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엇게임즈 초대 대표 오진호 “LoL 성공 요소는 ‘PC’방 전략”
‘리그 오브 레전드’가 게임을 넘어 문화, 스포츠가 된 이유를 오진호 전 라이엇게임즈 대표가 확실하게 짚어줬다.
몇 년 전부터 외국 남자들 사이에서 떠도는 농담이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이 얼마나 e스포츠에 진심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한때 e스포츠는 "손과 눈만 움직이는 스포츠"라는 얄궂은 조롱을 받았다. 게임이 오락의 한 카테고리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하지만 영역을 점점 확장하며 지금은 스포츠의 범주로 자리 잡았다. 게임 인구는 그 어떤 스포츠를 능가할 정도로 증가했고, 산업 규모도 커졌다. 게임 종류도 셀 수 없이 많다.
한국에서 인기 많은 게임을 꼽자면 리그 오브 레전드를 빼놓을 수 없다. 2011년 한국에 처음 선보인 게임으로 서비스 시작 후 12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2023년 8월 기준 리그 오브 레전드는 PC방 점유율 40% 내외로, 한국 PC방 게임 순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연속 1위만 200주가 넘는 대기록이다. 이와 같은 인기에 힘입어 리그 오브 레전드는 2018년 이후 5년 만에 열린 아시아 최고의 스포츠 축제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며 화제를 모았다. 우리나라 대표 팀은 전승 우승과 함께 금메달을 거머쥐며 e스포츠 강국의 위력을 과시했다.
e스포츠는 더 이상 한국에서만 열광하는 집안 잔치가 아니다. 리그 오브 레전드의 영웅이라 불리는 페이커는 국제적인 스포츠 슈퍼스타가 됐고, 아이돌 못지않은 팬덤까지 보유했다. 글로벌 팬들은 매년 세계 최정상급 e스포츠 선수들이 경쟁하는 '리그 오브 레전드(LoL) 챔피언스 코리아’의 입장권을 예매하기 위해 광클릭을 하는 것은 기본, 게이머를 보기 위해 경기장 앞에서 밤을 지새우는 일도 허다하다.
오진호 전 라이엇게임즈 아시아 대표는 리그 오브 레전드 흥행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핵심 인물이다. 현재 게임 관련 미국계 회사 비트크래프트 벤처스의 파트너로 재직하고 있는 그는, 외국계 게임 회사인 블리자드 코리아 지사장으로 활동하며 일찍이 이름을 알렸다. 이후 리그 오브 레전드를 만든 라이엇게임즈로 자리를 옮겨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1년여라는 짧은 시간에 국내 지사를 조직하고 게임을 론칭해 성공으로 이끌었다. 또한 그는 리그 오브 레전드를 통해 게임 시장의 활성화는 물론, e스포츠 발전에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진호 전 대표가 이런 찬사를 받는 이유를 단지 리그 오브 레전드의 게임성으로 단정 짓기는 어렵다. 그는 "놀라운 성과들은 핵심 미션인 플레이어 포커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학창 시절에는 게임을 굉장히 많이 했었어요. 오락실도 다니고 '스타크래프트’도 하고 당시 유행하는 게임은 다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가면서 게임을 전혀 안 했어요. 첫 직장이 게임과 관계없는 대기업이기도 했고, 게임을 하는 것에 우호적인 분위기도 아니었거든요. 당시만 해도 게임을 좋아하면 어린아이 취급을 받거나 폐인처럼 보는 사람이 많았죠. 이런 사회적 시선 때문에 게임을 점점 멀리했던 것 같아요.
첫 직장이 일반 대기업이라니 의외네요.
저를 게임 회사 출신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사실 제 세대에는 직업에 대한 선택지가 많지 않았어요. 성공의 길은 대기업에 가는 것이었죠. 첫 직장을 10년 정도 다녔는데, 점점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싶어지더라고요. 1순위는 당연히 게임이었고요. 당시 가장 유명한 게임 회사는 블리자드였어요. 블리자드는 스타크래프트를 개발한 미국계 회사로, 스타크래프트 마니아인 제 꿈의 직장이었죠. 블리자드로 이직 준비를 하고 최종 입사 통보를 받았을 때는 너무 기뻐서 이게 현실인가 싶었어요. 그곳에서 정말 열심히 일했고, 성과를 인정받아 한국 대표로 승진하는 기회도 얻었죠. 2009년에는 싱가포르를 거점으로 블리자드 동남아시아 시장을 개척하는 업무를 성공적으로 끝마쳤어요.
