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학교에서 졸아서 ‘또잠이’래요"... 친구들은 모르는 가족돌봄
베이비뉴스와 초록우산은 가족돌봄아동·청소년에 대한 인식 개선과 지원 필요성을 공론화하기 위해 '돌봄의 시간에 붙잡힌 아이들' 연속 특별기고를 마련했습니다. 고령, 장애, 질병 등으로 도움이 필요한 가족을 보살피는 아동·청소년은 성장을 위한 '나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가족을 돌보면서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제도적인 지원 환경을 만들어 가기 위한 사회적 인식과 공감이 필요합니다. 매주 월요일 이에 관한 아이들과 복지 현장,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들려드립니다. -편집자 말
학교에서 나는 '또잠이(또 자는 아이)'로 불린다. 수업시간에 조는 일이 많다며 친구들이 나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평소 학교에서 친구들이 내게 '왜 그리 피곤해 하느냐'고 물으면, 나는 게임을 하느라 늦게 잤다고 둘러대곤 한다. 물론 게임을 하는 날도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날이 더 많다. 쓰레기를 버리고 할아버지 잠자리를 봐 드린 다음 설거지까지 하고 나면 자정이 넘어서야 비로소 책을 펼 수 있다. 무거운 눈꺼풀과 싸워가며 밀린 숙제와 공부를 한 다음날 학교에서는 눈이 저절로 감긴다. 이런 사정이 있지만 불쌍하게 보이는 것이 싫어서 나는 친구들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다.
집에서 나는 손주이자 '할아버지 돌보미'다. 우리 할아버지는 가끔 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한 말도 금세 잊어 버리신다. 할머니가 계시지만 거동이 불편하셔서 결국 할아버지는 내가 돌보게 된다. 어릴 적 내가 할아버지께 열 번, 스무 번 되물었던 것처럼 지금은 할아버지가 내게 같은 질문을 계속하신다. 나는 할아버지가 텔레비전 리모컨이 안 된다는 말씀을 반복하시는 것이 답답해 방에 틀어박혀 헤드폰을 쓰고 게임에 몰두하려 했던 적이 있다. 이내 죄책감이 들어 '리모컨 안 될 때 고치는 법'이라는 메모를 적어 할아버지 곁에 붙여드렸지만, 마음 속으로 되뇌던 '죄송해요'라는 말은 끝내 하지 못했다.
사회에서는 이런 나를 '가족돌봄아동·청소년'이라고 말한다. 돌봄이 필요한 나이에 가족을 부양하는 아이라는 의미이다. 나를 기특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지만, 사실 가족을 돌보는 일상이 뿌듯하지만은 않다. 지금의 일상이 끝나길 바라는 마음도 있지만, 도움이 필요한 가족을 돌보는 일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죄송하게 생각되는 때도 있다. 자정을 한참 넘겨 겨우 잠자리에 들더라도 이런 걱정과 불안에 뜬 눈으로 오랜 시간 천장을 보면서 누워 있는 경우도 많다.
가족을 돌보면서 사는 내 일상은 특별하지 않다. 실제로 나뿐만이 아니라 돌봄을 받는 대신에 가족을 부양하는 하루를 사는 '가족돌봄아동·청소년'들은 많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 많은 수는 '가족돌봄'을 그저 혼자 해나가야 하는 집안 일 정도로 생각하면서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어른들 중에는 필요한 것이 있으면 뭐든 말하라고 하는 분들도 계신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가족돌봄아동·청소년'들은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많다. 부모님의 돌봄을 받는 친구들의 삶에서는 당연한 것들이 우리에게는 너무 멀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더 많은 어른들이 '가족돌봄아동·청소년'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먼저 손을 내밀어 준다면 우리의 일상은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사회에서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친구들을 찾고 고민을 들어주기 시작했으면 좋겠다. 또한, 도우미 지원을 통해 집안 일 부담을 줄여준다면 공부를 하거나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이 지금보다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른들이 우리의 교육 기회를 지원하고 정서적으로 지지도 해줬으면 한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경제적 여건이 어려워서, 가족돌봄으로 시간이 없어 공부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없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오늘도 교실 곳곳에는 가족돌봄 생활이 주는 피로에 못이겨 학교에서 잠든 아이들이 있을 것이다. 이런 '가족돌봄아동·청소년'들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친구들과도 어울리면서 좋은 어른으로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지원을 부탁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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