의 삶인가?’ 싶었다. ‘젊은 아빠의 차’로 쏘렌토를 골랐다고 하니 수용 씨는 반가워했다.

“저희 아버지가 쏘렌토를 탔어요. 아빠가 되고 보니 아주 좋은 차였다고 생각합니다. 아들을 카시트에 올리려다 지붕에 아기 머리가 부딪친 적이 있어요. 아빠가 되면 긴 차보다는 높은 차가 필요해져요.” 안전하고 키가 큰 차. 쏘렌토는 넉넉한 점수로 젊은 아빠에게 합격점을 받았다.

첫 출시 연도 2002년 코드네임 MQ4 PE(4세대) 최저 시작 가격 3천5백6만원 전장×전폭×전고(mm) 4815×1900×1695 탑승 인원 5·6·7인승 에어백 개수 10 엔진 2.2L 디젤 / 2.5L 가솔린 / 1.6L 가솔린 하이브리드 최고출력(ps/rpm) 194/3800(2.2L 디젤) 최대토크(kgf·m/rpm) 45.0/1750~2750(2.2L 디젤)

REXTON KG 모빌리티

대한민국 1%

이번 기사에 렉스턴을 싣기로 정하고 가장 먼저 생각난 사람은 내 아버지다. 아버지는 1세대 렉스턴을 탔다. 차를 구입한 2003년 나와 동생은 초등학생이었으니 아버지도 그때는 젊은 아빠였다. 아버지는 왜 렉스턴이 타고 싶었을까? “너희들 때문에 산 건 아니고. 그냥 큰 차를 타고 싶었어. 그때는 RV 차 타는 게 소원이었지.”

아버지는 예나 지금이나 SUV 대신 ‘RV 차’라는 말을 쓴다. 아버지가 기억하는 렉스턴은 지금 내가 알고 있는 렉스턴과 꽤 다른 차였다. “대한민국 1% 차 아니냐. 렉스턴이 처음 나왔을 때 그렇게 광고했다고. 비록 광고였지만 그때는 1% 차를 탄다는 자부심이 있었지.”

렉스턴은 국왕을 뜻하는 라틴어 ‘Rex’와 품격을 뜻하는 영어 ‘Tone’을 합쳐 지은 이름이다. 지금 생각하면 대단한 자신감이다. 2000년대 쌍용자동차는 ‘SUV 명가’로 통했고 특유의 투박하면서도 강인한 인상을 주는 디자인 덕분에 ‘남자의 자동차’라는 이미지도 강했다. 나는 아버지에게 렉스턴을 타면서 가장 좋았던 날이 언제였냐고 물었다.

“가족끼리 부산 여행 갔다 돌아오는 길에 비가 엄청 왔거든. 그때 딸한테 운전 맡겼던 게 좋았지. 작은 차였으면 운전대를 맡기지 않았을 텐데. 그때는 차도 딸도 믿음직스러웠던 것 같아.” 아버지는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부산 여행과 렉스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차다운 차

신형 렉스턴은 한눈에 봐도 이번 기사에 실린 자동차 세 대 중 가장 덩치가 컸다. 실제로 렉스턴의 전장은 세 대의 자동차 중 가장 길다. 아버지는 렉스턴을 탈 때면 ‘2층 자동차에 탄 기분’이었다고 했다. 그 기분은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했다. 렉스턴에는 세 대의 차 중 유일하게 사이드스텝이 있다. 외관에서는 라디에이터 그릴의 인상이 확고했다. 다이아몬드 패턴을 전면부에 방패처럼 내걸어 단단한 인상을 풍긴다. 세련된 느낌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남자의 자동차’를 강조하는 렉스턴에게는 잘 어울린다. 렉스턴에는 2.2L 디젤 엔진이 올라간다. 가속페달을 깊숙이 밟으면 디젤 특유의 요란스러운 엔진음과 함께 앞코를 들썩이며 바퀴를 굴린다. 전기차 시대에 보기 드문 주행 질감이다. 렉스턴은 모든 면에서 SUV보다는 아주 고급스러운 트럭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그게 싫지 않았다. 터치스크린으로 가득 찬 요즘 차들을 운전하다 보면 자동차보다는 바퀴 달린 컴퓨터를 타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반면 렉스턴은 확실히 자동차였다.

“렉스턴은 남들이 가진 걸 따라 가지려는 대신
‘크고 튼튼한 자동차’만큼은 지키려고 한다.
그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지금의 렉스턴을 산다.”

영웅의 SUV

자동차는 입체적인 물건이다. 누군가에게는 이동 수단으로서 생필품이다. 가족과의 추억이 스며드는 기념품이다. 남들에게 재력과 기호를 드러내는 사치품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렉스턴의 객관적인 경쟁력은 잘 모르겠다. 가격이 아주 저렴하지도, 디자인이 화려하지도, 편의성이 뛰어나지도 않다. 렉스턴을 만드는 사람들도 모를 리 없다. 렉스턴은 남들이 가진 걸 따라 가지려는 대신 ‘크고 튼튼한 자동차’만큼은 지키려고 한다. 그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지금의 렉스턴을 산다. 나도 아빠가 되어 차가 필요해진다면 렉스턴을 진지하게 고민할 것 같다. 한 번쯤은 ‘할아버지도 이 차 탔었어’라고 이야기해보고 싶다. 이번 기사를 쓰며 렉스턴에 대해 알게 된 것이 있다. 렉스턴이 16년 만에 2세대 모델을 출시했을 때 트로트 가수 임영웅이 브랜드송을 불러 화제가 됐다는 것. 노래 ‘히어로’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언제나 너의 곁엔 내가 있어. 불안 따윈 1도 없을 테니. 이렇게 always always 내가 너를 지켜줄게.’

첫 출시 연도 2001년 코드네임 Y461(2세대) 최저 시작 가격 4천10만원 전장×전폭×전고(mm) 4850×1960×1825 탑승 인원 5·7인승 에어백 개수 9 엔진 2.2L 디젤 최고출력(ps/rpm) 202 / 3,800 최대토크(kgf·m/rpm) 45.0 / 1,600~2,600

Editor : 주현욱 | Photography : 신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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