라이엇게임즈와는 어떻게 인연이 닿은 건가요.
2010년 지인과 점심 식사를 하는데 "라이엇게임즈를 아십니까?"라고 묻는 거예요. 모를 리 없었죠.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게임을 만든 회사로 당시 마니아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었거든요. 라이엇게임즈가 한국 대표를 찾고 있는데, 본인이 저를 추천했다는 거예요. 그러고는 라이엇게임즈 제품 탄생 배경과 구성원, 분위기, 한국 지사를 내는 이유 등을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죠. 신중하게 들었지만 이직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정중하게 거절했어요. 그런데 몇 달 후 그분과 다시 만났는데, 제가 미국에 출장을 가면 라이엇게임즈 창업자들과 인터내셔널 총괄을 만나 한국 시장에 대한 조언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그 정도라면 괜찮다 싶어 "그러겠다"고 했죠.
라이엇게임즈 창업자들과의 만남이 이직으로 이어진 거네요.
결과적으론 그렇습니다. 사실 몇 번 더 거절했었어요. 2010년 라이엇게임즈는 리그 오브 레전드로 이름을 조금씩 알리는 단계였거든요. 당시 저는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요. 하지만 갈증은 있었어요. 회사 이름을 떠나 마음이 맞는 동료들과 함께 일하고 싶었거든요. 라이엇게임즈라면 이런 갈증을 해소해줄 것 같았어요. 브랜드가 품은 분위기, 사무실 공기 그리고 창업자 마크와 브랜든, 니콜로 모두 믿을 만한 사람이었거든요. "한국에서의 비즈니스는 제 결정에 따라 자유롭게 운영할 수 있는 권한을 주겠다"는 니콜로의 약속도 매력적이었죠.
가족들의 반대는 없었나요.
아내가 많이 걱정했죠. 라이엇게임즈가 한국에서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고, 실패 후 한국 사업을 철수하면 실직자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또 싱가포르에 와서 간절히 원했던 첫아이도 생겼고, 비즈니스도 잘되고 있었어요. 안정적인 생활을 버리고 모험을 택하길 원하지 않았죠. 하지만 늘 그렇듯 결정적인 순간에는 제 편이 되어주더라고요. "결정을 지지한다고, 후회 없이 일을 해봤으면 좋겠다"고요. 아내의 이 한마디에 마음을 굳힐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라이엇게임즈의 본사는 미국 LA에 있고 한국은 약 20개의 지사 중 한 곳인데, 타 지역에서의 성공 사례가 많지 않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본사와 지사의 관계는 좋을 수가 없어요. 기본적으로 언어와 문화 차이도 있지만 거리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못하죠. 또 자주 만나지 못해 목표 자체가 다르게 설정되는 경우도 있고요. 부딪히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에요.
본사와 어떤 마찰이 있었나요.
한국과 업무적으로 소통하던 본사의 한 관리자가 자신에게 주간 단위로 보고를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본사에 들어가는 모든 정보는 본인을 거쳐야 한다고요. 저희가 영어를 못 하는 것도 아니고, 상사도 아닌 관리자에게 모든 걸 다 보고하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또 본사 웹서비스 팀은 본인들이 한국 웹사이트를 구축하고 운영까지 하겠다고 선포하더라고요. 한국말도 전혀 못 하고, 한국 문화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한국 지사 운영에 개입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았어요. 너무 답답했죠. 그냥 넘어갈 사안이 아니었어요. 제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였죠.
하지만 한국 대표로서 본사와의 관계 설정이 굉장히 중요할 것 같은데요.
맞아요. 하지만 제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한국 지사의 승패가 갈릴 거라고 생각했어요. 만약 제가 한국 입장만 일방적으로 주장하면 당장 필요한 것은 얻을 수 있지만 본사와의 갈등은 커지겠죠. 하지만 본사의 지시대로만 움직이면 한국 직원들과 고객들이 피해를 입게 됩니다. 또 게임 출시와 플레이어들과의 커뮤니케이션보다 본사의 비위를 맞추는 데 초점이 맞춰질 테고요. 이런 모습을 본 능력 있는 한국 직원들은 회사를 떠나게 될 거고요. 저는 본사의 비위를 맞추려고 이직을 한 게 아니었어요. 라이엇게임즈를 한국에서 성공시키기 위해 간 거였죠.
본사와의 갈등은 어떻게 해결했나요.
현재 라이엇게임즈 최고경영자를 맡고 있는 니콜로가 정말 많이 도와줬어요. 니콜로는 한국 거주 경험이 있어 우리나라의 문화나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었어요. 그걸 바탕으로 직접 본사 직원들을 만나 한국 지사에 대해 설명하고 설득했죠. 싸움도 마다하지 않았고요. 수많은 글로벌 경험을 통해 본사의 통제가 결코 좋은 결과를 도출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또 이직 전 약속한 한국 지사에 대한 권한과 자율권 보장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줬고요. 그는 흔히 생각하는 보고와 승인을 받는 상사가 아닌, 목표를 향해 함께 달려가는 동료나 다름없었어요.
라이엇게임즈의 '임파워먼트’
미국은 의료보험료가 엄청나게 비쌉니다. 라이엇게임즈는 직원에게 상위 1%에 속하는 의료 보험제도를 제공하죠. 또 직원은 물론 배우자의 정신적, 육체적 관리를 위한 'Wellness Fund’라는 기금을 줘요. 운동을 하거나 마사지를 받는 등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죠. 제가 생각하는 가장 큰 혜택은 전사 워크숍이에요. 가족 모두를 데리고 해외여행을 가는 거죠. 최근에는 바르셀로나에 갔다고 하더라고요. 7월에는 일주일간 모든 직원에게 휴가를 주고,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원격근무를 시행해요. 하지만 복지만으로 직원 만족도를 높일 순 없습니다. 능력이 있는 사람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동기부여를 하고, 책임과 권한을 주는 임파워먼트(empowerment·리더가 업무 수행에 필요한 책임과 권한, 자원에 대한 통제력 등을 직원에게 배분 또는 공유하는 과정)를 지속적으로 시행해야 하죠.
임파워먼트는 직원들의 두터운 신뢰가 밑바탕에 있어야 가능할 것 같아요.
라이엇게임즈는 사람 중심의 회사예요. 쉽게 말해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뜻이죠. 게임업계 직원 대부분은 좋은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로 회사에 입사해요.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죠. 회사의 경영 등 따져야 할 것들이 많으니까요. 라이엇게임즈는 직원들이 플레이하고 싶어 하는 게임을 개발합니다. 개발자를 게이머로 보고, 그들이 하고 싶은 것이 곧 플레이어가 원하는 게임이라고 확신하거든요. 이것이야말로 개발자 그리고 회사에 대한 진정한 투자라고 생각하는 거죠.
라이엇게임즈의 운영 방식은 어떤가요.
라이엇게임즈의 미션은 플레이어, 즉 고객 중심의 회사가 되는 거예요. 이를 위해서는 플레이어 중심의 제품을 만들고 다양한 경험을 많이 쌓아야 하죠. 게이머는 크게 2가지로 나뉘어요. 짧게 게임을 즐기는 라이트 게이머와 다양한 장르를 열성적으로 즐기는 코어 게이머로요. 게임을 만들 때 코어 게이머가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때문에 초창기에는 거의 코어 게이머만 채용했다고 하더라고요. 라이엇게임즈는 직원들끼리 게임을 하거나 행사장에 가는 걸 권유해요. 그 자체를 소통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대부분의 게임 회사들은 다른 플레이어들과 대화를 못 하게 해요. 비밀이 유출되거나 잘못된 정보를 제공할 수도 있으니까요. 라이엇게임즈는 다른 플레이어들과의 소통과 대화를 권장합니다. 개인 SNS를 통해 커뮤니케이션하는 직원이 있을 정도로요.
다른 게임 회사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당연히 임파워먼트죠. 라이엇게임즈는 제가 경험한 조직 중 임파워먼트가 가장 잘 이뤄진 곳이에요. 신입 사원까지 오너십을 가지고 일하는 조직이거든요. 미션이 정해지면 신입 사원도 스스로 플랜을 만들고 다른 팀과 협의해 업무를 진행합니다. 물론 상사에게 보고해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주체적으로 미팅을 잡고 협업하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어요. 때문에 더욱 책임감을 가지고 즐겁게 일하는 것 같고요.
각자 자유롭게 일하는 게 좋은 면만 있는 것 같진 않아요. 회사의 전체적인 통일성이 틀어질 것 같기도 하고요.
맞아요. 초기에는 형평성 문제가 심각했어요. 팀장이 알아서 직원을 뽑고 연봉을 책정했거든요. 비슷한 역량에 같은 일을 하는데도 연봉이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나기도 했죠. 또 정해진 인사 평가 제도가 없어서 일 잘하면 연봉이 올라가고, 승진하면 또 올라가고 이렇게 연봉이 계속 중첩되는 경우도 있었고요. 이런 문제들이 생기자 회사에서 법무, 인사, 재무 조직을 강화하고 인사 평가 시스템을 구축했어요. 물론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죠. 하지만 회사 운영을 위해 필요한 시스템은 반드시 갖춰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리그 오브 레전드를 한국에서 출시할 때 상황은 어땠나요.
당시 외국 게임은 거의 실패했었어요. 게임 랭킹 10위 안에 든 외국 게임은 블리자드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 '스타크래프트’뿐이었거든요. 한국 게임이 압도적으로 인기가 많았죠. 그런 게임 시장에서의 도전은 달걀로 바위 치기처럼 무모했죠. 두렵기도 했어요. 리그 오브 레전드도 다른 외국 게임처럼 순식간에 사라져버릴 것 같아서요. 또 게이머들은 한번 시작한 게임은 잘 바꾸지 않아요. 저희가 조사한 바로는, '새로운 게임을 하면 같이 게임하던 친구들을 잃을 수도 있어서’라는 것이 이유죠. 당시 리그 오브 레전드가 북미에서는 인기가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거의 무명 게임이나 다름없었어요. 출시 몇 달 전에 한국 플레이어를 대상으로 조사했는데, 리그 오브 레전드를 아는 플레이어는 약 3%였고 라이엇게임즈를 아는 게이머는 1% 미만이었거든요. 인지도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치죠. 인지도를 올리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어요. 출시 3개월을 앞두고 있었거든요.
리그 오브 레전드를 알리기 쉽지 않았겠네요.
맞아요. 그래서 출시 전에는 다양한 매체의 기자들을 직접 만나 라이엇게임즈와 리그 오브 레전드를 설명하는 데 공을 들였어요. 또 리그 오브 레전드 입문 가이드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업로드하고, 플레이어를 코칭하는 프로그램도 제작했죠. 핵심 전략은 PC방 공략이었어요. 한국은 PC방 성지잖아요. 게임 순위가 PC방 위주로 집계되고, 많은 사람이 모여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죠. 또 PC방에서 플레이돼야 입소문이 나기도 하고요. 리그 오브 레전드의 성공을 위해선 PC방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했죠.
PC방 전략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세요.
PC방과 리그 오브 레전드가 윈윈할 수 있는 상생의 경제학을 도출했어요. 게이머가 집이 아닌 PC방에서 더욱 재미있게 리그 오브 레전드를 즐길 수 있는 '프리미엄 PC방 가맹 혜택’을 발표했죠. 만약 이 프로모션이 성공하면 리그 오브 레전드도 흥행하고 PC방 점유율도 올라갈 거라고 확신했거든요. 프리미엄 PC방 가맹 혜택은 2가지였어요. 유료 프리미엄 PC방 서비스에 가맹한 PC방에는 모든 챔피언(각 플레이어가 조작하는 캐릭터)을 사용할 수 있는 것과, 가맹 PC방에서 게임하는 플레이어에게는 보너스 1P(부스터) 20%를 추가로 제공하기로 한 거죠. 핵심은 챔피언 무료 사용권이었어요. 플레이어가 원하는 챔피언을 무료로 사용하기 위해 PC방을 찾게 될 거라 생각했거든요. 또 리그 오브 레전드 플레이어라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PC방 토너먼트도 진행했는데, 이 행사도 PC방 매출에 큰 영향을 줬고요.
파격적인 혜택이네요. 본사 반대도 심했을 것 같아요.
당연하죠. 챔피언을 무료로 제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하는데 해당 팀은 미국 본사에 있었거든요. 우리를 위해 부가적으로 새로운 작업을 하는 건 어렵고 귀찮은 일이었죠. 디자인 팀도 굉장히 반대했었어요. 디자인 밸런스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고요. 또 한국 서비스를 시작할 때 챔피언은 88종이었어요. 이 챔피언들을 PC방에서 모두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는 건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었거든요. 다른 지사에서는 챔피언이 곧 매출의 핵심 요소나 다름없었으니까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이 함께 리그 오브 레전드를 즐기고, PC방도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직접 CEO와 파운더를 만나고, 본사에도 찾아가 몇 개월을 설득해서 승낙받았죠.
시스템 오픈 과정에서 시행착오는 없었나요.
PC방에서 게임 플레이 시간을 측정하는 프로그램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적이 있었어요. 어떤 때는 사용 시간보다 길게 나오기도 하고, 적게 측정되기도 했죠. PC방은 사실 마진이 별로 남지 않는 장사예요. 10원, 100원에 민감하죠. 가격이 제대로 측정되지 않으면 PC방은 손해를 보게 되는데, 심하면 불매로 이어지거든요. 최대한 빠르게 프로그램을 개선하고 보상해드렸죠. 프로그램을 재정비하려면 본사 직원이 투입돼야 해요. 당시 본사에 이야기했는데 빨리 지원해주지 않아 진땀 흘렸던 기억이 나네요.
리그 오브 레전드는 처음부터 성공했나요.
당시 게임 순위 10위 안에 드는 것이 목표였어요. 그래야 사람들 눈에 쉽게 띌 수 있으니까요. 오픈 첫 주에는 PC방 점유율 1.9%로 차트에 진입했고, 얼마 후 10위권에 들어갔습니다. 너무 간절하게 꿈꿔왔던 순간이었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었어요. 한국 지사 직원들은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고 환호하며 난리가 났었죠. 본사에서도 너무 기뻐하며 축하 메시지를 보내줬고요.
스스로 정한 가치에 집중하는 삶
정신없었죠.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커서 잠도 거의 못 자고 계속 아팠던 것 같아요. 그래도 재미있었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어떤 점이 즐거우세요.
항상 즐겁지는 않죠(하하). 하지만 무언가를 배우고 성취하고 해내는 것이 재미있고, 그 자체가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또 제가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것도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에 집중하면 포기해야 할 것도 분명 있을 것 같아요.
삶에서 집중하는 건 딱 3가지예요. 첫 번째는 무조건 가족이고요, 그다음으로는 건강과 일입니다. 그 외에는 거의 포기했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취미 생활도 하고 싶고 친구들과 어울리고도 싶지만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포기할 것도 반드시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모든 것을 다 갖출 순 없잖아요. 살면서 중요한 것들을 명확하게 설정해놓고 집중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취미 생활이 하나도 없으신 건가요.
취미 생활이 일인 것 같아요(웃음). 굳이 꼽자면 게임인데, 즐기기보다는 시장조사 겸 트렌드 파악을 위해 하고 있어요. 게임 관련 분야 공부도 꾸준히 하고요. 출장이 잦으니 비행기에서 자료들을 읽고, 시간 날 때마다 필요한 영상도 찾아서 봅니다. 또 미팅하면서 새로운 분야의 지식을 많이 습득하는 것 같아요. 궁금했던 부분을 물어보기도 하고요. 공부는 꼭 책상에 앉아서만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리그 오브 레전드도 자주 하시나요.
옛날만큼은 아니지만 꾸준히 하고 있어요. 처음 리그 오브 레전드를 시작했을 때는 꽤 잘하는 편이었어요(웃음).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했죠. 지금은 워낙 게임을 잘하는 플레이어가 많기 때문에 명함도 못 내밀고요. 요즘은 아이들하고 게임을 많이 하고 있어요.
오랜 시간 같은 업종에서 일하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다른 업계를 생각해보신 적은 없나요.
저는 이것만 하고 싶어요. 너무 좋아하고 재미있거든요. 보통 게임업계라고 하면 게임 개발만 생각하는데, 개발에도 장르가 수만 가지예요. AR, AV, VR 활용 기술 등 게임을 제작하기 위해 필요한 개발도 여러 가지죠. 게임업계에서는 할 수 있는 일도 많고, 배워야 할 것도 다양하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더욱 재미있는 것 같아요.
게임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아요.
게임이 e스포츠라고 칭할 만큼 전문적인 산업으로 발전했지만 게임 자체를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도 분명 있어요. 하지만 이러한 인식도 서서히 변할 거라 생각합니다. 게임을 하며 자란 부모 세대도 많고, 페이커 등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프로게이머들도 늘고 있으니까요. 게임업계도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는 걸로 알아요. 억지로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개선되길 바라죠.
대표님의 개인적인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한국 게임업계 발전에 기여하고 싶어요. 그간의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는 자리를 많이 마련하고도 싶고요. 그 일환으로 '리그 오브 레전드 플레이어 중심주의’라는 책도 집필했죠. 한국 게임산업은 이미 글로벌화됐어요. 게이머를 만나거나 경기를 직관하기 위해 한국을 찾아오는 해외 팬들도 늘고 있죠. 발전하는 게임산업에 비해 직접적인 조언이나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 인력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스타트업이나 벤처회사 같은 경우는 더더욱 그렇고요. 많은 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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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상윤
사진 제공 라이엇게임즈이스포츠 리그오브레전드 인스타그램 아시아e스포츠연맹
정세영 기자 sy2823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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